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마블 페이즈4를 연 동양인 영웅
2021-09-02 05:35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공주와 왕자 다수는 새하얀 얼굴에 노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불끈불끈 한 근육질을 가진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딴 세상 이야기처럼 보였던 동화,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을 보면서도 그것이 으레 당연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까만 피부와 곱슬머리를 가진 공주나 왕자, 영웅을 만날 수 있고 대중도 이를 '이상하다' 여기지 않게 됐다. 인종, 성별 등 다양성에 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 속 '동양인' 영웅은 만나기 어려웠다.
마블의 새 영웅 '샹치'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사실 얼떨떨 했다. 동양인 영웅의 단독 영화라니! 게다가 마블 페이즈4의 포문을 열게 된다니······. 반가우면서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영화 속 동양인 영웅이 긍정적으로 그려질 거라는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 속 전형적인 동양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내 시사회를 통해 만난 '샹치'는 그런 우려를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마블 스튜디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범죄 조직 '텐 링즈' 수장 웬우(양조위 분)의 아들 샹치(시무 리우 분). 어머니를 잃은 뒤 가혹한 수련을 받으며 '텐 링즈'의 일원이 된 그는 어린 나이 아버지를 피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도망친다. 그는 친구 케이티(아콰피나 분)와 만나 일상을 누리며 평범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샹치와 케이티 앞에 괴한이 나타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준 펜던트를 내놓으라며 위협하자 샹치는 숨겨두었던 엄청난 무술 실력을 꺼내 그들과 맞선다. 샹치는 어린 시절 연이 끊긴 동생 샤링 역시 위험에 처해있다는 걸 직감하고 한달음에 마카오로 향한다.
다시 만난 동생 샤링은 자신을 두고 도망쳤던 샹치에 적대감이 큰 상황. 그러나 아버지 웬우가 짜놓은 덫을 타파하며 손을 잡기로 한다.
과거 텐링즈의 힘으로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렸던 웬우는 새로운 계략을 짜고 샹치와 샤링에게 힘을 보태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샹치와 샤링은 이를 거부하고 케이티와 함께 힘을 합쳐 세계를 지키고자 한다.
영화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감독 테스틴 크리튼)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기존 '어벤져스' 구성원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블 영웅과 이야기를 꾸리는 페이즈4의 시작점이다.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아이언맨' '앤트맨' 등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전설의 조직 '텐 링즈'의 실체를 다루는 '샹치'의 이야기로 전작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앞서 '샹치'는 1973년 마블 코믹스 '스페셜 마블 에디션#15'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다.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영국 정보국 MI6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스파이더맨에게 무술을 가르치거나 어벤져스에 합류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마블 코믹스에서는 주로 주변 인물로 쓰였던 인물. 그를 주인공으로 단독 영화를 제작한 건 '변화'에 관한 마블의 의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파격적인 행보는 관객들의 다양한 수요(니즈)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MCU의 전형성을 깨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활로를 제시한 영리한 '출발'이다.
영화는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을 현혹한다. 등장인물들은 중국 무협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무술을 기반으로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소화한다. 고전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인물들의 맨몸 액션은 우아하면서도 박력 있게 느껴진다. MCU 영웅들과 다른 새로운 액션이다.
넷플릭스 제작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을 통해 얼굴을 알린 시무 리우는 샹치 역을 위해 촬영 6개월 전부터 무술을 단련했다. 맨몸 액션을 단련해온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건 영화 초반 '텐 링즈' 일원과 샹치의 격투신.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시무 리우와 스턴트 배우들의 합으로 해당 장면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데스틴 크리튼 감독은 각 인물의 액션 장면에 캐릭터와 감정을 녹여내 보다 서정적인 감성으로 채웠다.
또 인물들의 입체적 묘사는 아시안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고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준다. 악인의 아들이자 아버지를 넘어서야만 하는 아들 샹치의 딜레마부터 아내와 가족에 관한 사랑으로 다시 악인이 되고자 하는 웬우의 서사, 성별의 한계를 깨고 성장하는 여동생 샤링과 보통의 청춘에서 자신의 능력을 찾아가고 발전하는 케이티 등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도 세심하게 짚어낸다.
MCU 연속물에 처음 합류한 작품인 만큼 배경이나 등장인물 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설명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관객들이 쉽게 이야기를 따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MCU에 파격적인 동양 판타지가 덧대어져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닥터 스트레인지' '샹치'로 연결점을 잡으며 관객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MCU에 등장한 동양 판타지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꾸려갈지 기대가 커진다.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작품과 캐릭터에 애정 가득한 시무 리우는 관객들에게 '샹치'라는 인물을 멋지게 소화해냈고 여동생 샤링 역의 장멍과 이모 난 역의 양자경은 멋진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케이티 역의 아콰피나는 극의 활력소로 조력자를 넘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인물. 특히 웬우 역을 연기한 양조위는 모든 판타지를 단번에 납득하게 만드는 명연기를 펼친다. 양조위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다. 9월 1일 개봉이고 등급은 12세 관람가. 상영시간은 132분이며 쿠키 영상은 2개다. 다음 작품들과 '어벤져스'와의 관계성이 담겨있으니 잊지 않고 쿠키까지 관람하길.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공주와 왕자 다수는 새하얀 얼굴에 노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불끈불끈 한 근육질을 가진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딴 세상 이야기처럼 보였던 동화,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을 보면서도 그것이 으레 당연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까만 피부와 곱슬머리를 가진 공주나 왕자, 영웅을 만날 수 있고 대중도 이를 '이상하다' 여기지 않게 됐다. 인종, 성별 등 다양성에 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 속 '동양인' 영웅은 만나기 어려웠다.
