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베이징, 눈물겨운 검사필증 취득기

2020-06-25 04:00
집단감염 지속, 핵산검사 확대 사활
장시간 대기, 교차감염 우려에 분통
SNS 접속기록 뒤져 동선 파악하기도
불안감 악용 가짜 음성 확인서 횡행

지난 15일 베이징 둥청구 디탄체육관에 설치된 임시 검사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다.

올 초부터 반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사회적 치명상을 입은 중국은 수도까지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건 방역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최대한 많은 시민이 핵산 검사를 받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진단 시약과 인력이 충분치 않아 전염병 발생 초기에 수많은 의심 환자를 제대로 검사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우한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됐다.

현재까지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은 베이징 시민은 3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상주인구 2300만명의 7분의1에 육박하는 수치다.

베이징 시민에게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는 안전성을 입증하는 검사필증이 됐다. 지인과 직장 동료 등에게 확인서를 내보이며 접촉 허가를 받는 광경이 낯설지 않다.

단기간 내에 많은 인원을 검사하다 보니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줄을 서거나,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위험 지역이 아니어도 당국의 강요로 이런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시민들이 많다. 확인서 발급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탓에 가짜 확인서가 거래되기도 한다.

위조된 확인서를 구매한 한 시민은 "확인서가 없으면 생업에 지장이 초래돼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당국은 하루에 30만명 이상을 검사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검사소 밖 줄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베이징 시민들의 검사필증 취득기가 눈물겹다.

◆새벽에도 폭우에도 하염없는 줄 서기

지난 11일부터 베이징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한 뒤 누적 확진자가 256명으로 증가했다.

한 자릿수 혹은 두 자릿수의 신규 확진자가 매일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루에 수천명씩 감염되는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한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최고 등급의 방역 수위를 유지했던 베이징이 끝내 뚫렸다는 점에서 당국과 시민들의 충격이 크다.

베이징 방역 당국은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광범위하게 실시해 지역사회 전파를 억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첫 대상은 이번 집단 감염 사태의 진앙으로 지목된 신파디(新發地) 농수산물 도매시장이었다.

신파디 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안화(安華)씨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폐쇄된 지난 13일 새벽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시장 내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 4시에 관리 인력이 찾아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며 "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합 장소에 갔더니 이미 많은 상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고 말했다.

하염없는 기다림 끝에 실제 검사는 12시간이 경과한 오후 4시부터 시작됐다. 대기자는 10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또 다른 상인은 "검사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람만 모아 놓았다"며 "교차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인들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버스에 나눠 타고 격리 장소로 이동했다.

지난 11일 신파디 시장을 다녀온 이력의 시청구 주민 한명이 첫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국은 잠복기를 감안해 지난달 말 이후 신파디 시장 및 인근을 방문한 모든 인원을 검사하기로 했다.

검체 채취는 주로 야외에서 이뤄진다. 아파트 단지, 대형 빌딩 앞 등 베이징 곳곳에 임시 검사소가 설치됐다. 이달 들어 한낮 기온이 38도까지 오르기도 해 줄을 선 시민이나 검사 인력이나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베이징 펑타이구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퇴근한 뒤 집 근처 검사소에 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비를 맞으며 기다리다가 밤 10시 30분에 검사를 마쳤다"고 전했다.

장칭우(姜慶五) 푸단대 교수는 "검사를 위해 인파가 몰리는 것 자체로 전염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 "고위험 지역을 제외한 곳은 검사를 지나치게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지난 21일 베이징 다싱구의 한 주택 단지에 들어가려는 시민들이 체온 측정을 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위챗 문자 기록으로 동선 파악

당국은 신파디 시장이나 근처 지역을 방문했다면 자진 신고하라고 권고하지만 시민들의 선의에만 기대지는 않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등에는 당국이 개인의 SNS 접속 기록을 뒤져 동선을 파악하는 것 같다는 글이 넘쳐난다.

창핑구에 사는 진쩌(金澤)씨는 첫 확진자가 나오기 일주일 전인 지난 4일 동료와 함께 신파디 시장 근처에 들렀다가 잠시 위챗을 사용했다.

방역 조치가 강화된 이후인 지난 15일 진씨는 베이징 질병예방통제센터로부터 신파디 시장에 간 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 날에는 거주지 주민위원회 인력이 찾아와 핵산 검사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밤 12시 30분에 집에서 15㎞ 떨어진 검사소에 갔지만 문이 잠겨 허탕을 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17일 검사를 마쳤다.

진씨는 "당국이 SNS 접속 기록이나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부터 했었다"며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싱구 칭위안(淸源) 거리에 거주하는 톈위(田雨)씨는 지난 16일 운전을 하며 신파디 시장 앞을 지나갔는데 이튿날 주민위원회에서 검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검사비 180위안은 자비 부담이다. 그녀는 "따로 신고한 적도 없는데 주민위원회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당국이 정한 필수 검사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는 것 같아 일단 거절했다"고 글을 남겼다.

다만 그녀의 버티기는 소용이 없을 듯싶다. 칭위안 거리가 지난 19일 중위험 지역으로 상향 조정됐는데, 중위험 지역 거주민은 전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 17일 베이징 시청구의 봉쇄된 주택 단지에 거주 중인 주민이 외식 배달원에게 손짓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필수재 된 음성 확인서, 가짜 거래까지

최근 베이징에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는 타인과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다는 신분 증명이다.

위챗과 웨이보 등에 "나는 안전합니다. 안심하고 만나도 됩니다"라는 재치 있는 글과 함께 음성 확인서 사진을 첨부하는 게시물도 많다.

특히 베이징과 다른 도시를 오가며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음성 확인서가 더욱 절실하다. 베이징을 벗어나거나 재진입할 때 꼭 필요한 통행증이다.

베이징 방역 당국도 하루에 수십만명씩 검사하고 있지만 수요만큼 음성 확인서를 발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베이징 내 핵산 검사 기관은 98곳에서 124곳으로 확대됐다. 기관마다 장비와 인력 동원율이 한계치다.

베이징일보에 따르면 시내 주요 병원의 코로나19 검사 예약이 7월 말까지 꽉 찬 상태다.

양성과 음성 여부를 판단하는 실험실에도 검체가 쌓여 가고 있다. 베이징 내 전체 실험실에서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검체는 9만개 정도다. 검사 건수의 25~30% 수준이다.

베이징대 서우강(首鋼)병원은 14일 처리한 검체 수가 500여개였지만 16일에는 1200개 이상으로 늘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베이징시 측에 12시간 내에 검사 결과를 도출하고 24시간 내에 역학 조사를 완료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하지만 검사 수요가 폭증하면서 12시간은커녕 2~3일이 지나도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성 확인서 품귀 현상에 위조 확인서 거래가 성행한다.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천(陳)씨는 지인에게 문의해 가짜 확인서를 판매하는 업자의 연락처를 얻었다.

그는 "가격이 장당 500위안이었는데 법적 위험이 커 결국 포기했다"며 "전산에 등록하지 않고 배포하는 확인서가 많아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입국할 때 위조 문서를 제출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러시아 주재 중국대사관은 지난 22일 통지문을 통해 "위조된 음성 확인서를 소지한 채 입국하다가 적발된 중국인들이 있다"며 "이는 항공사와 다른 승객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