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유오성·장혁 '강릉', 나름의 낭만
2021-11-11 00:05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때 한국 영화의 주요 소재는 '주먹'이었다. 조폭들의 사랑, 우정, 야망, 배신 등을 두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장르도 다양했다. 코미디로 시작해 액션, 스릴러 등으로 진화했고 대체로 이 조폭 영화들을 '한국형 누아르'라고 불렀다.
어느 새인가부터 관객들은 '한국형 누아르'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영화, 저 영화에 중복으로 출연하는 주·조연 배우들부터 반복되는 조폭들의 사랑, 우정, 배신 음모 등은 더이상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이다. 진부한 영화는 외면받고, 진보한 영화는 박수받는 것이 마땅하니. '한국형 누아르'라 불리던 조폭 영화들이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1일 영화 '강릉'(감독 윤영빈)이 베일을 벗었다. 영화 제목이며 포스터, 출연진 등 아무리 둘러보아도 '요즘' 영화처럼 보이진 않았다. 요즘 같은 때 조폭 영화라니. 철 지난 영화는 아닐까 심드렁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들여다보니 역시나 영화 '강릉'은 친숙하면서 정통 한국형 누아르였다. 조직과 조직 간 알력 싸움이나 배신 그리고 엇갈린 인물들의 방향성과 물고 물리는 관계 등은 교과서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주목해야 할 건 영화 '강릉'이 가진 정서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던 때의 강릉을 배경으로 각 인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을 수 있다. 낭만을 좇는 길석(유오성 분)을 바라보는 민석(장혁 분)의 염세적 시선과 결국 반복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은 나름의 서정성을 띠고 있다. 여운이 남는 아는 맛. 자주는 아니어도 한 번쯤은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강릉 최대 조직의 이인자 길석은 의리를 중요히 여기는 인물이다. 그는 나름의 규칙을 지키며 강릉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조직 보스 오 회장(김세준 분)은 길석에게 리조트 사업을 물려주기로 하고 조직 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새 나오기 시작한다. 한편 살육과 약탈 속에서 살아남은 민석은 떠돌이 생활 끝에 강릉으로 흘러든다.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모든 규칙을 어기고 약탈을 일삼는 민석은 길석의 리조트까지 탐낸다. 그는 무서운 속도로 조직의 몸집을 키워가고 결국 길석과 만난다. 살아온 길도, 생각도 다른 두 사람은 두 사람은 서로의 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길석은 강릉과 자신의 모든 것을 망치려는 민석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리고 이로 인해 모든 평화가 깨진다.
강릉 출신 윤영빈 감독은 "올림픽을 앞둔 시기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강릉에 대한 마음"으로 '강릉'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말했다. 강릉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복합적인 마음이 담겼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길석과 민석은 곧 과거와 현재, 낭만과 현실의 대치기도 하다. 다만 윤 감독은 낭만과 현실 사이 괴리감을 차갑지만은 않게 표현해냈다. 길석이라는 인물을 앞세운 까닭이기도 하다. 울컥 차오르는 감수성을 곳곳에 채워 넣으며 '강릉'만의 감성을 완성한다.
아쉬운 점도 보인다. 소재며 전개 방식, 인물 구성이나 관계성 그리고 영화적 표현까지 예스러움을 벗지는 못했다. 군데군데 전형성을 비틀어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캐릭터들도 기묘하다. 아주 친숙하면서 동시에 불친절해서다. 전형적인 캐릭터라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궁금한 점들은 무심하게 다 지워냈다. 배우들의 개인기에 많은 걸 기대다 보니 인물 간 편차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길석과 민석의 대치, 대비를 통해 민석의 처지나 공허한 감정, 염세적 시선이 더 깊이 있게 다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그들의 활약은 반갑다. 감독을 설득해 길석 역을 맡게 되었다는 유오성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한다. 스크린을 지키는 그의 얼굴에서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민석 역할에 관한 장혁의 해석이 인상 깊고 김세준, 오대환, 이현균, 송영규 등 중년 배우들의 무게감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11월 10일 개봉. 상영 시간은 119분이고 등급은 청소년관람 불가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때 한국 영화의 주요 소재는 '주먹'이었다. 조폭들의 사랑, 우정, 야망, 배신 등을 두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장르도 다양했다. 코미디로 시작해 액션, 스릴러 등으로 진화했고 대체로 이 조폭 영화들을 '한국형 누아르'라고 불렀다.
어느 새인가부터 관객들은 '한국형 누아르'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영화, 저 영화에 중복으로 출연하는 주·조연 배우들부터 반복되는 조폭들의 사랑, 우정, 배신 음모 등은 더이상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이다. 진부한 영화는 외면받고, 진보한 영화는 박수받는 것이 마땅하니. '한국형 누아르'라 불리던 조폭 영화들이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1일 영화 '강릉'(감독 윤영빈)이 베일을 벗었다. 영화 제목이며 포스터, 출연진 등 아무리 둘러보아도 '요즘' 영화처럼 보이진 않았다. 요즘 같은 때 조폭 영화라니. 철 지난 영화는 아닐까 심드렁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들여다보니 역시나 영화 '강릉'은 친숙하면서 정통 한국형 누아르였다. 조직과 조직 간 알력 싸움이나 배신 그리고 엇갈린 인물들의 방향성과 물고 물리는 관계 등은 교과서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주목해야 할 건 영화 '강릉'이 가진 정서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던 때의 강릉을 배경으로 각 인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을 수 있다. 낭만을 좇는 길석(유오성 분)을 바라보는 민석(장혁 분)의 염세적 시선과 결국 반복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은 나름의 서정성을 띠고 있다. 여운이 남는 아는 맛. 자주는 아니어도 한 번쯤은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강릉 최대 조직의 이인자 길석은 의리를 중요히 여기는 인물이다. 그는 나름의 규칙을 지키며 강릉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오랜 시간 그를 지켜본 조직 보스 오 회장(김세준 분)은 길석에게 리조트 사업을 물려주기로 하고 조직 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새 나오기 시작한다. 한편 살육과 약탈 속에서 살아남은 민석은 떠돌이 생활 끝에 강릉으로 흘러든다.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모든 규칙을 어기고 약탈을 일삼는 민석은 길석의 리조트까지 탐낸다. 그는 무서운 속도로 조직의 몸집을 키워가고 결국 길석과 만난다. 살아온 길도, 생각도 다른 두 사람은 두 사람은 서로의 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길석은 강릉과 자신의 모든 것을 망치려는 민석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리고 이로 인해 모든 평화가 깨진다.
아쉬운 점도 보인다. 소재며 전개 방식, 인물 구성이나 관계성 그리고 영화적 표현까지 예스러움을 벗지는 못했다. 군데군데 전형성을 비틀어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캐릭터들도 기묘하다. 아주 친숙하면서 동시에 불친절해서다. 전형적인 캐릭터라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궁금한 점들은 무심하게 다 지워냈다. 배우들의 개인기에 많은 걸 기대다 보니 인물 간 편차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길석과 민석의 대치, 대비를 통해 민석의 처지나 공허한 감정, 염세적 시선이 더 깊이 있게 다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그들의 활약은 반갑다. 감독을 설득해 길석 역을 맡게 되었다는 유오성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한다. 스크린을 지키는 그의 얼굴에서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민석 역할에 관한 장혁의 해석이 인상 깊고 김세준, 오대환, 이현균, 송영규 등 중년 배우들의 무게감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11월 10일 개봉. 상영 시간은 119분이고 등급은 청소년관람 불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