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도 없이' 유아인의 새 페이지
2020-10-16 00:59
문학 작품 속 새로운 '페이지'를 펼칠 때의 기분. 배우 유아인(35)에게는 그런 설렘이 있다. 데뷔 18년 차 배우가 어떻게 매 작품 낯선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냐마는 유아인은 그 안에서도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질하고 유약한 소년의 얼굴을 담은 '좋지 아니한가', 처절한 삶 속 희망을 품은 '완득이', 굵은 연기 선을 보여준 '사도'와 새로운 리듬을 보여준 '베테랑'까지.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방점을 찍으며 스펙트럼을 확장해왔다.
신작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도 마찬가지다.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영화를 통해 유아인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또 다른 '페이지'로 접어든 셈이다.
"개인적으로 유아인을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나던 시기, '소리도 없이'를 만나게 됐어요. 배우로서 다른 표현이나 상태를 체험하고 현장에서도 다른 무게나 책임을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던 찰나에 만난 것이기도 하고요. 조심스럽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변화와 희망,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요."
이번 작품에서 유아인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태인을 연기했다. '시체 수습'이라는 살벌한 일을 도맡지만 태인은 근면·성실한 인물로 땀 흘려 돈을 버는 노동자처럼 그려진다.
"아주 자극적이고 위험한 일들인데 이토록 일상적으로 그려져도 되는 걸까?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일들이 일상적인 톤으로 그려졌을 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됐거든요.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어느 정도 적절하고 적당한 양심으로 저마다 일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작품도 그렇지만 캐릭터 역시 녹록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을 열지 않는 인물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공기부터 바꿔나가야 했다. 눈짓, 호흡 등 작은 단위의 것들도 섬세하게 짚어야 했다.
"태인이 자연스럽게 보이길 바랐고 (그런 이유로) 15㎏ 정도 증량했어요. 겉으로는 위압감을 주지만 아이 같기도 하고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는데 용이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쉽게 기대할 수 있는 효과였고요."
홍의정 감독은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관객들이 함께 느끼고 채워나갈 수 있도록 비워둔 셈이다. 그가 생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물들의 서사다. 태인과 창복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태인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저도 캐릭터의 전사를 설정하지 않았어요. 상상은 했지만, 영화로 끌고 오지는 않았죠. 이 영화는 모호하게 가져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홍의정 감독은 '태인'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유아인에게 넘겼다. 구체적 표현으로 인물을 가두기보다 에둘러 유아인이 느끼길 바랐던 모양이다.
"그런 식의 요청이 많았어요. '이런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명확지 않으니 아인씨가 그냥 움직여 주세요.' 매 순간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고 그 안에서 감독님이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진행했어요. 감독님의 주문대로 따라가려고 한 거죠."
시사회 직후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심상치 않았다. 작품은 물론 배우들에게도 칭찬이 쏟아졌고 지난 15일 개봉 후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아인은 많은 이들이 '소리도 없이'를 반기는 것에 감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애틋하게 여기는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짐작해볼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목부터 '소리도 없이'라니 정말 도발적이지 않나요? 빛과 어둠, 소리가 결국 영화의 본질인데 '소리도 없이'를 내세우다니. 하하하. 작품만큼이나 감독님도 놀라운 분이에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분이죠. 감독님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대가 됐어요. 이런 끌림이 있을 수 있다니! 이상적인 관계가 가능했죠."
그는 홍의정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모든 선택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홍의정 감독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자 한 것이다.
"영화가 상당히 날카롭고 도발적인데 이 결이 무뎌지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너무 많이 소비된 배우인데. 저 때문에 이 작품이 무뎌지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어요. 그런 부분을 경계하면서 찍었고 제가 느낀 도발적인 느낌, 모호하지만 끊임없이 확장되는 느낌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했죠. 상업 영화를 지향하지만, 그 안에서 감독님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도록 까불었던 정도죠."
