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中 최악 실업난 "취준생들아, 군대 가자"

2020-06-11 04:00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취업 절벽
사상최대 대졸 구직자 입대 종용
학비 감면, 전역 후 취업 지원도
빠듯한 예산, 낮은 급여가 문제
자칫 저소득층 일자리 뺏을 수도

[사진=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


1919년 5월 4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일본과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혁명인 5·4운동의 시작이었다. 중국에서는 매년 5월 4일을 청년절(靑年節)로 기념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청년절 축하 서신에 "청춘은 시련에 의해 빛을 발하고 인생은 분투에 의해 승화된다"고 썼다.

또 "강대국을 만드는 위대한 사업에 투신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 있게 싸우라"고 독려했다.

이에 대한 런궈창(任國强) 국방부 대변인의 논평이 흥미롭다. 런 대변인은 "많은 뜻있는 청년들이 군에 입대해 국가에 보은하는 걸 환영한다"며 "대학 졸업생의 취업문을 넓혀 지방의 실업난 완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5·4운동이 일어난 지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중국의 젊은이들이 최악의 취업 절벽에 절망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할 상황까지 악화했다.

중국 정부는 연내 도시지역 실업률을 6% 안팎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달성 가능한 목표로 여기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874만명의 대학 졸업생이 구직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일자리 정책을 관장하는 당국자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대학 졸업생들이 백수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군 입대를 종용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고급 인력의 입대를 장려해 군 현대화·정예화를 이루겠다고 선전한다.

입대하면 학자금을 보상하고 제대하면 취업도 알선해 준단다. 취업 문턱을 넘기 어려워 입영 열차를 탈까 고민하는 대졸자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사병에게 매월 지급되는 보조금이 1000위안(약 17만원), 부사관에 지원해도 월급이 5500위안(약 93만원)에 불과한 낮은 급여 체계가 문제다. 수년간 30만명을 감축해 200만명까지 줄여 놓은 병력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실업 대란을 막는 데 사활을 건 중국이 대졸 구직자를 상대로 시작한 '군인 만들기' 프로젝트의 결말이 궁금하다.

◆대학 졸업생 입대 비율 높여라

지난 2일 중국 교육부와 중앙군사위원회는 올해 대학생 징집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중국은 징병제 국가다. 병역법 12조에 따르면 남성은 만 18세 이후부터 현역으로 복무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다만 인구가 워낙 많아 필요한 병력을 충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의무병으로 2년을 복무한 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부사관으로 전환할 수 있다.

올해 발표된 징집 지침의 특징은 대학 졸업생 비중을 높이려는 것이다. 중앙군사위는 "대학 졸업생 모집에 힘써 군 현대화와 부대 전력 향상을 위한 양질의 병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입대 신청과 신체 검사를 상시화하고 대학 졸업생을 우선 선발하기로 했다.

실제 장시성의 경우 입대 수속을 간소화한 결과 5000명의 대학 졸업생이 예비 검진에 참여했다. 후난성에서도 2만명의 병력을 모집했는데 6000여명이 대학 졸업생이었다. 전년 대비 12% 증가한 수치다.

중국 남성은 만 18세부터 22세까지 병역의 의무를 진다. 대학에 진학하면 24세까지 입대 신청이 가능하다.

남성은 160㎝ 이상에 표준 체중을 30% 초과하지 않으면 입대할 수 있다. 여성은 158㎝ 이상, 표준 체중을 20% 초과하지 않는 게 기준이다.

후난성 등 일부 지방정부는 부사관에 제공하던 학비 지원을 의무병에도 적용키로 했다.

대학 재학 중 입대(졸업 예정자 포함)하면 1인당 최대 8000위안의 학비를 감면하고, 대학원생은 1만2000위안까지 감면해 준다. 전역 후 복학하면 다른 전공을 선택할 권리도 부여한다.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면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의무병으로 복무하면서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 필기 시험 없이 추천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고, 전역 후 3년 내에 대학원에 진학하면 필기 시험에서 10점의 가산점을 받는다.

취업 우대 정책도 시행하기로 했다. 전역 후 1년 내에는 연령과 상관 없이 그해 졸업 예정자와 동등하게 취업 전형에 응시할 수 있다.

입사 후에는 복무 기간이 근무 경력으로 인정돼 연봉 산정 시 혜택을 받는다.

후난성의 경우 새로 선발하는 공무원의 30% 이상을 의무병 전역자로 채용하고, 성급 국유기업은 채용 인원의 10% 이상을 병역을 마친 대학 졸업생으로 충원키로 했다.

취업 후 1년간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면 1000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해당 기업에는 채용 인원당 최대 9000위안의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전역한 장병이 창업을 하면 3년간 각종 행정 비용을 면제해 주고, 연간 1만4400위안의 한도 내에서 각종 세금도 감면한다. 금융권은 1인 기업의 경우 최대 15만 위안, 복수가 창업하면 최대 75만 위안의 대출을 제공한다.

베이징시도 의무병으로 복무한 대학 졸업생에게 각종 금융 혜택을 주기로 했다. 베이징 소재 10개 은행과 시 정부가 관리하는 3개 은행 등 총 13개 은행은 전용 신용카드와 보험 상품, 의료 서비스 상품 등을 판매한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


◆빈곤층 일자리 뺏기 우려도

다양한 메리트에도 대졸 구직자가 쉽게 입대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낮은 급여 때문이다.

의무병은 첫해에 매월 1000위안의 보조금을 받고, 다음해에는 1100위안씩 받는다. 최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양회 폐막 기자회견 때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에 불과하다"고 한 발언과 차이가 없는 급여다.

시짱(티베트)자치구와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위험 지역에 배속되면 2만 위안의 1회성 위로금을 받는다.

2년의 복무 기간을 끝낸 뒤 부사관이 되더라도 월급은 5500위안 정도다. 하사를 거쳐 중사와 상사로 진급할 때마다 월급이 1000위안씩 오른다.

알리바바와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의 대졸 입사자 초봉과 비교하면 3분의1, 혹은 4분의1 수준이다.

중국의 독특한 제도는 의무병 가족에게 매년 해당 지방정부 기준 최저 임금의 150% 범위 내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도시지역 후커우(戶口·호적)의 경우 1만2000~1만5000위안, 농촌은 4500~6000위안 정도다.

빈곤층 가구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대학에 진학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 가구에는 한 달 월급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입대에 따른 경제적 보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중국의 인민해방군 병력은 200만명 안팎이다. 2016년부터 병력 감축에 돌입해 30만명 가까이 줄여놓은 수치다.

병력 증대 없이 취업난 완화를 위해 대학 졸업생의 입대를 늘리는 데 주력한다면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중국의 국방 예산은 1조2680억 위안(약 220조원)으로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증가율만 보면 1991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증가율은 7.5%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워진 나라 살림이 엿보인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3% 수준이다.

이 예산으로는 병력 규모를 늘리기도, 의무병과 부사관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중국의 대학 졸업생 입대 종용은 실업 대란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시늉'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 중국 소식통은 "중앙군사위 측은 자금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졸 장병의 취업·창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고육책일 뿐"이라며 "실업률 관리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