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풍선효과…해외부동산으로 몰리는 원정개미

2020-09-07 00:30

[제공=게티이미지뱅크]

국내 부동산을 정부에서 옥죄자 풍선효과로 해외 부동산을 찾는 원정개미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실물경기가 곤두박질쳤지만, 잇단 부양책으로 불어난 유동성에 힘입어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수요는 여전히 많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투자하는 지역이나 자산에 따라 수익과 안정성 차이가 클 수 있는 만큼 꼼꼼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해 보인다.
 
◆부동산펀드 수익 해외가 국내 2배

해외부동산펀드는 올해 들어 수익률에서 국내부동산펀드를 2배 가까이 앞서고 있다. 자금 흐름에서도 해외부동산펀드에는 돈이 들어오는 반면, 국내부동산펀드에서는 빠져나간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해외부동산펀드는 8월에만 3000억원가량을 새롭게 끌어모았다. 반면 국내부동산펀드에서는 1600억원 넘게 순유출됐다. 해외부동산펀드와 국내부동산펀드 설정액은 지난달 말 각각 57조7771억원과 48조2888억원을 기록했다.

전체적인 덩치로 해외부동산펀드가 국내부동산펀드를 앞지른 지는 한참 됐다. 2016년 말만 해도 해외부동산펀드 설정액은 20조8917억원으로 국내부동산펀드(24조8026억원)보다 적었다. 역전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해외부동산펀드는 그해 30조원을 넘어섰고, 국내부동산펀드는 29조원대에 그쳤다.

펀드평가사인 에프앤가이드 집계를 보면 해외부동산펀드 수익률은 올해 들어 이달 3일까지 3%에 육박했다. 이에 비해 국내부동산펀드 수익률은 1%대 중반에 그쳤다. 최근 3개월만 보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해외부동산펀드와 국내부동산펀드 수익률은 각각 2.51%와 -0.51%를 기록했다.

해외부동산펀드는 이런 수익률 차이 덕분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하반기 들어 내놓은 '한국투자도쿄기오쵸오피스부동산펀드'는 출시 5일 만에 완판됐고, 430억원 가까이 모았다. 비슷한 시기 나온 현대자산운용의 '현대유퍼스트부동산펀드30호'도 530억원가량 모아 상품을 성공적으로 설정했다.

한국투신운용과 현대자산운용이 이번에 출시한 해외부동산펀드는 모두 공모펀드로 일반투자자도 손쉽게 살 수 있다. 과거에는 해외부동산펀드가 사모 위주로만 만들어져 기관투자자나 거액 자산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요즘에는 문턱을 크게 낮췄다.
◆규제로 국내부동산펀드 좌초 사례도

국내부동산펀드는 꼬리를 무는 규제에 설정을 철회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올해 5월께 사모펀드를 통해 서울 강남에 위치한 410억원짜리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매입해 사업에 나사려고 했지만, 정부 측 압박에 못 이겨 실패했다. 결국 이지스자산운용은 이익을 못 남긴 채 아파트를 되팔아야 할 처지로, 이마저도 규제에 묶여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해당 아파트가 있는 강남은 6·17 부동산대책에 따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개인이 주택을 사면 바로 입주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한다. 즉, 갭투자가 사실상 막혔다.

부동산펀드는 기초자산으로 담은 부동산을 임대해 수익을 내다가 만기에 매각해 차익 또는 손실을 확정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정책 불확실성이 큰 경우에는 펀드를 만들 때 예상할 수 없었던 이유로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게다가 펀드를 구상하는 단계부터 국내 기관투자자끼리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기초자산 매입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해외부동산펀드가 국내부동산펀드를 멀찌감치 앞지른 이유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해외 부동산시장을 전망하면서 "금리가 낮아지면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인과관계는 지금도 유효하다"며 "모기지 금리가 낮아진 만큼 풍부한 유동성 효과가 가격 상승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국내 부동산시장에 대해 "정부가 추가로 내놓은 7·10 부동산대책은 부동산 가격 오름세를 진정시킬 것"이라며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예상된다"고 했다.
 
◆해외부동산도 투자 지역·자산 따져야

해외 부동산시장이라고 코로나19 여파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주택 가격은 강세인 반면 상업용 부동산은 수개월째 하락세다. 다만, 상업용 부동산 모두가 나쁘지는 않다. 리테일 부동산은 임대료가 줄어드는 바람에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지만, 대개 물류시설로 이루어진 산업용 부동산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상업용부동산지수(RCACPPI)는 7월 말 116.45로 전월 대비 0.1% 하락했다. 상업용부동산지수는 2월 고점을 기록한 뒤 달마다 하락세를 이어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는 하락폭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산업용 부동산(물류시설)은 작년 대비 8%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김선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상업용 부동산시장에서는 전통자산(사무용 빌딩)보다 물류센터나 데이터센터와 같은 비전통자산으로 투자가 집중될 것"이라며 "사무용 빌딩도 코로나19 장기화로 가격이 더 떨어진다면 우량자산을 사들이려는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주택 가격은 전반적으로 강세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택 가격은 6월 들어 전월 대비 0.9% 상승했고, 영국에서는 7월에만 한 달 전보다 1.7% 뛰었다"고 했다. 미국 주택 거래량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황이다. 주택시장이 금융위기 여파로 시름하던 2008~2009년 급락기와는 다른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구경회 연구원은 "미국에서 악성 연체가 늘고 있지만, 이미 예견됐던 4월 이후 신규 연체율 상승 때문"이라며 "주택시장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을 뺀 지역을 보면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이 강세다. 브렉시트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어서다. 일본 도쿄 부동산 가격도 반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와 해외 부동산을 가릴 것 없이 보수적인 투자는 기본이다. 한아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코로나19 영향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고, 실물경기 악화와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수익률 저하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위험노출이 단기에도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