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라진 시간' 정진영, 이준익 감독·조진웅에 용기 얻다
2020-06-22 00:02
"개봉할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는 건 제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지만 개봉이라니! 상상하지도 못했죠. 그렇게 많은 제작보고회 현장에 갔는데도 제 작품을 내놓는 자리가 되니 입장이 달라지더라고요. 이준익 감독님께서 '개봉할 때가 되면 미칠 거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더라고요."
영화 '왕의 남자' '7번 방의 선물' '국제시장' '택시운전사'까지 4편의 천만 영화부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풀잎들' 등 다양성 영화까지 폭넓은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기 경력 33년 차 정진영(56)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 분)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고교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는 긴 시간 고민과 갈등 끝에 4년 전부터 '사라진 시간' 집필과 제작에 돌입했다. "규칙과 관습을 깨고 자유롭게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작품답게 정진영은 제작부터 투자까지 직접 이름을 올리는 각오도 다졌다.
"시나리오를 써놓고 주변 영화인들에게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장르, 규칙을 다 버리고 내 마음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모니터링을 받으면 분명 그 얘기를 듣게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이유로 제작사도 직접 차리고 투자도 제 돈으로 할 생각이었죠."
제작사·배급사 영향 없이 자유로운 결과물을 내놓고 싶어 직접 제작사도 차리고 투자금도 마련하며 소규모 영화 제작을 준비했었지만 주연 배우 조진웅이 캐스팅되며 사정이 바뀌었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자"라는 조진웅의 뜻에 따라 비에이엔터테인먼트·다니필름 등 대중에 이름을 알린 제작사가 이름을 올렸고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배급까지 맡게 됐다. 정진영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이 종영한 뒤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들이 올해 고3인데 애도 다 키워놨고… 바삐 달려온 것 같은데 문득 '난 뭐지?' '난 뭘 하고 싶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적에 예술가로 살고 싶었는데 문득 저를 보니 시스템 안에 안전하게 들어와 버린 거예요. 어릴 때를 생각하면 외롭더라도 도전하곤 했는데. '안전한 시스템 안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야기를 만든다는 도전에 이르기까지 숱한 방황과 고민 그리고 갈등이 있었다. 예술가로서 안주와 불안 사이 줄다리기 끝에 내놓은 '사라진 시간'은 그야말로 정진영의 '자유' 그 자체였다. 모든 관습과 규칙을 내버린 결과물이었다.
"사실상 시나리오를 가장 처음 본 건 주연배우인 진웅이었어요. 첫 모니터링인 셈이죠. 솔직히 '하겠다'고 할 줄 몰랐어요. 낯선 이야기고 규모도 작으니까요. 그런데 하루 만에 '하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고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내가 선배라서 하겠다는 건 아니냐' '왜 하겠다고 한 거냐'고 물었어요. 진웅이가 말하기를 '작품이 좋다' '친분이 있어서 해달라는 작품이 한두 개인 줄 아느냐'라며 작품 고칠 것도 없으니 제 부분은 그냥 놔두라고 하더라고요. 뭉클했죠."
조진웅의 응원에 힘입어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과 김유진 감독을 찾아갔다. 각각 형과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소개한 정진영은 "크게 혼날 각오"를 하고 시나리오를 내밀었다고. 조마조마해서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준익 감독님은 앉은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다 보셨어요. 집중력이 좋은 분이거든요. 다 보시더니 '좋아. 잘 썼다'라면서 '대신 영화를 만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어. 그건 감당해야 돼' 하시더라고요. 김유진 감독님도 워낙 시나리오 작업에 공을 들이시는 분이라 말도 안 되는 걸 가져왔다고 호통치실 줄 알았는데 '네가 이런 얘기를 쓸 줄 몰랐다'며 '나는 동의한다'고 하셨어요."
영화는 시퀀스마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사건과 전개 방식을 보이며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수혁과 이영 부부의 사연으로 시작해 주인공 형구의 이야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추적극과 멜로 그리고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교묘하게 오간다.
영화적 문법을 여러 차례 뒤집고 설명을 피하는 통에 일부 관객들은 '불친절하다'는 아쉬운 소리도 내놓고 있는 상황.