유아인이 얼마나 홍 감독을 믿고 지지했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일화도 있었다. 그는 촬영하는 동안 홍 감독에게 여러 차례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일이 있다면 무조건 내게 일러바쳐라"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홍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무슨 주문을 하건, 저를 어디로 끌고 가건 '오케이. 좋다!'고 했어요. 어디든 어떻게든 해볼게 하는 태도로 임했던 거죠. 사적으로도 장난도 많이 치고 감독님을 괴롭히기도 했어요. 저를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서요. 그런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경직된 분위기 안에서 풀어지는 경험이요. 그게 다른 가능성을 두드리기도 하거든요."
그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태인에게서도 자신과 일체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무심함'과 '꼬인 속내'였다.
"무심하면서도 유심한 구석? 꼬여 있는 속내 같은 거. 그런 태도가 저랑 닮은 거 같아요. 하하하. 한편으로는 저와 달라 부러운 점도 있었어요. 우리는 수많은 표현 속에 살고, 표현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너무 많은 표현을 하다 보면 오히려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태인은 그런 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니까. 그런 게 부럽기도 했어요."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도중 "유재명은 창복과 자신의 닮은 부분으로 '귀여움'을 꼽았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이에 유아인도 조심스레 "저도 귀여움"이라고 거들어 모두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영화의 결말 속 '희망'과 유아인 개인의 '희망'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관계부터 초희의 선택, 그리고 태인이 맞을 미래가 도리어 관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영화 속 엔딩을 보고 희망적이지 않아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영화 속 이야기니까요. 관객에게 전이되었을 땐 더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에게 영화 속 인물의 미래가 뭐가 중요해요. 현실이 더 중요하지. 그런 점에서 '소리도 없이'의 가치를 느끼고 있어요. 요즘 영화들 사이에 '화려한 사기'가 유행하고 있어요. 삶의 본질이나 인간의 본질은 드러내지 않고 그럴 듯한 위로나 희망, 환상적 마법을 통해 미래와 꿈을 선물하죠. 그런 선물 집에 둘 데도 없는데…. 우왕좌왕하는 게 요즘 영화와 관객의 사이인 것 같아요. 그래도 ('소리도 없다'는) 가져가실 만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죠."
배우 개인에게도 '소리도 없이'는 희망적인 작품이다.
"새로운 순간은 찾아와요.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속어)하면 돼요. 그게 어렵지만요. 버티다 보면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고, 이상한 자책도 하게 되는데 그래도 버티다 보면 어떤 순간이 찾아와요. 저에게 '소리도 없이'는 그런 작품이에요. 홍의정 감독의 등장까지도요."
지질하고 유약한 소년의 얼굴을 담은 '좋지 아니한가', 처절한 삶 속 희망을 품은 '완득이', 굵은 연기 선을 보여준 '사도'와 새로운 리듬을 보여준 '베테랑'까지.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고 방점을 찍으며 스펙트럼을 확장해왔다.
신작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도 마찬가지다.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영화를 통해 유아인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또 다른 '페이지'로 접어든 셈이다.
이번 작품에서 유아인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태인을 연기했다. '시체 수습'이라는 살벌한 일을 도맡지만 태인은 근면·성실한 인물로 땀 흘려 돈을 버는 노동자처럼 그려진다.
"아주 자극적이고 위험한 일들인데 이토록 일상적으로 그려져도 되는 걸까?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일들이 일상적인 톤으로 그려졌을 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됐거든요.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어느 정도 적절하고 적당한 양심으로 저마다 일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태인이 자연스럽게 보이길 바랐고 (그런 이유로) 15㎏ 정도 증량했어요. 겉으로는 위압감을 주지만 아이 같기도 하고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는데 용이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쉽게 기대할 수 있는 효과였고요."
홍의정 감독은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관객들이 함께 느끼고 채워나갈 수 있도록 비워둔 셈이다. 그가 생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물들의 서사다. 태인과 창복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태인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저도 캐릭터의 전사를 설정하지 않았어요. 상상은 했지만, 영화로 끌고 오지는 않았죠. 이 영화는 모호하게 가져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홍의정 감독은 '태인'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유아인에게 넘겼다. 구체적 표현으로 인물을 가두기보다 에둘러 유아인이 느끼길 바랐던 모양이다.
