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꼰대인턴' 박해진 "드라마 속 가열찬 80% 이상 닮은 진짜 나를 보여줬죠"
2020-07-03 00:00
그런 그가 전에 없던 지질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지난 1일 종영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극본 신소라·연출 남성우)을 통해서다.
"어떤 작품보다 애착이 많이 가요. 실제 제 모습과 닮아있어서 그런 걸까요? 싱크로율로 따지면 80% 이상이에요. 연기하는데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어요. 제 안에 있는 모습들, 감정들을 그때그때 끌어내면 됐으니까요."
'꼰대인턴'은 자신을 괴롭히던 부장을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박해진은 험난한 인턴 시절을 보낸 뒤 식품회사로 이직, 라면 업계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숨에 부장으로 승진한 가열찬을 연기했다. 지질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서슴지 않으며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힌 유정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저를 반듯하고, 차갑고, 냉철할 것 같다고들 말씀하시는데요.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맹하기도 하고 지질하기도 하고…. 인간적인 부분이 더 많아요. 다만 스스로에게는 조금 냉철한 편인 거 같아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하고 또 비관적인 부분도 있죠. 그런 모습도 (가)열찬이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봐요."
"작가님께서는 열찬이가 조금은 멋지게 그려지길 바라셨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되었으면 하고 바랐죠.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리며 침대에서 발광도 해보고 지질하게도 굴어보고…. 걱정과 고민을 해가며 가열찬을 만들어간 거 같아요. 우리 옆에 있는 인물을 만들어보자는 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고요."
가열찬의 인간적인 면모는 박해진의 연기적 디테일로 완성됐다. 반신욕을 하며 멋진 자신의 모습을 칭찬한다거나 마스크팩을 꼼꼼히 붙이며 거울을 살피는 모습 등 작은 디테일로 더욱 풍부한 코미디를 완성한 것이다.
"마스크팩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대본에는 마스크팩을 붙이고 있다가 떼버리고 대사를 이어가게 되어있었는데 가열찬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마스크팩을 붙인 채 연기를 이어나갔죠. 입가도 벌어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두드리면서요. 하하하."
"브로맨스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 말을 비틀어보자면 이성간 로맨스는 매력이 없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재밌게 봐주시니 좋죠. 상대가 동성 배우면 확실히 연기할 때 편한 부분도 많아요. 예를 들어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구하기 위해 거칠게 팔을 끌어당긴다거나 하는 장면은 과거에는 위험하다고 생각지 못했어도 요즘엔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죠. 손짓, 발짓 하나도 다 신경 쓰여요. 그러다 보니 몸도 항상 긴장하고 있고…. 상대 배우가 남자일 땐 저도 많이 풀어지게 되나 봐요."
특히 김응수와는 더욱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오히려 1~2살 터울이 어렵게 느껴진다"라는 박해진은 대선배와 호흡을 맞추며 안정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물론 김응수 선배님이 편안하게 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얼마나 스스럼없이 지내는가 하면 선배님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시면 제가 볼록한 선배님의 배를 만져보기도 하고. 하하하. 농담과 사담을 주고 받기도 해요."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면 서로간 배려하다 보니 준비한 바를 미처 보여주지 못할 때도 있다고. 상대의 상태를 살피고 맞추다 보니 소극적으로 변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김응수 선배님은 정말 스스럼이 없으시죠. 촬영 전 동선을 짜거나 미리 합을 맞추는 경우가 없어요. 베테랑이시니까요. 촬영을 시작하면 전혀 어색함이 없고 자유롭게 연기하시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어떤 식으로 연기해도 잘 받아주셔서 더 케미스트리도 살고 재밌게 나온 것 같아요."
박해진은 가장 기억에 남는 패러디로 영화 '너는 내 운명'을 꼽았다. 대기발령을 받은 가열찬 부장과 가열찬 부장을 만나기 위해 달려온 준수식품 오 대리(고건한 분)가 유리 벽을 가운데 두고 애절한 감정을 주고받았던 장면. '너는 내 운명' 전도연과 황정민의 애틋한 눈물 신을 패러디했다.
"그 장면을 찍을 땐 '너는 내 운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합을 맞추면서 정한 거죠. 처음엔 유리 벽이 훤히 뚫려있었는데 연기해보니 극적인 느낌이 덜하더라고요. 블라인드를 걸고 턱걸이로 서로의 얼굴만 확신할 수 있는 정도로 분위기를 이끌었는데 애틋하고 웃긴 거예요. 평소에 웃어서 NG 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오 대리 얼굴을 보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그 친구 덕에 더 재밌게 잘 살았던 장면이었어요."
박해진은 준수 식품 마케팅팀에 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냈다. "식구들끼리 호흡을 더 맞춰보고 싶다"라며 한지은, 노종현, 고건한, 홍승범 등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 드라마가 사건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마케팅팀끼리 호흡은 많이 보여드리지 못한 거 같아요. 항상 출근하면 누군가 등장해 '큰일 났어요!' '빅 뉴스' 하면서 서로 뿔뿔이 흩어지잖아요. 하하하."
박해진이 슬쩍 아쉬움을 드러내기에 "시즌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 텐데"하고 거들자, 그는 "내부적으로는 이야기된 바 없지만, 시즌제를 한다면 하고 싶다"라며 열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다면 다 함께하고 싶어요. 의미 있고 재밌게요. 시즌제로 간다면 팀원들의 서사를 각각 보여주고 에피소드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원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안 해보려고요. 저는 저 자신을 가만두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가만히 시간을 보내면 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부쩍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쉬는 법에 관해 연구하고 연습하는 중이에요.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낮잠도 자봤다니까요. 하하하. '밤에 못 자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했었는데, 막상 낮잠을 자니 편안하더라고요. 밤에도 잘 자고요."
자신과 가장 닮은 가열찬을 연기하며 박해진의 마음에 변화가 찾아온 듯했다. 그간 쉬지 않고 일하며 채찍질해온 그는 이제야 진짜 '나'를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면서 살 수 없잖아요. 제가 세운 계획인데도 쫓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내가 나를 너무 못살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꼰대인턴'으로 장르 선택과 연기 스펙트럼이 확장된 박해진에게 배우로서 개척하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한 뒤 "나를 더 보여주는 일"이라고 답했다.
"연기할 때 나를 좀 더 보여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나를 완벽히 지우고 그 인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가열찬을 연기하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 모습을 꺼내 캐릭터에 입히는 일도 효과적이더라고요. 이제 오롯이 저를 닮은 캐릭터도 만나보고 싶고 남녀의 현실을 담은 멜로도 욕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