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콘텐츠 제작에서의 AI 가능성과 한계"
2022-12-06 18:00
진수글 오늘의웹툰 대표
월드컵의 해였던 2002년 미국 타임지가 제시한 로봇공학 또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군이다. 2000년대에는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반복적이거나 기피하는 노동들을 AI가 대체하고, 문화 산업, 과학 산업 중심으로 직업군이 재편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부동산 거래의 대다수가 중개인을 거쳐 이뤄지고 있으며, 치과의는 여전히 선호되는 직종이다. 노동 집약적인 물류 시장은 0.02%만이 로봇으로 이뤄진다. 오히려 2022년 AI는 언어유희를 담아 글을 쓰고 일본 만화풍 일러스트를 그리는 등 창작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8월 ‘시를 쓰는 이유’라는 제목의 시집이 출간됐다. 이 시집의 작가는 AI다. 시 53편이 수록된 이 시집은 연구자가 주제어를 입력하면 '카카오브레인'이 구축한 모델이 이를 바탕으로 시를 창작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4월에 공개된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팀은 놀라운 일을 해냈다. 동음이의어, 언어유희를 활용한 농담을 해석해주는 인공지능을 구현한 것이다. 글쓰기 영역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또 올여름 세상에 공개된 이미지 생성모델은 우주비행사가 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같이 꿈에서나 볼 것 같은 장면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내 화제가 됐다.
이 AI 모델의 상용 버전인 ‘노블AI’와 ‘미드저니’ 공개 직후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십수 년을 만화 작화에 힘써온 작가들과 유사한 그림체로 몇십 초 만에 고품질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첨단을 나아가는 구글의 인공지능조차도 아직 한계가 명확하다. 대부분의 글짓기가 ‘주어진 주제에 알맞은 답을 문장형으로 쓰기’일 뿐이며 주제 없이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이미지 생성 AI도 마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주제’를 제시해야만 어떤 이미지를 창작해낼 수 있으며 초현실적인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조차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다른 초현실주의 콘셉트 모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종합적으로 두 분야에서 모두 맥락이 길어지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결과를 보여주며, 학습 데이터의 자기 표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만화나 소설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웹툰에서는 지난 2년간 ‘웹툰 애널리틱스’라는 웹툰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개발·운영해왔다. 웹서비스 분석에서 착안한 이 기술은 웹툰 원고를 독자에게 노출시키고 통계분석을 통해 상업성 지표들을 추출해낸다. 그리고 우리가 700여 작품에 대한 상업성을 분석하는 동안 알게 된 좋은 작품의 규칙은 ‘믿음의 도약’이었다.
믿음의 도약은 ‘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게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편이 안전한 바닥이라는 것을 믿고 뛰어오르는 순간을 의미한다. 좋은 창작자는 마음속 독자를 믿고 안전한 영역 밖으로 믿음의 도약을 시도한다.
성공한 믿음의 도약은 잘 알려진 패턴을 따라가다 중요한 순간에 규칙을 깸으로써 우리에게 적당한 익숙함과 신선한 자극을 준다. 정해진 패턴, 정해진 주제 안에서 글과 이미지를 뽑아내는 AI에 대한 인간의 유일한 우위이자 압도적인 우위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오늘의웹툰에서는 이러한 전제에서 데이터 분석과 딥러닝으로 시행착오 비용을 줄이는 것에 더해 작가 출신 웹툰 전문 기획자가 붙어 안전한 영역에 매몰되지 않고 믿음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산업은 언제나 단위비용을 줄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도 그렇다. AI는 제작 비용을 줄여주는 좋은 도구다. 저렴한 생산비용 환경에서 인간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더 실험적인 믿음의 도약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20년이 지난 후 우리는 AI를 활용하는 창작자들을 통해 오히려 더 독창적인 콘텐츠를 누리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