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변성현 감독이 던진 질문…'킹메이커'
2022-01-27 06:43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선이 코앞이다.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인터넷·TV 등 많은 매체에서 대선 후보와 그의 가족들의 과거 발언부터 행적들이 기사화되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며 민심 잡기에 나서기도 한다. 후보들도 국민도 이번 후보에 그만큼 진심이라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영화 '킹메이커'가 개봉했다. 변성현 감독은 "이 시기에 개봉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라며 부담감을 토로했지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씨를 모티프로 한 만큼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하게 된 정치극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변 감독의 작품들을 관심 있게 지켜본 팬들이라면 알다시피 '킹메이커'는 여느 정치극과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이 없는 작품이다. 전쟁통 같은 선거판 속 오히려 고요하게까지 느껴지는 두 인물에게 집중한다. 변 감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김운범(설경구 분)'과 선거 참모 엄창록씨를 모델로 한 '서창대(이선균 분)'를 빛과 어둠으로 상징하고 이를 대비 시키며 영화적인 언어로서 풀어가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대의를 위한 옳지 않은 선택, 과정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완성하고자 한다. 변 감독이 오랜 시간 궁금해하고 골몰했다는 질문인 만큼, '킹메이커'는 그에 관한 답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약방을 하던 '서창대'. 그는 어린 시절 가족들이 '빨갱이'로 몰리고 눈앞에서 죽임당하는 걸 목격하며 트라우마를 겪게 된 인물이다. 그는 우연히 젊은 정치인 '김운범'의 거리 연설을 보게 되고 깊이 감명받는다. 독재에 맞서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김운범의 뜻에 반해 무작정 그의 선거 캠프에 합류, 기발한 선거 전략으로 '김운범'을 국회의원 당선까지 이끌게 된다. 서창대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거침없이 나아가고 그의 전략은 백이면 백 먹히며 민심을 흔든다. 그러나 적군은 물론 아군까지 서창대를 경계하게 되고 '대의를 위한다면 과정까지 정당해야 한다'라는 김운범과 마찰을 빚게 된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지만 꿈에 가까워질수록 관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변 감독은 '실화'가 주는 힘과 '영화적 상상력'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전을 읽으며 영화 '킹메이커' 시나리오를 떠올린 변 감독은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거인' 김대중이 아닌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젊은 정치인'의 모습을 중심으로 영화의 사실감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엄창록씨를 통해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서창대' 캐릭터보다 '김운범' 캐릭터가 다소 부실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인물들을 대입하며 극에 이입할 수 있었다. '실화'와 '실제 인물'이 주는 힘과 '영화적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쓰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영화는 1970년대 치열한 정치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김운범과 서창대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두 인물이 겪는 감정의 격변은 마치 멜로 영화처럼 섬세하고 세세하다. 변 감독의 전작 '불한당' 속 인물들의 감정선과 연장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변 감독은 "모든 영화 속 인물의 관계에는 멜로가 있다"라며, 의도한 바는 아니나 자신이 글을 풀어내는 방식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풀어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전쟁통 같은 정치판 속 두 남자의 섬세한 감성과 감정 변화가 여느 정치극과 다를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전작 '불한당'으로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변 감독은 '킹메이커'를 통해 클래식한 매력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미술적으로 클래식한 영화들을 보며 레퍼런스를 얻었다고 밝힌 변 감독은 '킹메이커'가 외적으로 클래식하게 느껴지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 배경, 색감, 미술, 소품, 촬영 등도 고전 영화처럼 보이길 바랐고 '불한당'과는 다른 결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다. '불한당'을 시작으로 '킹메이커' '길복순'까지 함께하며 변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게 된 배우 설경구는 '김운범' 역할을 맡아 극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설경구가 주는 묵직함은 '킹메이커'가 추구하는 클래식함을 완성한다. '기생충'으로 글로벌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이선균은 선거판의 여우로 불리는 서창대 역을 통해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인물이 겪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과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외에도 박인환, 유재명, 김성오, 전배수 등 연기파 배우들이 빈틈없이 영화를 채운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건 이 실장 역의 조우진이다. '내부자들' '마약왕' '도굴' 등 다양한 작품, 장르, 캐릭터를 소화해낸 조우진이지만, '킹메이커' 속 이 실장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봐 온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변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시기 개봉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상업 영화로서 즐겨주길 바란다"라고 부탁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영화 속 에피소드들을 마냥 웃어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러 매체를 통해 언급되었던 선거판의 비화나 시대를 담아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기색을 여러 군데서 마주할 수 있다. 