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결백' 신혜선을 증명하다
2020-06-12 00:00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예고편이 몇 달째 안방극장에 걸렸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두 차례나 개봉을 미룬 탓이었다. 잊을 만하면 온·오프라인에서 비를 흠뻑 맞은 정인(신혜선 분)이 등장했다. "두고 보라"며 이를 가는데 마치 관객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대망의 시사회 날. 길고 긴 기다림 끝에 '결백'이 공개됐다. 긴 기다림이 무색지 않은 작품이었고 열연이었다. 특히 첫 주연작임에도 안정적인 연기력을 펼친 배우 신혜선(31)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두고 보세요" "내가 증명할게" 정인의 말은 마치 신혜선,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보였다.
"시사회 날 너무 떨렸어요. 영화를 몇 번이나 봤는데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더라고요. 아쉬운 점만 생각나고 또 보이고…. '결백' 속 정인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쳤잖아요? 제게도 마찬가지였어요. 만족하고 감사한 작품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요. 잘하고 싶었거든요."
영화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사건'과 용의자로 지목된 어머니 화자(배종옥 분)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정인과 추악한 진실을 감추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혜선은 극 중 대형 로펌 에이스 변호사이자 화자의 딸 정인 역을 맡았다.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족과 등진 채 홀로 독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고민이 됐어요. 쉽지 않았거든요. 극 중 정인의 감정선을 바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요. 여러모로 고민이 됐는데 그런데도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정인 캐릭터가요."
"촬영 때마다 힘들었어요.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저는 캐릭터의 감정과 심리를 완벽히 이해해야 연기할 수 있어요. (감정선을) 모른 채 연기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촬영하면서도 고민했어요."
평소 캐릭터의 감정과 심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연기에 임하는 편이었지만 정인은 인물을 다 간파하지 못한 채로 촬영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오히려 정인의 심리 상태와도 닮아있었다. 경찰에 관한 불신과 기억을 잃은 어머니에 관한 답답함 등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생각해보면 정인의 감정은 명확하게 정해진 것 같지 않아요.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고…. 내내 혼란스러운 상태잖아요."
박상현 감독은 신혜선에게 강조한 건 '멋'이었다고. 신혜선의 큰 키와 눈빛을 이용해 정인의 '멋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님이 제가 키가 커서 멋있다며 좋아하셨어요. 하하하. 그게 제일 만족도가 높으셨던 거 같아요. 또 눈빛이 중요하다면서 항상 날 서 있는 느낌을 내달라고 하셨어요. 거울을 보고 많이 연습했죠. 평소에는 약간 흐리멍덩한 눈빛이라서요."
"배종옥 선배님께서 분장하실 때부터 감정을 이어가신다고 했어요. 처음엔 분장하시는 게 궁금해서 '보러 가도 되느냐'고 여쭤봤는데 '안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속으로 엄청 궁금했는데 촬영 시작할 때 배종옥 선배님이 아닌 화자가 등장하는 걸 보고 깨달았어요. '아, 이래서 못 보게 하셨구나.' 분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면 아마 이런 마음이 안 생겼을 것 같아요. 현장에 화자가 나타나니 정인의 마음이 되더라고요. 얼굴도 잘 못 보겠고…."
그는 배종옥의 얼굴을 보며 지금까지 정인을 머리로 이해하려던 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신혜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인에게 접근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구연 동화하듯 (제게) 정인을 설명했었어요. '얘는 이래서 집을 나갔지' '얘는 이런 마음이었지' 그런데 그게 다 필요 없더라고요. 잘못된 거였어요. 배종옥 선배님과 촬영을 한 뒤 정인이 확 이해되었어요. 그의 트라우마와 과거들이 확 느껴지더라고요."
신혜선은 영화 '결백'에 이어 tvN 드라마 '철인왕후'로 또 한 번 배종옥과 만난다. 현대를 살던 남자의 영혼이 조선의 궁궐 안, 그것도 여인 중전의 몸 안에 갇혀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내는 퓨전 사극이다.
"(배종옥) 선배님과 영화 안에서는 땡땡한 사이였잖아요. 의식적으로 같이 수다도 못 떨고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었어요. 우리끼리 '다음에는 이런 땡땡한 관계 말고 재밌는 역할로 만나보자'고 했는데 '철인왕후'가 딱 그런 작품 같아요. 그러니 드라마에서는 선배님과 함께 수다도 좀 떨어보려고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서 시작하기도 어렵고 계속 어려운 캐릭터들이 들어와요. 그래서 더 재밌고 도전 의식도 생기는 거 같고요. 캐릭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그 인물의 감정선이 보일 때! 신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마음으로 느껴질 때가 정말 재밌어요. 저는 화자가 되는 거니까요. 시청자들에게 인물을 전달해줄 때, 100%는 아니어도 근접하게 풀어서 해주었다는 걸 느꼈을 때 재밌게 느껴져요."
이야기의 '화자'라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한다는 그는 연기 칭찬을 보는 게 낙이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말을 하다 말고 대뜸 "칭찬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냐"라며 손사래도 쳤다.
"솔직히 연기 칭찬받을 때 정말 좋아요. 여러 번 읽어 보기도 해요. 그 칭찬에 인생을 맡기는 건 아니지만. 어떤 작품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들면서 칭찬하는 글은 여러 번 보기도 해요. 우리 집 분위기 때문인가? 하하하. 부모님이 살짝 비판을 잘하시는 편이거든요. 좋은 소리보다 쓴소리가 먼저 나가요. 그래서 이렇게 칭찬에 목마른가 봐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려는 편인데 비판이 엄청 신랄한 편이라서…. 그래서 이번 영화도 살짝 무서워요."
"아직 나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계속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요. 백수, 무명 시절이 길어서 보상심리처럼 일을 계속 이어왔어요. 그런데 그게 아직 안 끝난 거죠. 보상심리가 채워지지 않았어요. 사실 드라마 촬영을 하다 보면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있어요.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까 '한번 쉬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는데 하루 이틀 쉬면 또 몸이 근질거려요."
마지막으로 신혜선은 "'결백'도 드라마 '철인왕후'도 애정 있게 봐달라"며 배시시 웃었다.
"제 목표는 제가 맡은 캐릭터가 비호감보다 호감인 아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거든요. 요즘은 그걸 연구 중이에요. '결백'도 '철인왕후'도 호감 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