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불안, 대란민국] 화물연대 파업에 볼모로 잡힌 가축들

2022-06-14 18:00
국내 사료용 곡물 자급률 1%...수입품 운송 막으면 공장 멈춰
사료 공장 재고는 일주일 미만...축산 업계는 사태 장기화 우려
정부, 개입 시 사태 악화 우려...농식품부 "계속 모니터링 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에 가축들이 볼모로 잡혔다. 사료 생산 업체가 원료인 곡물을 수입해도 화물연대가 항구에 발을 묶어 놓고 간헐적으로 반출을 허용하고 있다.

축가에서는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인 가축들을 살리기 위해 동물 생존권 위협을 호소하지만 화물연대는 사료용 곡물 운송에 훼방을 놓고 있다. 반면, 정부는 사태 악화를 우려해 섣불리 대처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14일 축산업계에 따르면 각 축사는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사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료 원료로 사용되는 곡물이 항구에 들어왔지만 화물연대가 운송을 방해하면서 사료 생산 공장에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료용 곡물 자급률이 1% 수준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 곡물은 선박을 통해 항구로 들어와 전국 각 사료 생산 공장으로 운송되는데, 이를 막아버리면 국내 수급이 불가능한 구조여서 전국 사료 생산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태가 심각한 곳은 군산항이다. 군산항은 국내로 들어오는 사료용 곡물 중 20~30%를 담당하고 있다. 이에 전라북도에 위치한 사료 생산 공장 수는 총 17곳으로 5019MT(메트릭톤)에 달하며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생산력을 갖추고 있다.

사료협회 관계자는 “군산 쪽에서 화물연대가 봉쇄와 해제를 반복하고 있다”며 “일부 물량을 조금씩이라도 반출하고 있어서 출고율이 평소에 비해 40~60% 수준인데 공장들 재고는 일주일 치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군산항을 기반으로 충남, 전북에 회원사가 많이 포진해 있다"며 "해당 업체들이 애로를 많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각 지역별로 사료 지사를 두고 있는 농협도 사료 확보에 나섰다. 농협 관계자는 “사료 담당자가 직접 군산항 현장에 찾아가 기사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이번 파업이 길어지면 전국 각 지사 중 재고가 확보된 곳에서 조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축산 업계는 생존권 위협과 동물 생명 존중을 강조하며 화물연대 총파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양계 업계 관계자는 “곡물과 사료 수송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한나절 기준으로 사료를 공급하고 있어서 비상사태”라며 “동물 생명을 다루는 산업도 관련 있는데 파업은 더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태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쏟아진다. 앞서 양계업계 관계자는 “사료 보관이 어려워 길어도 2~3일 치 정도만 쌓아 놓을 수 있다”며 “일부 회사는 사료 생산을 멈춘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도 “사태가 장기화되면 업계 전체적으로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며 “(화물연대가) 생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고 파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한우협회 관계자는 “한우 농가는 대부분 일주일 치 사료 재고를 확보해둔 상태지만 앞으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축산업계에는 최근 국제 곡물 가격 인상으로 인한 사룟값 폭등에 이어 공급을 막는 이번 파업이 이중고로 다가오고 있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총파업 참여자의 이해 관계도 있지만 농가들은 굉장히 불안감을 겪고 사룟값도 폭등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5월 세계 곡물 가격 지수는 전월보다 2.2% 상승한 173.4포인트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사료에 주로 쓰이는 옥수수 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 가뭄 등 국제 요인으로 2020년 12월 1㎏당 209원에서 올해 2월 394원으로 급등했다. 한돈자조금위원회는 올해 9월 옥수수 가격이 1㎏당 510원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사룟값은 축산업에서 육류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미 세계 육류가격 지수는 사룟값 상승 여파로 전월보다 0.5% 오른 122.0포인트를 기록하며 오름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사료용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곡물 운반용 선박에 사용되는 연료 가격 변동성 여파도 받는다. 지난 8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는 등 국제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통해 “전국 10만여 축산농가에 공급되는 연간 2500만여톤의 사료 생산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봉착해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소, 돼지, 닭을 굶길 판”이라고 밝혔다.

축단협은 “가축은 생물로서 사육 기간 중 매일 사료를 섭취해야 하며 그 비용은 축산물 생산비의 50% 이상”이라며 “운송 중단이 확대될 경우 축산농가 사료 공급 전면 중단은 예고된 수순”이라고 전망했다.
 

6월 14일 오전 전남 광양항 출입구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전남본부 노조원들이 배치한 화물트럭들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각 업계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번 파업 개입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정부는 지난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화물연대와 4번째 교섭에 나섰지만 결렬로 끝났다.

화물연대는 14일 “(교섭) 막판에는 스무 시간 가까이 논의 끝에 합의한 잠정합의안을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며 “(국토부가) 다른 주체를 설득하지 못했다며 합의까지 철회한 것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내용이 담긴 입장문을 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화물연대가 큰 문제를 만들지 않을 정도로 사료용 곡물 운송을 방해하고 있다”며 “사료를 못 받은 축산 농가에서 동물들이 죽어버리면 화물 연대가 상당히 심한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와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정부 개입 시 사태 악화도 우려된다”며 “협회나 업계 등을 통해 계속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화물연대가 파업을 할 때마다 축산 농가들이 반복적으로 피해를 보자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 ‘공중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국민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인 필수 공익 사업에 대해서는 업무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쟁의 행위가 제한된다. 필수 공익 사업에는 철도·항공·수도·전기·가스·통신 등이 포함된다.

축단협은 "국가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축산물을 볼모로 한다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필수공익사업에 사료산업을 추가해 반복적인 화물연대 파업으로부터 축산기반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