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복군 후손, 김원웅 광복회장·황기철 보훈처장 공수처 고소

2021-07-05 00:00
이형진 장안회 회장 아주경제 단독 인터뷰
"김원웅 부친 입증 주민등록표 1963년엔 존재 안해"

이형진 장안회 회장. [사진=이형진 장안회 회장 제공]
 

광복군 제2지대 후손 모임인 장안회 이형진 회장이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주장한 김원웅 광복회장을 '부모 허위 독립유공자'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한다.

이형진 회장은 4일 아주경제에 "6일 오전 11시 공수처에 국민을 기망한 김원웅 광복회장과, 직무를 유기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접수한다"고 밝혔다.

최근 김 회장 부친인 김근수씨 독립운동 공훈 기록이 허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근수씨에 대한 보훈처 공훈 기록에 따르면 정부가 1963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1992년 1월에 김근수씨가 작고한 것으로 나온다. 김 회장 역시 1963년부터 1990년까지 선친이 포상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국가보훈처 '1963년 대통령표창자 김근수 공적조사'와 '생존 작고'란에는 1963년 이전에 이미 작고한 것으로 표시돼 있다.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근수와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승급된 김근수는 동일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이형진 회장이 김원웅 광복회장과 황기철 보훈처장 상대로 6일 공수처에 접수할 고소장 내용 일부. [사진=이형진 장안회 회장 제공]


◆1963년 8월 15일 광복군 대통령표창에 왜 참석 안했나

1963년 8월 15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광복군에 표창했다. 당시 인원은 342명. 현재 500여명이 넘는 광복군보다 현저히 적은 수다. 이 중에는 김원웅 회장 아버지 김근수씨 이름도 포함됐다. 다만, 이름 앞에 작고했음을 알리는 고(故) 김근수라고 표시됐다.

이 회장은 "1963년 8월 14일 조선일보에 고(故) 김근수(金根洙)라고 실렸다"며 "김원웅이 선친이라고 주장하는 김근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행사에 김근수씨 본인도, 김원웅을 비롯한 유가족 어떤 이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이를 증명할 사진도 가지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342명 대상자를 일일이 악수하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복회 측은 "1963년도 대통령표창자 김근수 지사는 그 당시 '주민등록표'에서 김원웅 회장 부친과 동일인으로 확인됐다"며 "보훈처는 공식적 조사 결과를 신속히 공개하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동일인 확인한 주민등록표, 1963년엔 있지도 않아"

이 회장은 광복회 해명을 재반박했다. 김원웅 회장이 근거로 든 주민등록표가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주민등록표는 세대주를 중심으로 한 주민등록 사항을 적어 놓은 문서다. 북한 무장공작원이었던 김신조 등 31명이 일으킨 1·21사태 발생 후 도입된 주민등록법(1962년 5월 10일 법률 제1067호로 제정)에 따라 전국적으로 거주자 등록을 의무화하면서 작성이 시작됐다.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법 제정 후 6년 뒤인 1968년 11월에 처음 등장했다. 1·21사태를 계기로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식별한다는 목적에서다. 대한민국 1호 주민등록증 소지자는 김신조 목표물이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 1968년 11월 21일 발급받았다.

이 회장은 "1968년 주민등록증이 나온 뒤에 주민등록표가 작성됐는데 1963년에 주민등록표가 있었다는 김원웅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며 "김원웅이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고소장에는 현재 제기된 의혹 외에도 김원웅이 재심을 받으며 부여받은 공적서 관리번호 '8245'와 관련해 공무원을 매수한 정황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대학생 때 아버지가 거주한 '내연동 산 18번지'에 찾아가 제목이 '주민등록표'인 문서를 찾았다"며 "수기로 적힌 문서에서 세대주가 아버지 본인임을 확인했다. 어머니와 동생 등 가족사항도 기재돼 있었다"고 재차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