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유럽서 잇따른 AZ 접종 중단 사태… 진짜 원인은?

2021-03-17 16:53
'혈전' 논란 일으킨 AZ 백신, EMA "혈전 유발 징후 없다"
유럽서 잇단 백신 접종 중단 조치...이면에는 EU·영국 갈등?
정부 "AZ 백신 접종 중단 없다" 백신 휴가 카드도 만지작

AZ백신 [사진=연합뉴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이후 혈전(혈액 응고)이 발생했다는 사례 보고가 잇따르자 일부 유럽 국가가 AZ 백신 접종 중단을 결정했다. 지난 7일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AZ 백신 접종 중단은 전 세계 23개국으로 번졌다. 상황을 지켜보던 독일과 프랑스도 접종 중단에 합류하자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백신을 꺼리는 사태까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약품청(EMA)이 AZ 백신의 혈전 유발 징후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한국 정부는 AZ 백신 접종을 계속하기로 했다.
 
17일 보건 업계에 따르면, AZ 백신을 둘러싼 혈전 논란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됐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7일 40대 여성 간호사가 AZ 백신을 맞은 뒤 심각한 혈액 응고 장애, 이른바 혈전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당국도 AZ 백신을 맞은 50살 미만의 의료진 3명이 혈전과 출혈 등의 증상으로 중태에 빠져 입원 치료 중이라고 밝히면서 AZ 백신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탈리아에서도 AZ 백신을 맞은 40대 해군 요원과 50대 경찰관, 교사가 돌연 숨지자 유럽 국가들은 AZ 백신 접종을 금지했다.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본사가 있는 영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가(EU 27개국 중 19개국)가 접종을 중단했다.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등은 AZ 백신 접종을 잠정 중단했으며, 사망자가 나온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등은 특정 제조 번호를 가진 배치(생산 한 회분)에 대해 접종을 일시 멈췄다.
 

유럽서 접종 중단 잇따르는 AZ 코로나19 백신.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유럽 국가들의 잇따른 백신 접종 중단 조치 이면에는 EU와 영국 간 감정싸움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5일 "(EU 국가들의 결정에는) 면역학적 문제보다 백신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가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지난 1월 AZ 백신 공급 물량을 두고 EU는 영국, 제약사(아스트라제네카)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언급한 신경전은 EU와 영국·아스트라제네카 사이에 벌어진 '백신 대란'을 말한다. 지난 1월 아스트라제네카가 EU에 공급하기로 했던 백신 8000만회분 중 40%가량만 납품할 수 있다고 통보하자 EU는 계약 위반이라고 문제 삼았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최대한 노력하겠다(Best effort)'고 했을 뿐 계약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급계약서에는 보증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즉각 EU는 유럽에서 생산하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영국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내놓으면서 EU·영국 간 균열은 커졌고, 결국 유럽의 AZ 백신 접종 중단 사태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EMA "AZ 백신, 혈전 유발 징후 없어" 전문가들 "AZ 백신 이익, 위험성보다 크다"
유럽 전역에서 AZ 백신 접종 중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백신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AZ 백신 접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MA는 16일 AZ 백신이 혈전을 유발한다는 징후는 없다고 못 박았다. 에머 쿡 EMA 청장은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수백만명에게 백신 접종을 할 때 (혈전이 발생하는) 이런 상황은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EU 전역에서는 매년 수천명이 다양한 이유로 혈전이 생긴다. AZ 백신 임상 시험에서도 혈전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AZ 백신 접종을 받는 이화의료원장 [사진=연합뉴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의 백신 안전 책임자인 필 브라이언 박사는 "혈전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흔한 증상이다. 현재 영국 전역에 1100만회 이상의 AZ 백신을 투여한 상황인데, 백신 접종 후 보고된 혈전 사례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혈전 사례) 수보다도 적은 수치"라고 말했다. 

존 기빈스 영국 레딩대 심장·신진대사 연구소 소장도 CNN방송에 "정맥혈전증은 통상 1000명당 1~2명이 앓는 만큼 비교적 흔하다. 수백만명을 접종하면 불가피하게 접종자 중에 혈전증 사례가 몇 건 나오겠지만 그 자체로 백신과 혈전 사이에 인과성이 입증되진 않는다"고 전했다.

이처럼 확증이 없는데도 국가가 나서 AZ 백신 접종을 중단하면 장기적으로 백신 불신을 부채질해 코로나19 사태 극복에 지장이 생길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스티븐 그리핀 리즈 의과대학 부교수는 유럽 국가들의 AZ 백신 사용 중단에 대해 "실망스럽다(disappointing). 반(反) 백신 감정을 부추겨 코로나19 예방 접종 노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AZ 백신 접종 중단 없다···'백신 휴가' 카드도 만지작
AZ 백신이 혈전을 만든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는 AZ 백신 접종 진행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17일 "국내에서 AZ 백신으로 인한 혈전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처음 계획대로 접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9월까지 국민 70%가 1차 접종을 마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또 추진단은 국내 AZ
백신은 혈전 생성 논란이 있는 유럽 백신과 다른 제품이라는 점을 들어 접종 중단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정부가 다음 달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AZ접종을 본격화하기로 하자 '백신 휴가'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신 접종 후 항체 형성 과정에서 발열과 근육통 등 증상을 동반하는 만큼 사람들이 안심하고 접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백신 휴가'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휴가 제도화'를 제시하면서 접종 후에 하루나 이틀 정도 쉴 방안을 국가가 지원하면 (백신 접종률 증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이에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당정은 (백신 휴가에) 모두 공감대가 생긴 상황이며 당론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유급휴가 일수는 2일에 불과해 재원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다. 비용부담은 민간에서 진행하고 이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