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北] ②당 간부, 노동신문 1면 등장…김정은 전용 ‘지도’ 표현도

2020-09-03 08:00
北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대외 입장 공식 대변
전문가들 "노동신문 보면 김정은 의도 알 수 있다"
"당 간부 위상 높이면서도 김정은 권력 장악 과시"

북한을 이해하려면 노동신문을 매일 봐야 한다.

정부 당국자, 학자, 대북 민간단체 관계자 등 북한 전문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노동신문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기관지로서 북한의 대외적 입장을 공식 대변한다. 이 때문에 노동신문을 꼼꼼히 보면 북한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신문이 당 기관지인 만큼 1면에는 당의 수장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소식이 주로 담기거나, 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 주요 정책 수행을 강조하는 사설 등이 게재된다.

그런데 최근 노동신문 1면엔 김 위원장이 아닌 당 간부들이 모습이 담기는 파격적인 편집이 이뤄졌다. 또 당 간부들의 현지시찰 소식을 전하면서 ‘료해(파악)'가 아닌 ‘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은 통상 김 위원장과 노동당에 대해서만 ‘지도’라는 표현을 써왔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당 주요 간부들의 위상이 높아진 동시에 김 위원장의 통치 자신감이 확인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일 본지와 통화에서 노동신문의 당 간부 ‘현지지도’ 보도에 “북한의 변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당 간부들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현지에 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이 북한 박봉주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리병철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부위원장 등이 황해남도 장연군 협동농장을 돌며 태풍피해 복구사업을 지도하는 장면을 지면 1면에 배치한 모습을 보도했다. 북한 관영매체는 통상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식을 매체의 맨 앞에 배치·보도하는데, 이날은 이례적으로 당 부위원장들의 동정을 김 위원장 소식보다 앞쪽에 크게 배치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전날 노동신문은 박봉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리병철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부위원장 등이 황해남도 장연군 협동농장을 방문해 태풍피해 복구사업을 지도하는 모습을 1면에 배치했다. 또 이들의 현장시찰 소식을 전하며 “태풍피해 복구사업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박봉주, 리병철 이외 당 중앙위 부위원장인 김재룡, 리일환, 최휘, 박태덕, 김영철, 김형준 등에 대해서도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은 황해남도 장연군, 태탄군 여러 농장의 피해복구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전했다.

양 교수는 “당 간부들의 현지 지도는 김 위원장이 앞선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결정하고 지시한 것의 연장선”이라며 “외형상으로는 당 관료들의 위상 강화로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당의 역할이 강조된 셈”이라고 해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노동신문의 이런 보도 행태를 ‘파격’이라고 평가하며 “핵심 간부들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위임통치’가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센터장은 ‘김정은의 위임통치’에 대해 “김정은이 절대 권력과 핵심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보유하면서도 핵심 간부들에게 담당 분야에서의 정책 결정에 대해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했다”면서 “동시에 결정의 결과에 대해 승진이나 강등 등과 같은 방식으로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양 교수는 “‘유일 영도체제’인 북한 체제상 ‘위임통치’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면서 김 위원장의 권력 장악 자신감이 재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의 주재, 태풍 피해 현장 방문 등 김 위원장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상황에서 주요 측근들에 대한 일종의 역할 분담에 의한 책임 정치가 이뤄지는 듯하다”면서 “김 위원장이 그만큼 권력을 다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고, 주요 측근들을 활용한 통치 편의성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 부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2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태풍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