[미국 PMS 개정] 거세지는 강대국 무역장벽 압박...한국 일자리도, 기술도 뺏길라

2023-01-17 05:55
OECD 국가보조금 12년새 108배↑
韓 기업, 현지공장·법인 설립 잇따라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무역 장벽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자국 내 일자리와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한국 기업 생산설비와 기술이 해외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1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보조금 정책은 2008년 48건에서 2020년 5081건으로 12년간 105.85배 증가했다. 아직 집계 전이지만 이 같은 보조금 정책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더욱 늘어난 것으로 산업계에서는 분석한다.

특히 주요 국가 보조금 정책은 지난해부터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사실상 자국 내 공장이나 연구개발(R&D)센터 건설을 강제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상징적인 게 바로 ‘미국 삼성 고속도로’다. ‘반도체과학법(칩스법)’으로 삼성을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자국에 공장을 지으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먼저 미국은 대규모 예산과 인센티브를 허용하는 3개 대형 법안을 연달아 제정하면서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을 현실화할 법적 기반을 구축했다.

2021년 11월 제정된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은 도로, 수자원 공급, 인터넷 통신 등 물적 인프라 개선과 일자리 창출에 예산 1조2000억 달러를 투입하고 세제를 지원하는 법안이다. 미국은 해당 법을 제정한 이후 지원 범위를 전기차용 배터리 인프라로도 확대했다. 지난해 8월 제정된 반도체과학법은 예산 527억 달러를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과 반도체 R&D센터에 지원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보조금 수령 자격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특정 국가에 첨단 반도체에 대한 새로운 용량을 확장·금지’하는 것이다. 즉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철수가 조건이다.

이어서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국내 배터리 기업은 물론 완성차 업계에 최대 악재였다. 올해 들어 실제 현대차그룹이 생산한 일부 전기차들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사실상 무역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 전기차 배터리를 탑재하면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정책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2021년까지 2000억 달러 규모 보조금을 반도체, 전기차 등에 지급한 중국은 지난해와 올해는 그 규모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다만 현재까지는 미국의 중국 견제로 인해 보조금은 현지 기업에 집중된 상태다.

유럽연합(EU)도 독자적인 핵심 산업 육성 방안책을 내놨다. 2022년 1월 발표한 ‘그린딜 투자계획’에 따라 친환경차 보급 지원에만 예산 1조 유로를 책정했다. 2021년 5월 EU 집행위원회는 ‘신산업전략 패키지’를 수정했으며 향후 디지털화와 친환경 산업에 각각 1300억 유로, 2500억 유로를 지원할 방침이다. 지난해 발표된 ‘유럽반도체법안’ 역시 430억 유로 규모 지원 방안을 통해 반도체 공장과 R&D센터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기조에 국내 기업의 공장 수출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미국과 유럽을 거점으로 하는 배터리 공장 짓기에 한창이며, 삼성전자 역시 칩스법에 따라 신규 생산·연구시설 부지를 미국에 한정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핵심 미래 사업 중 하나인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법인을 미국에 뒀다. 이 밖에 주요 전기차 모델을 미국에서 생산하면서 미국은 사실상 주요 생산기지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이 강대국 정책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며 “무역장벽을 통해 압박한 후 보조금을 당근으로 내놓는 강대국 정책에 상응하는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국은 모든 일자리를 미국과 유럽에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남현 바튼말로 프로젝트엔지니어(PE)가 블루오벌SK 켄터키 공장 건설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장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