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이동제한 어긴 축산업자...대법 "지자체, 손해배상 청구 못해"

2022-10-23 12:22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구제역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에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한 지방자치단체가 가축 전염병 확산에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자체가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전염병 확산의 원인 제공 여부와 상관없이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지자체의 의무라고 판시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강원도 철원군이 돼지 농장 운영주 등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세종시장은 지난 2015년 1월8일 구제역이 발생하자 전국적 확산 방지를 위해 농장에서 A씨가 사육 중이던 1500마리 돼지에 대해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른 이동제한명령을 발령했다.

그러나 A씨 등은 이동제한명령이 내려진 다음달인 2월7일 농장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키우던 돼지들이 구제역에 감염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동제한명령을 위반,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B씨의 농장으로 돼지 260마리를 이동시켰다.

이후 B씨 농장 돼지 일부가 구제역 의심 증상을 보였고, B씨 농장에 있던 돼지, 닭, 개 등이 살처분됐다.

철원군은 피해를 본 농장에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과 생계안전 비용, 살처분 비용을 지급하는 한편, A씨 등과 중개업자들에게 해당 금액 상당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재판에서는 이동제한명령 대상인 돼지 반출에 참여한 농장주 등이 보상금을 지급해 준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직접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지가 쟁점이었다.

1심과 2심은 A씨 등이 철원군에 1억7300여만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해 돼지를 반출한 행위와 다른 농장에서 받게 될 살처분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자체의 살처분 보상금 등 지급이 이동제한명령 위반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지자체가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지자체의 의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동제한명령 위반으로 가축 소유자에게 손해를 발생시켰고 지자체가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했더라도, 다른 법령상 근거 없이 직접 피해자로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설시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