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지보험 규제 역설]당국 규제 본격화에 절판 마케팅 기승

2022-03-28 08:00
내달부터 무해지 보험 규제 본격화…중도 해지 손해 유념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이 무·저해지 환급금 보험상품의 판매 규제를 하기로 하면서 오히려 절판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내달부터 관련 상품의 보험료가 오르거나 상품이 사라질 수 있는 만큼 가입 채널이 있는 지금 가입하라는 것인데, 당국의 당초 취지인 소비자 피해 근절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무·저해지 상품 절판 마케팅 성행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오는 4월 1일부터 일부 무·저해지 상품 판매가 중단되거나 보험료 인상을 앞두고 있어 이른바 '절판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보험사와 일부 보험설계사들은 무·저해지 보험 가입을 고민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개정 내용을 알리고 개정 전 보험 상품 가입을 독려하려고 각 사 홈페이지 안내, 안내문자 메시지 발송, 전화 안내 등을 통해 무·저해지 보험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무·저해지 보험이란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일반 상품보다 10∼40% 저렴한 상품이지만 중도 해지 때 환급금이 거의 없고, 납입 기간이 끝난 뒤 해지해도 돌려받는 돈이 원금에 크게 못 미치는 상품이다. 일반 보험은 중도에 해지 때 원금의 70∼80%에 해당하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무·저해지 보험은 납입 기간 중 환급금이 없고, 납입 기간이 지난 뒤 환급금 역시 일반 보험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6살 여자아이가 납입 기간 20년(100살 만기)의 어린이 보험에 가입하면, 일반 보험의 경우 월 보험료가 6만3000원이고 20년 동안 총 납입 보험료는 1512만원이다. 이 상품을 무해지로 가입하면 월 보험료가 대략 3만4000원이고 총 납입액이 827만원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보험 경과 기간에 따른 해지 환급금과 환급률을 따져보면 보험 가입 10년 뒤 일반 보험의 경우 73.4%(555만원)를 돌려받지만, 무·저해지 보험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0원이다. 납입 기간 20년을 채운 시점에 일반 보험은 환급률이 81.2%(1228만원)인데, 무해지 보험은 환급률이 14.7%(122만원)로 여전히 크게 낮아진다.

이 때문에 과거 불완전판매가 나타나기도 했다. 보험사들이 무·저해지 보험을 판매할 때 보험료가 싸다는 점만 강조하고 해지시 환급금이 매우 적거나 없다는 점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소비자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9년 10월 무해지 보험에 대해 소비자경보를 발령하는 등 규제를 본격화했다. 

당시 금감원은 무해지 보험상품에 대해 △보험상품 명칭상 ‘무해지·저해지 환급금 보험’ 여부 우선 확인 △안내자료를 통해 일반상품과 비교내용을 꼼꼼히 확인 △해지환급금이 없거나 적을 수 있음을 반드시 확인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사실만 강조하는 경우 유의 △납입기간 이후 환급률만 강조하는 경우 유의 △종신·치매보험은 목돈 만들기나 연금 목적으로는 부적합 △보험료 납입기간 동안에는 보험계약대출이 어려울 수 있음 △만기까지 유지하는 경우가 가장 이익 등 8가지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무해지 보험은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굉장히 오래 유지해야 가입자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서 안정적인 직장을 보유한 소비자가 주요 타깃"이라며 "절판 마케팅을 통해 가입한 충동적 가입자는 중도해지율이 높아 상품을 추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금융위, 무해지 보험 해지율 산출·모범규준 시행

금융위원회는 오는 4월부터 무·저해지 보험에 대한 '해지율 산출·검증 모범규준'을 시행한다. 이 규준에는 보험사가 50% 환급형 무해지 상품의 판매를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해지 상품은 보험 약정 기간 중 소비자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면 환급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기존보다 적은 상품이다. 저해지환급금 상품은 환급금이 있지만, 일반 상품에 비해 낮은 환급률을 적용하는 상품으로 10·20·50% 등으로 세분화된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보험업계와 함께 무·저해지 보험의 상품 종류 및 해지환급금 수준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해지율을 산출하도록 공통의 해지율 산출기준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10% 미만 환급형 무·저해지 보험은 지난해 8월 중단됐다.

해지환급금이 없거나 기존상품보다 적은 만큼, 보험사들은 최근 몇 년간 보다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워 무·저해지 보험 판매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왔다. 무·저해지 환급형 보험상품은 신계약 건수 기준 2016년 32만1000건에서 2017년 85만3000건, 2018년 176만4000건, 지난 2019년에는 400만건에 달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지율 산출·검증 모범규준’은 금년 중 사전예고를 거쳐 내년 시행할 예정”이라며 “보험업법 시행령, 감독규정 등 법규 개정사항은 입법예고 등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무해지 장기 유지 시 가입자 혜택…중도 해지 시 손해

무·저해지 보험이 일반보험 대비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한 만큼, 당장 가입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중도해지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장기간 보험계약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손해를 볼 여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0년 기준 보험 가입 이후 2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25회차 유지율'은 생명보험의 경우 평균 62.2%로 2019년 대비 3.7%포인트 하락, 손해보험도 평균 25회차 유지율이 65.0%로, 전년 대비 3.3%포인트 낮아졌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소득상실과 같이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보험료 납입이 어려운 상황에는 중도 해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보험계약자 입장에서는 보험료 전액을 날리게 된다. 보험계약대출이나 중도 인출도 가능하지만, 해약환급금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해약환급금이 아예 없는 무해지형 상품은 대출이나 중도 인출도 할 수 없게 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상품 개정으로 가계에 보험료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장기보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 유리한 것은 맞다"면서도 "장기 보험 가입 계획을 갖고 있는 고객이라면 보험료 인상 전에 필요한 상품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