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시대 정치개혁 대제언] 정운찬 "동반성장이 시대정신…美헐리우드·NFL모델 배워라"

2021-04-02 03:00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대담···<5>경제학자가 본 韓정치 비효율성
"세계, 다 동반성장 작동원리로 움직여...롤스로이스·크라이슬러도"
"이익공유는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 같이 일하고 나누는 것"
"실물·금융 동반성장해야...文 '주가 3000시대 개막' 발언 공헌해"
"'LH發 사태' 부당이익 몰수 소급 추진 반대...죄형법정주의해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소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대담=최신형 정치사회부장, 정리=박경은 기자] "동반성장은 시대정신이다. 세계가 다 동반성장의 작동원리로 움직일 것이다."

3월 끝자락에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찾았다. 본지 빅시리즈인 '뉴노멀 시대 신정치를 제언함'의 다섯 번째 순서로 한국 최고의 경제학자가 본 한국 정치 현실이 궁금했다.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이사장 정운찬)에서 오랜 만에 만난 그는 1시간 동안 진행된 대담에서 여러 차례나 "동반성장이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전 총리는 "미국도 동반적 성장이 잘된 나라“라며 할리우드와 내셔널풋볼리그(NFL)를 예로 들었다.

그는 "러닝 개런티는 영화 흥행 여부를 미리 알 수 없으니 '나중에 대박이 나면 수익을 더 준다'는 개념"이라며 "NFL 역시 세계에서 동반성장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 전 총리는 NFL이 구단별 수익 불균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TV중계권 계약을 리그에서 통합 관리하고 경기장 입장수익도 재분배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곳이 바로 프로스포츠와 할리우드"라며 "동반성장은 결국 홍보가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동반성장 홍보에 힘을 쏟고 있는 정 전 총리는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려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한국의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해 눈곱만큼도 배려를 안 해주고 있다"며 경제학 전공을 권유한 계기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오늘날 동반성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 전 총리는 2010년 이명박(MB) 정부 동반성장위원회의 수장을 맡은 데 이어 2012년 6월에는 위원회와는 별개로 독립적인 동반성장연구소를 직접 설립해 지금까지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느낀 서운함도 토로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17년 동반성장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번 정권은 '동반성장'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음은 정 전 총리와의 대담.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소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익공유의 핵심은 자발적 협력"

-앞서 여당발(發) 이익공유제에 대해 강제성 등을 이유로 비판했다. 자발성 여부 말고도 초과이익공유제와 무엇이 다른가.


"이익공유라고 하는 것은 같이 일하고서 이익을 나누는 것이다. (수출)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의 이익공유가 대표적이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뒤 대기업의 납품 가격 후려치기가 전보다 심해졌다. IMF에 돈을 갚기 위해서는 수출이 잘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수출품 가격이 싸야하기 때문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규모는 더욱 커졌다. 그렇게 대기업이 돈을 벌었으면 일부를 불공정거래를 당한 협력 중소기업에 조금씩 나눠줬어야 한다. 시혜적 차원이 아닌 보상적 차원에서 그랬어야 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협력 중소기업이 잘돼야 대기업도 잘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완성차업체 '크라이슬러'와 에어콘 업체 ‘캐리어’가 제휴 기업 간 이익공유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비트윈(between·사이) 기업'이다."

-여당이 추진하는 '상생 3법(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자영업 손실보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여당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득을 본 기업들에 '돈 좀 내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이익공유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익공유제는 할리우드에서 시작될 때도 제휴주체 간에 또는 협력기업 간에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여름에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 또는 수영복이 잘 팔렸다고 해서 덕 본 사람들에게 '돈 좀 내라. 손해를 본 기업에 나눠줘라'고 하는 것은 주먹구구식이다. 또 정부가 이익공유제도를 시작하면 강제성 문제도 있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성과공유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동반성장위원회에 있을 때 '초과이익공유제는 가뭄의 단비, 성과공유제는 언발에 오줌누기'라고 표현했다. 무슨 뜻이냐면 초과이익공유제는 협력 또는 제휴하는 기업 간에 이익이 많이 나면 더 주는 것이고, 성과공유제는 그게 아니다. 어떤 대기업이 'A제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런 건 우리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만들 기업 없느냐? 3억~5억원 수익이 예상된다'고 하면 협력 중소기업이 달라고 해서 계약을 맺어 이익 증가에 도움이 되면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소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유동성 거품, 언젠가 터지게 마련"

-실물·금융의 복합 위기인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서고 있다. 문제점은 없나.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이 커지며 증시나 부동산으로 돈이 많이 흘렀다. 특히 돈이 증시로 너무 많이 가는 게 상당히 위험하다. 실물과 증권도 동반성장해 서로간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극단적으로 투자하다가는 큰일 난다. 과도하게 금융화된 경제는 '카지노 경제'를 가져오고 금융자산 가격의 거품을 조성한다. 거품은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고 절정에 이르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4차 긴급재난지원금 등 확장적 재정정책과 한국판 뉴딜로 방어막을 친 상황인데.

"금융과 실물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문 대통령이 '주가 3000시대 개막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며 국민에게 자부심을 가지자고 했는데 위험할 수도 있다. 작년만 해도 코스피 지수가 2000이 안 된 적도 있었다. 양극화가 심화될 위험도 있고, 증시는 고위험·고수익 자산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또 한국에서 계속 뉴딜을 얘기하는데 아쉽게도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자세히 보면 재정을 투입해서 경기를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과거에도 다 했던 정책이다. 뉴딜이 뭔지를 알기 위해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했던 것을 봐야 한다. 뉴딜은 사고, 제도 등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의 기본 시리즈와 전 국민 고용보험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코로나19 시국에서는 무리한 '웅비(기운차고 용기있게 활동하는 것)'보다 생존이 중요하다. 정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지도 못했으면서 이런저런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실시되는 개혁이 계속되면, 나라는 갈피를 못 잡고 불신만 쌓인다. 지금이라도 미래에 관한 비전과 확고한 전략을 바탕으로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는 내실 있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소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민주당·국민의힘 두 메뉴뿐··· 다양성 없어"

-정치권이 돈 풀기에 나서면서 산업을 비롯한 구조개혁 타이밍을 실기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국민연금 개혁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


"과거에 경기가 침체됐을 때 어쩌면 망해야 하는 기업인데도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남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유사한 상황이다. 기업대출도 마찬가지지만 누구에게 지원금을 줄 때도 그 기업의, 그 사람의 사정을 잘 알고서 줘야 한다. 일괄적으로 모두 다 주게 된다면 사실 도태되는 게 마땅할지 모르는 기업들 또는 소상공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건 신중해야 한다."

-정부의 LH발(發) 사태 후속 대책인 '부당이익 몰수 소급' 추진 등은 실효성이 있을까.

"소급 입법에는 반대다. 죄형법정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현행 법상으로 나쁜 짓을 했다고 소급해서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역대 대선 때마다 제3후보론으로 부상하면서 정치권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거대 양당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양당 제도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아이디어의 다양성 부족이다. 지금 메뉴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뿐이다. 두 당이 거의 같다. 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니까 국민의힘도 동참했다. 선거에서 이겨야 하니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그렇다."

-한국 정치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승자독식 체제로는 다양성을 지향하기 힘들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서로를 보면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라 여기까지 왔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고 그것을 응용하고 또 누구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정의당도, 녹색당도 평화당 등도 필요하다. 우리도 다당제·내각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여의도에서 나올 것 아니냐. 그걸 세상에 알리고 잘하면 다음에 집권도 하고. 지금 체제로는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겠느냐."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소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