마블의 새 영웅 '샹치'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사실 얼떨떨 했다. 동양인 영웅의 단독 영화라니! 게다가 마블 페이즈4의 포문을 열게 된다니······. 반가우면서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영화 속 동양인 영웅이 긍정적으로 그려질 거라는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 속 전형적인 동양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내 시사회를 통해 만난 '샹치'는 그런 우려를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마블 스튜디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범죄 조직 '텐 링즈' 수장 웬우(양조위 분)의 아들 샹치(시무 리우 분). 어머니를 잃은 뒤 가혹한 수련을 받으며 '텐 링즈'의 일원이 된 그는 어린 나이 아버지를 피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도망친다. 그는 친구 케이티(아콰피나 분)와 만나 일상을 누리며 평범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샹치와 케이티 앞에 괴한이 나타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준 펜던트를 내놓으라며 위협하자 샹치는 숨겨두었던 엄청난 무술 실력을 꺼내 그들과 맞선다. 샹치는 어린 시절 연이 끊긴 동생 샤링 역시 위험에 처해있다는 걸 직감하고 한달음에 마카오로 향한다.
다시 만난 동생 샤링은 자신을 두고 도망쳤던 샹치에 적대감이 큰 상황. 그러나 아버지 웬우가 짜놓은 덫을 타파하며 손을 잡기로 한다.
과거 텐링즈의 힘으로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렸던 웬우는 새로운 계략을 짜고 샹치와 샤링에게 힘을 보태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샹치와 샤링은 이를 거부하고 케이티와 함께 힘을 합쳐 세계를 지키고자 한다.
앞서 '샹치'는 1973년 마블 코믹스 '스페셜 마블 에디션#15'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다.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영국 정보국 MI6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스파이더맨에게 무술을 가르치거나 어벤져스에 합류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마블 코믹스에서는 주로 주변 인물로 쓰였던 인물. 그를 주인공으로 단독 영화를 제작한 건 '변화'에 관한 마블의 의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파격적인 행보는 관객들의 다양한 수요(니즈)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MCU의 전형성을 깨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활로를 제시한 영리한 '출발'이다.
영화는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을 현혹한다. 등장인물들은 중국 무협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무술을 기반으로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소화한다. 고전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인물들의 맨몸 액션은 우아하면서도 박력 있게 느껴진다. MCU 영웅들과 다른 새로운 액션이다.
넷플릭스 제작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을 통해 얼굴을 알린 시무 리우는 샹치 역을 위해 촬영 6개월 전부터 무술을 단련했다. 맨몸 액션을 단련해온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건 영화 초반 '텐 링즈' 일원과 샹치의 격투신.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시무 리우와 스턴트 배우들의 합으로 해당 장면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데스틴 크리튼 감독은 각 인물의 액션 장면에 캐릭터와 감정을 녹여내 보다 서정적인 감성으로 채웠다.
또 인물들의 입체적 묘사는 아시안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고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준다. 악인의 아들이자 아버지를 넘어서야만 하는 아들 샹치의 딜레마부터 아내와 가족에 관한 사랑으로 다시 악인이 되고자 하는 웬우의 서사, 성별의 한계를 깨고 성장하는 여동생 샤링과 보통의 청춘에서 자신의 능력을 찾아가고 발전하는 케이티 등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도 세심하게 짚어낸다.
MCU 연속물에 처음 합류한 작품인 만큼 배경이나 등장인물 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설명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관객들이 쉽게 이야기를 따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MCU에 파격적인 동양 판타지가 덧대어져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닥터 스트레인지' '샹치'로 연결점을 잡으며 관객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MCU에 등장한 동양 판타지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꾸려갈지 기대가 커진다.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작품과 캐릭터에 애정 가득한 시무 리우는 관객들에게 '샹치'라는 인물을 멋지게 소화해냈고 여동생 샤링 역의 장멍과 이모 난 역의 양자경은 멋진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케이티 역의 아콰피나는 극의 활력소로 조력자를 넘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인물. 특히 웬우 역을 연기한 양조위는 모든 판타지를 단번에 납득하게 만드는 명연기를 펼친다. 양조위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다. 9월 1일 개봉이고 등급은 12세 관람가. 상영시간은 132분이며 쿠키 영상은 2개다. 다음 작품들과 '어벤져스'와의 관계성이 담겨있으니 잊지 않고 쿠키까지 관람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