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제동걸린 中분리수거 혁명 "코로나 좀 지나가면…"
2020-05-07 04:00
中 코로나에 분리수거 난맥상
인력·자원 부족한 현장 어수선
정부 입장 단호, 우한도 도입중
인력·자원 부족한 현장 어수선
정부 입장 단호, 우한도 도입중
베이징시가 지난 1일부터 쓰레기 분리 수거를 의무화했지만 아직은 코로나19 방역이 최우선인 탓에 곳곳에서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상하이와 광둥성 등 이미 분리 수거를 시행 중이던 지역도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시민들의 인식이나 당국의 규제가 많이 느슨해진 모습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분리 수거보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이 우선이라고 지적하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쓰레기 분리 배출은 사회 문명 수준의 중요한 구현"이라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분리 수거 혁명'의 결말이 궁금하다.
◆베이징, 시행 뒤에도 곳곳서 눈치 보기
생활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유해성 쓰레기, 기타 쓰레기 등 네 종류로 분류해 버려야 한다. 위반 시 개인은 최대 200위안(약 3만4000원), 법인은 최대 10만 위안(약 172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첫 적발 때 바로 벌금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지도·교육과 서면 경고 뒤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벌금 딱지가 날아든다.
리루강(李如剛) 베이징 도시관리위원회 부주임은 지난달 27일 기자 회견 때 "생활 쓰레기 관리 조례 시행을 위한 준비가 완료됐다"고 밝혔지만,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관영 주간지 중국신문주간은 분리 수거 시행 이후 다수의 베이징 시민을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했다.
베이징 번화가 싼리툰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황시(黃汐·가명)씨는 "통지는 받았지만 세칙이 없어 자체적으로 분리 수거 방안을 수립하는 중"이라며 "자세히 알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이뎬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도 "아직 단지 내 쓰레기통의 색상 구분을 하지 못했다"며 "음식물 쓰레기와 유해성 쓰레기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베이징 각지의 주민위원회와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은 분리 수거보다 코로나19 방역에 업무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오양구의 한 주민위원회 관계자는 "일손과 자원이 부족해 방역과 분리 수거를 동시에 챙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준비가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쓰레기 분리 수거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계도와 관리·감독이 필수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기 전에 분리 수거 시행에 힘을 쏟기 어려운 이유다.
환경단체 '폐기물 제로 마을'의 발기인 천리원(陳立雯)씨는 "최소 한 달 이상은 쓰레기 분리 장소에 전담 인력이 배치돼 주민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며 "대면 교류 없이 분리 수거 제도가 정착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류젠궈(劉建國) 칭화대 환경대학 교수도 "분리 수거 시행 시점을 전염병 유행 시기로 잡은 건 부적절하다"며 "제도를 홍보하고 교육할 대규모 조직을 꾸릴 수 없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의 관심을 전염병에서 분리 수거로 전환하기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이 크다"며 "방역 상황을 고려해 융통성 있게 대응하며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리 수거를 외부 용역에 맡기는 것도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분리 수거 제도가 시범 실시되자 쓰레기를 수거한 뒤 분류·배출해 주는 서비스 업체가 많아졌다.
마른 쓰레기와 젖은 쓰레기만 분류해 모바일 앱 등으로 업체를 부르면 직원이 와서 수거해 가는 방식이다. 가져온 쓰레기를 규정에 따라 분류하는 건 업체의 몫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서비스 업체 직원이 상점·주택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제약을 받고 있다.
한 베이징 시민은 "분리 수거 업체를 이용하지 못하다 보니 주민들이 줄을 서서 쓰레기를 버리는데, 아무래도 감염 위험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도 분리 수거는 뒷전
지난해 11월부터 쓰레기 분리 수거 의무화가 시행된 광둥성 광저우의 한 교민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분리 수거를 감독하는 인원이 거의 사라졌다"며 "다른 쓰레기통은 비어 있는데 기타 쓰레기를 넣는 통만 가득 차곤 한다"고 전했다.
유해성 쓰레기통이나 음식물 쓰레기통의 뚜껑 위에는 아예 돌덩이 같은 게 놓여 있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광저우의 한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 직원은 "30분 정도 분리 수거 장소를 지켜본 적이 있는데 한 명만 봉지를 찢어 음식물 쓰레기를 쓰레기통 안에 넣었고 나머지 주민은 봉지째 던져 넣고 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분리 수거 의무화가 시작된 상하이는 1만7800명에 달했던 단속 인원 중 90% 이상이 분리 수거 단속 대신 방역 업무에 투입된 상황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쑤닝의 통계에 따르면 상하이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가 시행되기 직전인 지난해 6월 18일 하루에만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판매량이 무려 1433% 증가했다.
같은 날 징둥을 통해 팔린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수량도 연간 판매량의 3.5배에 달했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판매된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는 중국 전체의 12% 수준이었다.
분리 수거 시행을 앞두고 상하이 전체에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올 초 중국을 덮친 코로나19 때문에 시민 의식이 저하됐다는 게 중론이다.
추인(儲殷) 인민대 교수는 "현재 재정이 부족하고 주민위원회 등 기층 조직의 방역에 대한 압박이 큰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인력과 자원, 물자를 쓰레기 분리 수거에 투입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추 교수는 "특히 전염병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요식업계의 경우 분리 수거 시행으로 원가 부담이 더 커진 상황"이라며 "지금은 행정력을 완화하고 국민을 들볶지 말아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더이상 방치 안돼, 우한도 조례 제정
지난해 6월 시진핑 주석은 쓰레기 분리 수거에 관한 중요 지시를 하달하며 "쓰레기 분리 배출은 인민들의 생활 환경, 자원의 절약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쓰레기 분리 배출을 교육하고 선전해 인민들이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며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당국은 베이징 등 46개 주요 도시에 대해 쓰레기 분리 수거 시범 실시를 의무화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실 중국은 매년 10억t 이상의 쓰레기가 발생하는 세계 최대의 쓰레기 배출국이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 2015년 790만t 규모였던 생활 쓰레기가 지난해 930만t까지 급증했다. 쓰레기 분리 수거는 더이상 미루기 힘든 현안 중 하나다.
중국 주택건설부 환경위생공정기술연구센터의 쉬하이윈(徐海雲) 부주임은 관영 신화통신에 "분리 수거가 실시되는 46개 도시는 전국 도시의 7%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도시별 진전 속도가 다르고 시민들 인식도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쉬 부주임은 "선진국에 비하면 중국의 쓰레기 분리 수거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라며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각 지방정부는 분리 수거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광둥성 선전은 벌금 대신 인센티브 제공을 선택했다. 분리 수거에 적극적인 시민을 선정해 1000위안의 상금을 수여한다.
광저우는 분리 수거 성과를 공직자들의 인사 고과에 반영한다. 지역사회를 관리하는 공직자의 경우 분기별로 평가해 결과가 '나쁨'이거나 하위 10%에 해당하면 '면담'을 하고 3번 연속 면담을 받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 뒷수습에 여념이 없는 지방정부들도 분리 수거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최대 피해를 입은 우한은 지난달 초 열린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연내 '생활 쓰레기 분류 관리 조례' 제정을 의결했다.
6월 1일부터 분리 수거 의무화가 시행되는 산시성은 운송 중인 쓰레기 중 일부가 도로에 떨어지거나 오수가 배출되면 해당 업체에 최대 5만 위안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후난성 창사는 분리 수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법인에 최대 5000위안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 주간지 신주간(新周刊)은 "거시적 관점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시일이 소요되는 지구전이 될 것"이라며 "의무 교육을 통해 분리 수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