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변리사법 개정안 핵심은 직역 다툼이 아닌 '특혜 강화'

2022-05-19 15:06

[김민규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변리사에게 특허·상표·디자인 관련 민사소송에서 소송대리권을 허용하는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소송 전문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비 전문가에게 소송대리권한을 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자격사 제도의 취지와 근간을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처사다. 소관 상임위 단계에서는 의견을 잘 밝히지 않는 법원조차 이례적으로 16페이지에 달하는 의견서를 제출해 법안에 대한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다.
 
병원 직원이 어깨너머로 의료시술 기법을 배웠다고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는 않는다. 설령 이들의 실력이 정말로 뛰어나다고 가정해도,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시험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의료행위는 불법시술에 불과하다.
 
송무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3년간의 법학전문대학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도 6개월의 실무수습 기간을 거쳐야 비로소 소송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후에도 물론 오랜 기간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검증된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전문 자격의 요체(要諦)를 엄벙덤벙 무권한자에게 넘겨주는 것은 결국 자격제도를 만든 근본 취지를 몰각시킬 수 있다.
 
전문자격은 포퓰리즘·온정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자격 취득과 활동에 있어 염결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대리를 맡긴 국민의 권익을 누수 없이 보호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입법자가 전문자격사 제도를 창설하고 엄격하게 관리·유지하는 근본 취지다.
 
변리사 업계는 '세계적인 추세'를 언급한다. 특허소송을 변리사가 맡는 것이 각국의 상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변리사가 말하는 ‘세계 각국’이 어디를 의미하는지 모르겠으나, 법률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에서는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소송대리 권한을 주는 일이 흔치 않다.
 
‘특허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Bar exam)을 통과한 변호사 중에서 이공계 학위를 가진 사람이 추가로 특허 관련 법리에 대한 시험을 치러야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가 된다. 그리고 특허변호사만 특허 관련 소송수행을 할 수 있다. 독일 변리사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격한 과정을 마쳐야 하지만,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국은 2010년 변리사 제도를 없애고 변호사로 통합하는 사법개혁을 이뤘다.
 
하지만 국내 변리사들은 로스쿨을 나오지도, 변호사시험을 치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들이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라고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를 물으면 “특허 관련 법령의 영어명칭이 ‘Patent Attorney’라고 되어 있다”는 황당한 소리만 한다. “검증된 과정을 거쳤느냐”고 물었더니 “영어명칭이 이러니 자격을 갖춘 것 아니냐”는 소리다. 동문서답이다. 엉뚱한 번역상의 오류는 차치하더라도, 명칭을 본질로 호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로스쿨 졸업과 변호사시험 합격이라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국내 변리사들은 소송대리가 불가능한 ‘Patent Agent’에 해당한다.
 
이번 변리사법 개정안 통과에 특허청이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현행 변리사법에 따르면 특허청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7급 공무원은 변리사 1차시험을 전부 면제받는다. 5급 이상으로 5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1차시험 전부와 2차시험 일부 과목을 면제받는다.

공무원을 하다 그만두면 전문 자격증을 수월하게 취득하고, 여기에 소송대리 권한까지 가져가는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한 처사다. 공무원에게 이런 식으로 이중삼중 특혜가 제공되니 우리나라는 결국 ‘공무원을 위한 나라’에 불과하다는 자조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심지어 이같은 특허청 전관(前官)들이 송무 시장까지 파고들어 인맥과 네트워크를 동원해 수임질서를 교란해도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애초에 변리사들에게는 소송대리에 따른 막중한 직업윤리와 의무를 부담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기술적 문제에 관한 진술이 필요하다면 기 마련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하면 충분하다. 굳이 비 소송전문가를 참여시켜서 국민들의 비용과 시간을 이중으로 낭비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변리사법 개정안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직역갈등 내지는 ‘밥그릇 싸움’으로 호도하려 한다. 사욕(私慾)을 감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직역 이기주의와 특허청 공무원 특혜 강화에 부역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