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담보' 김희원 "연기는 항상 불만족…쉽지 않더라"
2020-10-19 00:00
영화 '담보'(감독 강대규)에서도 김희원의 담백한 연기는 빛을 발했다.
인정사정없는 사채업자 '두석'(성동일 분)과 그의 후배 '종배'가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박소이 분)를 담보로 맡아 키운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현실로 발붙일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 김희원은 '두석'의 곁을 지키는 후배 '종배' 역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영화가 어떻게 보면 신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느껴질까. 그게 가능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는 종배 역을 맡으며 "억지로 코미디를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잔잔한 감동을 기반으로 한 가족 드라마에서 '가벼운 역할'을 맡았다고 억지로 코미디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억지'가 관객들의 몰입을 깰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두석과 종배가 차이나타운을 헤매잖아요. 그 모습이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까칠한 성격의 상사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고 덜렁대는 후배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혼란스러워하는 게 더 잘 어울리겠다고 여긴 거죠. 일상적인 모습이죠. 영화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살짝 코믹하게 느껴지도록 디테일을 살렸어요."
김희원은 '종배' 캐릭터를 군대 고문관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과가 그만큼 나와주지 않는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정당성을 주기 위해 성동일과 김희원 그리고 강대규 감독은 중지를 모았다.
"감독님께서 과거 군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후배를 구했고 두 사람이 매우 돈독해졌다는 일화를 말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번뜩 두석과 종배의 모습이 떠올랐죠. 영화 속에서는 편집되었지만 그런 설정을 군데군데 언급하기도 했었어요."
이 같은 고민과 과정을 거쳤지만, 결과물을 보고는 "연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속상한 속내를 드러냈던 김희원. 시사회 직후 진행됐던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솔직하게 표현했던 감상평을 한 번 더 물었다.
"영화가 아니라 제 연기가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사실 지금까지 30년 정도 연기했는데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었어요. 영화를 보면 '아, 왜 저렇게 연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사회에서도 (영화를) 잘 못 봐요. 언젠가 '아, 잘했나' 하는 날도 올까요? 모르겠어요. 아쉬움이 늘 남는 것 같아요."
영화 '담보'가 김희원에게 더 따뜻하게 남았던 건, 그의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성동일과 고민을 나누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잘 들어주고 함께 나눠주죠. '첫술에 배부르냐. 50년 뒤에 더 잘하면 되지'하고 거들어주세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신뢰와 단단함은 거창한 '자랑'이 아닌 가볍게 던지는 말들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성격이 너무 다르다" "귀찮다"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실은 그를 깊이 애정하고 있다는 것이 뚝뚝 묻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거든요. 그런데 형은 항상 저를 불러내고 이거저거 시켜봐요. 이제는 일부러라도 형을 따라서 뭔갈 해보려고 해요. '바퀴달린 집'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눈물을 흘렸던 건, 그간 제가 너무 자신을 가두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거든요. '아, 그동안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하늘을 날아 보니까 저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형이 뭘 하자고 제안하면 '저게 맞나보다' 하고 그냥 따를 때도 있어요."
tvN 예능프로그램 '바퀴달린 집'에 출연한 뒤, 김희원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간 영화 '아저씨' '불한당' 등에서 악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순한 성격으로 시청자들에게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다. 대중들은 그를 더욱 친근하게 여겼고 스스럼없이 다가가기도 했다.
"저는 사실 예능 속 제 모습이 싫어요. 연기자가 연기로 알려지는 게 아니라 다른 것으로 화제 몰이를 하는 것도 조금 부끄러워요. 연기가 좋다, 안 좋다 정도로만 평가받았으면 해요."
연기에 있어서는 항상 진심이다. 김희원은 배우 아닌 인간적으로 느끼는 '행복'도 결국 연기와 뗄 수 없다고 말했다.
"제가 인정받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전 사소한 거로 행복해하고 사소한 거로 슬퍼하거든요. 얼마 전 유튜브에서 '첫 장면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았어요. 연기 강사가 제작한 영상이었는데 그 수업의 자료로 '불한당' 속 저의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등장과 첫 대사 등에 관해 칭찬하는데 마음이 막 뿌듯하더라고요. 그런 순간들이 저를 행복하게 해요."
모든 순간이 '발전'의 과정이라는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30여 년간 연기를 했더라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작아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는 사실 오래 연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70살 정도까지 해내도 오래 잘 버틴 거라고 봐요. 어떤 분들은 '난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라고도 하시는데 저는 그게 너무 슬플 거 같아요. 건강하고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남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