"영화를 만들면서 몇 가지 정해 놓은 규칙이 있어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대신 설명을 곳곳에 심어놓으려고 했어요. 대중 영화들이 친절하게 구성을 짜놓는데 저는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구성하고 싶었거든요. 계속 다른 파도를 타는 식으로 구성하고 싶었던 마음이에요. 게다가 형식의 낯섦도 있지만 또렷한 결론을 주지 않는 게 죄송스러운 지점인데, '선문답'이 생각의 도구로 쓰이길 바랐어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연기 톤이 다른 지점이나 연극적 작법 등도 철저히 계산된 부분이었다.
"영화 속에 연극적 요소가 있죠. 외지인 선생 내외(극 중 수혁, 이영)인데 극 중 두 개의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선생 내외의 세계와 형구의 세계는 명백히 다르고 형구의 세계를 보여줄 때 선생 내외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기를 바랐던 거죠. 말투도 꼭 1970년대 스타일이잖아요?"
정진영은 배우들에게도 미안한 노릇이라며 웃었다.
"배우가 납득하기 어려운 연기를 시켰어요. 내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밀어 넣었죠. 인물들 자체가 그랬어요. 특히 차수연씨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대사도 연극적이고 주고받는 멜로 대사도 1970년대 풍이잖아요? '요즘 말로 바꾸면 어떻겠어요?'라고 하기에 그러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그 어색함이 형구의 세계에도 진한 잔향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출연 배우들에 관한 애틋함은 인터뷰 전반에 걸쳐 드러났다. 특히 그는 배우 정해균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젠가는 이름을 떨칠 배우"라며 강한 믿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황산벌' 때 처음 만났어요. 두 신 나오는데 어마어마하게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그 뒤 소극장 공연도 보러 가고 꾸준히 알고 지냈죠. 요즘 연예계는 오래 수련한 배우들이 팍팍 등장하니까. 해균이도 언젠가는 이름을 떨칠 거라 믿고 있었어요.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이름을 알리지만 제 기대만큼은 아니더라고요. 그의 연기력과 품성을 봤을 때 그는 더 알려져야 했어요. 그래서 역할 이름도 '정해균'으로 바꿨어요. 정해균씨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요."
영화 연출에 꿈을 안고 있는 배우 후배들에게도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연출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진웅이도 그렇고 정우성씨도 꾸준히 연출을 하고 있죠. 지금 제가 감히 어떤 조언을 할 수가 없어요. 다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연출한다면 행복할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에 정성을 다한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있겠어요?"
그는 예술적 '자극'을 위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영화 연출이며 연기, 무대 등 도전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자신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찾아가야죠. 무언가에 자극을 받고 그걸 통해 내 안에 세포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무뎌질 거예요. 이런저런 자극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싶어요."
영화 '왕의 남자' '7번 방의 선물' '국제시장' '택시운전사'까지 4편의 천만 영화부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풀잎들' 등 다양성 영화까지 폭넓은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기 경력 33년 차 정진영(56)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 분)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고교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는 긴 시간 고민과 갈등 끝에 4년 전부터 '사라진 시간' 집필과 제작에 돌입했다. "규칙과 관습을 깨고 자유롭게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작품답게 정진영은 제작부터 투자까지 직접 이름을 올리는 각오도 다졌다.
제작사·배급사 영향 없이 자유로운 결과물을 내놓고 싶어 직접 제작사도 차리고 투자금도 마련하며 소규모 영화 제작을 준비했었지만 주연 배우 조진웅이 캐스팅되며 사정이 바뀌었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자"라는 조진웅의 뜻에 따라 비에이엔터테인먼트·다니필름 등 대중에 이름을 알린 제작사가 이름을 올렸고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배급까지 맡게 됐다. 정진영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이 종영한 뒤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들이 올해 고3인데 애도 다 키워놨고… 바삐 달려온 것 같은데 문득 '난 뭐지?' '난 뭘 하고 싶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적에 예술가로 살고 싶었는데 문득 저를 보니 시스템 안에 안전하게 들어와 버린 거예요. 어릴 때를 생각하면 외롭더라도 도전하곤 했는데. '안전한 시스템 안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상 시나리오를 가장 처음 본 건 주연배우인 진웅이었어요. 첫 모니터링인 셈이죠. 솔직히 '하겠다'고 할 줄 몰랐어요. 낯선 이야기고 규모도 작으니까요. 그런데 하루 만에 '하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고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내가 선배라서 하겠다는 건 아니냐' '왜 하겠다고 한 거냐'고 물었어요. 진웅이가 말하기를 '작품이 좋다' '친분이 있어서 해달라는 작품이 한두 개인 줄 아느냐'라며 작품 고칠 것도 없으니 제 부분은 그냥 놔두라고 하더라고요. 뭉클했죠."
