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트럼프 시대의 코로나19, 팍스아메리카나의 종말 앞당겼나
2020-11-13 06:00
미국 지배 하의 세계 평화질서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종말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달러는 아직 글로벌 기축통화이며, 미국은 여전히 전세계 1위 경제·군사 강대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부실한 대응에 이어 2020년 대선에서 최악의 혼란까지 보여주면서, 전세계 리더로서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쇠퇴와 더욱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중국이 당장 미국을 대체하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대 시장을 무기 삼아 일부 국가들을 압박할 수는 있지만, 유럽을 비롯한 일본, 인도 등 다른 강대국들 내 반(反)중국 정서 역시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단기간 내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고, 정치 불안이 지속될 경우 경제는 더 큰 타격을 받으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70년간 미국을 국제 무대 최강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던 동맹들마저 돌아선다면, 제국의 쇠락은 더 빨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위에 겹친 트럼프···내상 깊은 미국 경제 타격도 클 듯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4.3%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예상했던 -8%에 비해 크게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회복세는 다시 꺾일 수 있다고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이 심화하고 있지만, 추가부양책이 단기간 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 일일 신규확진자는 10만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체 확진자는 이미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일일 신규확진자도 14만명을 넘어서면서 20만명을 금세 돌파할 수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추가 부양 지연이 길어질 경우 미국 경제가 회복되기 힘든 내상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대규모 부양책은 내년 1월 대통령 취임식 이후에나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일 치러진 대선 이후 미국 정치는 역대 어느 상황보다 불안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소송이 모두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정치 불안은 한시가 급한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미국 정치 불안이 높아지면서 달러 약세도 심화하고 있다. 달러는 코로나19 이후 재정적자 급증과 경제 악화 장기화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최근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약달러는 미국 수출기업에게는 호조다. 그러나 달러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이것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치를 위협하는 '위험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월 설문조사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들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은 미국 달러 약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로소 인베스트먼트의 마이클 게이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달러가 급락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전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글로벌 국가들이 점차적으로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줄이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지난 10월 미국 싱크탱크 퓨 리서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4개 선진국 중 미국, 일본, 한국을 제외한 11개 국가가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으로 꼽은 국가는 중국이었다. 비록 중국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중국 경제에 대한 기대와 긍정적 평가는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동맹에 등돌린 대가, 영향력 약화될 수밖에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는 이른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동맹 시스템은 지난 70년 동안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라고 평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국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본국(homeland)에 닿기 전에 관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다. 미국은 또 1951년 호주, 일본, 뉴질랜드와 안보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1953년 한국과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 전선을 구축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는 외부 공격에 대한 공동 대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들 사이에 분배는 오랜 기간동안 미국과 동맹국들의 줄다리기가 이어진 부분이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대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시까지 미국은 이전보다 많은 청구서를 동맹들에게 내밀었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에 새로운 무기 시스템 구매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부담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올라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5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일본을 비롯해 한국, 독일 등 국가에 비용 부담 비중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잘사는 동맹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부터 단물만 빼먹고 있다는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동맹이 미국으로부터 도움만 받는 것은 아니라고 브루킹스연구소는 지적한다. 미국은 동맹을 통해 자국이 원하는 글로벌 방위망을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매일같이 동맹국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훈련을 병행하며, 공동 무기체계를 이용하면서 미국의 방위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면서 "지난 70년간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은 미국 동맹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토가 없었다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지, 동맹이 없었다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서 어떤 희생과 비용을 치러야 했을지를 생각해보면 왜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이 동맹과의 관계를 이어왔는가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재임 이후 계속 동맹을 잃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2017년 1월 이후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선호도는 해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추락했다. 지난 9월 퓨 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이미지는 일부 국가에서 선호도가 역대 최하를 기록했다. 한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호주 등이다.
이 중에서도 영국 내 미국 우호도는 41%까지 하락하면서 조사 시작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프랑스(31%)와 독일(26%)에서는 이라크 전쟁으로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했던 2003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2020년 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더 하락한 것은 코로나19와 관련이 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잘 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낮아졌다. 보고서는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국가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말과 비슷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최고의 평가를 받은 일본에서도 선호도는 25% 정도로 낮았다. 그나마 높은 선호도를 보였던 집단은 유럽의 포퓰리즘 우파 정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