변 감독이 던진 질문이 선명하지만, 관객들이 긴 상영 시간 동안 집중력 있게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1월 26일 개봉이며 관람 등급은 15세. 상영 시간은 123분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선이 코앞이다.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인터넷·TV 등 많은 매체에서 대선 후보와 그의 가족들의 과거 발언부터 행적들이 기사화되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며 민심 잡기에 나서기도 한다. 후보들도 국민도 이번 후보에 그만큼 진심이라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영화 '킹메이커'가 개봉했다. 변성현 감독은 "이 시기에 개봉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라며 부담감을 토로했지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씨를 모티프로 한 만큼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하게 된 정치극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변 감독의 작품들을 관심 있게 지켜본 팬들이라면 알다시피 '킹메이커'는 여느 정치극과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이 없는 작품이다. 전쟁통 같은 선거판 속 오히려 고요하게까지 느껴지는 두 인물에게 집중한다. 변 감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김운범(설경구 분)'과 선거 참모 엄창록씨를 모델로 한 '서창대(이선균 분)'를 빛과 어둠으로 상징하고 이를 대비 시키며 영화적인 언어로서 풀어가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대의를 위한 옳지 않은 선택, 과정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완성하고자 한다. 변 감독이 오랜 시간 궁금해하고 골몰했다는 질문인 만큼, '킹메이커'는 그에 관한 답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약방을 하던 '서창대'. 그는 어린 시절 가족들이 '빨갱이'로 몰리고 눈앞에서 죽임당하는 걸 목격하며 트라우마를 겪게 된 인물이다. 그는 우연히 젊은 정치인 '김운범'의 거리 연설을 보게 되고 깊이 감명받는다. 독재에 맞서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김운범의 뜻에 반해 무작정 그의 선거 캠프에 합류, 기발한 선거 전략으로 '김운범'을 국회의원 당선까지 이끌게 된다. 서창대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거침없이 나아가고 그의 전략은 백이면 백 먹히며 민심을 흔든다. 그러나 적군은 물론 아군까지 서창대를 경계하게 되고 '대의를 위한다면 과정까지 정당해야 한다'라는 김운범과 마찰을 빚게 된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지만 꿈에 가까워질수록 관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변 감독은 '실화'가 주는 힘과 '영화적 상상력'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전을 읽으며 영화 '킹메이커' 시나리오를 떠올린 변 감독은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거인' 김대중이 아닌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젊은 정치인'의 모습을 중심으로 영화의 사실감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엄창록씨를 통해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서창대' 캐릭터보다 '김운범' 캐릭터가 다소 부실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인물들을 대입하며 극에 이입할 수 있었다. '실화'와 '실제 인물'이 주는 힘과 '영화적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쓰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영화는 1970년대 치열한 정치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김운범과 서창대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두 인물이 겪는 감정의 격변은 마치 멜로 영화처럼 섬세하고 세세하다. 변 감독의 전작 '불한당' 속 인물들의 감정선과 연장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변 감독은 "모든 영화 속 인물의 관계에는 멜로가 있다"라며, 의도한 바는 아니나 자신이 글을 풀어내는 방식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풀어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전쟁통 같은 정치판 속 두 남자의 섬세한 감성과 감정 변화가 여느 정치극과 다를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다. '불한당'을 시작으로 '킹메이커' '길복순'까지 함께하며 변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게 된 배우 설경구는 '김운범' 역할을 맡아 극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설경구가 주는 묵직함은 '킹메이커'가 추구하는 클래식함을 완성한다. '기생충'으로 글로벌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이선균은 선거판의 여우로 불리는 서창대 역을 통해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인물이 겪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과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외에도 박인환, 유재명, 김성오, 전배수 등 연기파 배우들이 빈틈없이 영화를 채운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건 이 실장 역의 조우진이다. '내부자들' '마약왕' '도굴' 등 다양한 작품, 장르, 캐릭터를 소화해낸 조우진이지만, '킹메이커' 속 이 실장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봐 온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변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시기 개봉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상업 영화로서 즐겨주길 바란다"라고 부탁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영화 속 에피소드들을 마냥 웃어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러 매체를 통해 언급되었던 선거판의 비화나 시대를 담아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기색을 여러 군데서 마주할 수 있다. 변 감독이 던진 질문이 선명하지만, 관객들이 긴 상영 시간 동안 집중력 있게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1월 26일 개봉이며 관람 등급은 15세. 상영 시간은 123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