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때나 선거를 앞두고 보수정당의 대표가 광주를 찾아와 사과를 한 적은 있었지만 무릎을 꿇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사과문을 '민주의 문' 앞에서 낭독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광주에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바람과 행동에 저희당은 더욱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 했다"면서 "저희당의 일부 정치인들까지 그에 편승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동안의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진실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아울러 "위법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 감은 행위, 적극 항변하지 않은 소극성 역시 작지 않은 잘못이다"라며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것 또한 유죄"라고 했다. 전두환 정부 당시 국보위 참여 전력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사과문을 읽으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추모탑에 헌화를 한 뒤 15초가량 무릎을 꿇고 묵념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의 사과는 과거에 비해 울림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황교안 전 대표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통합당의 변화에 박수를 보낸다"는 반응이 나왔다.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을 만들고 '망월동 묘지'를 국립 5·18민주묘지로 격상한 게 김영삼(YS) 정부 시절 이뤄진 일인데도 통합당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다. 5·18 기념식에 참석한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다거나, 소속 의원들이 폄훼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간 있었던 보수정당 대표의 광주 방문은 주로 요식행위에 그치거나, '표'를 의식해 이뤄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7년 12월 광주 방문이다. 신군부를 계승한 당시 노태우 후보는 광주를 방문, 화염병 시위에 직면했다.

노 후보는 "우리 모두 순간의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을 찾아서 냉철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며 "화염병과 돌이라는 폭력 앞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던지고 있는 화염병과 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화염병이며, 민족을 분열시키는 돌멩이"라고 해 성난 민심에 부채질을 했다. 노 후보가 투명한 방패를 든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광주 시가지에서 유세를 하는 사진은 되레 지역감정을 부채질,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경북(TK) 유권자들의 표심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황교안 전 대표의 광주 방문도 진정성이 없는 방문이었다는 지적이다. 황 전 대표는 2019년 5월 광주를 방문했는데 당시는 소속 의원인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전 의원의 5·18 폄훼 논란이 벌어졌던 시기다. 국회 차원의 징계는 물론 당 차원에서도 징계를 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황 대표는 이를 차일피일 미룬 채 광주를 찾았다. "얻어 맞으러 가느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자극된 광주 민심은 황 전 대표에게 물병 세례로 응수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도 있다. 2017년 5월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정우택 전 의원은 5·18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은 당시 "5·18민주영령에 대한 추념의 마음은 변함없다"면서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이라고 생각해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2015년 5월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은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5·18 기념식에서 나란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김 전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 저 자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른 민주화 투쟁 주제가였는데 가사 어디에도 반국가적, 친북적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