조진웅의 응원에 힘입어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과 김유진 감독을 찾아갔다. 각각 형과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소개한 정진영은 "크게 혼날 각오"를 하고 시나리오를 내밀었다고. 조마조마해서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준익 감독님은 앉은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다 보셨어요. 집중력이 좋은 분이거든요. 다 보시더니 '좋아. 잘 썼다'라면서 '대신 영화를 만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어. 그건 감당해야 돼' 하시더라고요. 김유진 감독님도 워낙 시나리오 작업에 공을 들이시는 분이라 말도 안 되는 걸 가져왔다고 호통치실 줄 알았는데 '네가 이런 얘기를 쓸 줄 몰랐다'며 '나는 동의한다'고 하셨어요."
영화는 시퀀스마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사건과 전개 방식을 보이며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수혁과 이영 부부의 사연으로 시작해 주인공 형구의 이야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추적극과 멜로 그리고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교묘하게 오간다.
영화적 문법을 여러 차례 뒤집고 설명을 피하는 통에 일부 관객들은 '불친절하다'는 아쉬운 소리도 내놓고 있는 상황.
"영화를 만들면서 몇 가지 정해 놓은 규칙이 있어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대신 설명을 곳곳에 심어놓으려고 했어요. 대중 영화들이 친절하게 구성을 짜놓는데 저는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구성하고 싶었거든요. 계속 다른 파도를 타는 식으로 구성하고 싶었던 마음이에요. 게다가 형식의 낯섦도 있지만 또렷한 결론을 주지 않는 게 죄송스러운 지점인데, '선문답'이 생각의 도구로 쓰이길 바랐어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연기 톤이 다른 지점이나 연극적 작법 등도 철저히 계산된 부분이었다.
"영화 속에 연극적 요소가 있죠. 외지인 선생 내외(극 중 수혁, 이영)인데 극 중 두 개의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선생 내외의 세계와 형구의 세계는 명백히 다르고 형구의 세계를 보여줄 때 선생 내외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기를 바랐던 거죠. 말투도 꼭 1970년대 스타일이잖아요?"
정진영은 배우들에게도 미안한 노릇이라며 웃었다.
"배우가 납득하기 어려운 연기를 시켰어요. 내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밀어 넣었죠. 인물들 자체가 그랬어요. 특히 차수연씨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대사도 연극적이고 주고받는 멜로 대사도 1970년대 풍이잖아요? '요즘 말로 바꾸면 어떻겠어요?'라고 하기에 그러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그 어색함이 형구의 세계에도 진한 잔향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출연 배우들에 관한 애틋함은 인터뷰 전반에 걸쳐 드러났다. 특히 그는 배우 정해균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젠가는 이름을 떨칠 배우"라며 강한 믿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황산벌' 때 처음 만났어요. 두 신 나오는데 어마어마하게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그 뒤 소극장 공연도 보러 가고 꾸준히 알고 지냈죠. 요즘 연예계는 오래 수련한 배우들이 팍팍 등장하니까. 해균이도 언젠가는 이름을 떨칠 거라 믿고 있었어요.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이름을 알리지만 제 기대만큼은 아니더라고요. 그의 연기력과 품성을 봤을 때 그는 더 알려져야 했어요. 그래서 역할 이름도 '정해균'으로 바꿨어요. 정해균씨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요."
영화 연출에 꿈을 안고 있는 배우 후배들에게도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연출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진웅이도 그렇고 정우성씨도 꾸준히 연출을 하고 있죠. 지금 제가 감히 어떤 조언을 할 수가 없어요. 다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연출한다면 행복할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에 정성을 다한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있겠어요?"
그는 예술적 '자극'을 위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영화 연출이며 연기, 무대 등 도전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자신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찾아가야죠. 무언가에 자극을 받고 그걸 통해 내 안에 세포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무뎌질 거예요. 이런저런 자극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