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흐름 촉각] 시중에 풀린 돈, 예·적금에 몰린다…'돈맥경화' 우려 여전

2022-07-13 07:00
5월 광의 통화량 규모(M2) 3697조원…전월 이어 '역대 최대'

한국은행 발권국에서 현금운송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될 추석자금 방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시중에 풀린 돈이 또다시 역대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흐름 속 수신금리가 오르자 주식시장을 빠져나온 자금이 정기예적금에 몰린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해당 자금이 투자·고용·소비로 돌기보다는 현금을 묶어두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5월 시중에 풀린 돈 3697조원 ‘역대 최고’…정기예적금 쏠림 여전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5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통화량 잔액(M2 기준)은 3696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던 전월(3667조원)보다도 30조원 가까이(29조8000억원, 0.8%)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던 시중 통화량은 올해 3월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4월 다시 반등하며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9.3%로 전월(9.4%)보다 둔화됐다.

​광의의 통화(M2)란 넓은 의미의 통화량 지표를 의미한다.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 예금 등 당장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돈뿐만 아니라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예적금,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까지 포함된다. 

상품별로는 정기예적금이 최근 한 달 동안 21조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안전자산 선호현상과 수신상품 금리 인상이 맞물려 자금이 몰린 것이다. 대기자금 성격이 강한 요구불예금 규모 역시 한 달새 7조4000억원 확대돼 예·적금의 뒤를 이었다. 반면 시장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MMF(머니마켓펀드)는 전월 대비 8조원 이상 감소했다.

경제주체별로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보유한 유동성 규모가 전월보다 12조원 이상 확대됐다. 시장금리 상승과 안전자산 선호 여파로 정기예적금을 중심으로 증가한 것이다. 기업의 유동성 규모는 금융지원과 운전자금 수요 관련 대출이 늘면서 전월 대비 13조7000억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금융기관의 경우 소상공인 손실보상 관련 집행자금 등이 지자체에 유입됨에 따라 정기예적금을 중심으로 8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단기자금 지표인 M1(협의통화)은 1373조9000억원으로 전월대비 0.5% 늘어 5개월 연속 증가했다. M1은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해 높은 수익률을 따라 움직이기 쉬운 자금을 의미한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8.7% 늘며 작년 2월(26.0%) 이후 증가폭 하락세가 지속됐다. 
 

유동성 확대에도 "금리·물가 상승 속 돈줄 막힐라"···기업·금융시장 우려 지속

이처럼 시중에 풀리는 돈이 확대되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로 순환되지는 못하는 '돈맥경화'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통화승수(공급한 통화 대비 통화량 배수)는 지난 4월 기준 14배 아래(13.9배)로 하락했다. 이는 지난 2019년 말(15.6배)보다 크게 낮아진 수준이다.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본원통화 1원을 공급했을 때 이의 몇 배에 달하는 통화를 창출했는가를 나타내주는 지표로 시중에 돈이 얼마나 잘 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통상 통화승수가 감소하면 경제주체들의 현금 보유 성향이 강해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미 금리 상승 악재 속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기업 등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돈맥경화’ 정황이 속속 감지되고 있다. 최근 코스피 거래대금은 하루 평균 9조3000억원가량으로, 1년 전(약 17조원)의 절반 수준(55%)에 그치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 회전율은 16.36회에서 5.11회로 급락하며 돈의 이동경로가 얼어붙은 모습이다. 회사채 발행(6월 1일~7월 8일) 역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제외한 규모가 1년 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46%) 감소한 9조4074억원으로 집계됐다. 회사채 발행액은 하락한 반면 회사채를 상환하는 움직임은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를 위해 자금 조달에 나서기보다 부채 상환에 나서는 순상환 양상도 확인되고 있다. 


회사채와 국고채 간의 신용도 차이를 보여주는 스프레드(금리 차이) 역시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8일 AA- 등급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의 신용 스프레드는 0.871%포인트로, 지난해 4월 16일(0.875%)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됐다는 것은 국고채보다 회사채의 위험성이 높아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권 역시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직면해 있다. 당장 카드사와 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회사들이 금리 상승 속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사들은 자금조달의 70%를 여신전문금융회사채(이하 여전채)에 의존하는데, 채권 발행 규모가 최근 급감한 것. 이처럼 여전채 발행이 줄어든 것은 채권금리가 크게 오른 부분이 영향을 미쳤다. 실제 신용등급 AA+인 여전채 3년물 금리는 지난 1일 기준 4.36%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 중순까지만 해도 1%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급등세가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 속 금융당국은 여전사 경영공시에 △유동성리스크 관리 체계 △유동성 리스크 경감기법 △긴급 자금조달 계획 지표를 포함하는 등 모니터링 강화와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금융리스크 점검 회의에서 “여전사가 여전채를 통한 자금 조달 의존도가 높아 위기 시마다 유동성 리스크가 반복되므로 과도한 레버리지에 대한 관리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여전사는 수신기능이 없어 유동성 리스크가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리스크"라며 "자체적으로 보수적인 상황을 가정해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고 비상 자금 조달 계획도 다시 한번 점검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