"그런 식의 요청이 많았어요. '이런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명확지 않으니 아인씨가 그냥 움직여 주세요.' 매 순간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고 그 안에서 감독님이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진행했어요. 감독님의 주문대로 따라가려고 한 거죠."
시사회 직후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심상치 않았다. 작품은 물론 배우들에게도 칭찬이 쏟아졌고 지난 15일 개봉 후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아인은 많은 이들이 '소리도 없이'를 반기는 것에 감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애틋하게 여기는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짐작해볼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목부터 '소리도 없이'라니 정말 도발적이지 않나요? 빛과 어둠, 소리가 결국 영화의 본질인데 '소리도 없이'를 내세우다니. 하하하. 작품만큼이나 감독님도 놀라운 분이에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분이죠. 감독님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대가 됐어요. 이런 끌림이 있을 수 있다니! 이상적인 관계가 가능했죠."
그는 홍의정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모든 선택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홍의정 감독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자 한 것이다.
"영화가 상당히 날카롭고 도발적인데 이 결이 무뎌지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너무 많이 소비된 배우인데. 저 때문에 이 작품이 무뎌지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어요. 그런 부분을 경계하면서 찍었고 제가 느낀 도발적인 느낌, 모호하지만 끊임없이 확장되는 느낌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했죠. 상업 영화를 지향하지만, 그 안에서 감독님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도록 까불었던 정도죠."
유아인이 얼마나 홍 감독을 믿고 지지했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일화도 있었다. 그는 촬영하는 동안 홍 감독에게 여러 차례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일이 있다면 무조건 내게 일러바쳐라"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홍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무슨 주문을 하건, 저를 어디로 끌고 가건 '오케이. 좋다!'고 했어요. 어디든 어떻게든 해볼게 하는 태도로 임했던 거죠. 사적으로도 장난도 많이 치고 감독님을 괴롭히기도 했어요. 저를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서요. 그런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경직된 분위기 안에서 풀어지는 경험이요. 그게 다른 가능성을 두드리기도 하거든요."
그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태인에게서도 자신과 일체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무심함'과 '꼬인 속내'였다.
"무심하면서도 유심한 구석? 꼬여 있는 속내 같은 거. 그런 태도가 저랑 닮은 거 같아요. 하하하. 한편으로는 저와 달라 부러운 점도 있었어요. 우리는 수많은 표현 속에 살고, 표현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너무 많은 표현을 하다 보면 오히려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태인은 그런 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니까. 그런 게 부럽기도 했어요."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도중 "유재명은 창복과 자신의 닮은 부분으로 '귀여움'을 꼽았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이에 유아인도 조심스레 "저도 귀여움"이라고 거들어 모두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영화의 결말 속 '희망'과 유아인 개인의 '희망'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관계부터 초희의 선택, 그리고 태인이 맞을 미래가 도리어 관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영화 속 엔딩을 보고 희망적이지 않아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영화 속 이야기니까요. 관객에게 전이되었을 땐 더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에게 영화 속 인물의 미래가 뭐가 중요해요. 현실이 더 중요하지. 그런 점에서 '소리도 없이'의 가치를 느끼고 있어요. 요즘 영화들 사이에 '화려한 사기'가 유행하고 있어요. 삶의 본질이나 인간의 본질은 드러내지 않고 그럴 듯한 위로나 희망, 환상적 마법을 통해 미래와 꿈을 선물하죠. 그런 선물 집에 둘 데도 없는데…. 우왕좌왕하는 게 요즘 영화와 관객의 사이인 것 같아요. 그래도 ('소리도 없다'는) 가져가실 만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죠."
배우 개인에게도 '소리도 없이'는 희망적인 작품이다.
"새로운 순간은 찾아와요.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속어)하면 돼요. 그게 어렵지만요. 버티다 보면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고, 이상한 자책도 하게 되는데 그래도 버티다 보면 어떤 순간이 찾아와요. 저에게 '소리도 없이'는 그런 작품이에요. 홍의정 감독의 등장까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