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하늘길 막으니 땅길로…코로나19 '풍선효과'
2020-04-08 04:00
헤이룽장, 육로 통한 역유입 급증
항공 통제, 입국자 국경으로 몰려
밀입국 시도까지, 남쪽도 '초비상'
항공 통제, 입국자 국경으로 몰려
밀입국 시도까지, 남쪽도 '초비상'
러시아 모스크바에 체류하던 중국인 유학생 천(陳)모씨(23)는 현지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자 귀국을 결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역외 유입을 막기 위해 해외를 오가는 국제선 운항을 매주 130여편으로 대폭 축소하면서 항공권을 구할 도리가 없었다.
천씨가 선택한 귀국 경로는 육로였다. 그는 지난 3일 러시아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SU1700편을 타고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했다.
천씨는 쑤이펀허 체육관에 격리된 상태로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했는데 양성으로 드러나 5일 쑤이펀허 인민병원에 입원했고 6일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의 부모가 사는 곳은 광둥성 산터우시. 고향에서 3600㎞ 떨어진 북방 변경의 낡은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게 됐다.
코로나19의 역외 유입 차단에 주력하던 중국 방역 당국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늘길을 막았더니 해외에서 감염된 확진자가 육로로 걸어들어오고 있다.
중국의 국경선 길이는 2만2800㎞. 국경을 맞댄 국가만 러시아·북한·인도·베트남·미얀마 등 14개국이다.
헤이룽장성 외에도 북쪽의 지린성과 네이멍구자치구, 서쪽의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시짱(티베트)자치구, 남쪽의 광시좡족자치구와 윈난성 등 접경 지역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육로·수로를 통한 외국인의 밀입국 시도까지 있었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이 또 한 번의 도전을 맞았다.
◆인구 10만 국경 도시의 수난
7일 헤이룽장성 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발생한 역외 유입 확진자는 60명으로 한명을 제외한 59명이 러시아에서 유입됐다.
지난달 말까지 2명에 불과하던 역외 유입 확진자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30배 넘게 급증했다.
특히 지난 5일과 6일 각각 20명씩 이틀간 40명이 늘었고, 5일에는 확진자보다도 많은 26명의 무증상 감염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미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국제선 항공편 운항도 중단한 상태다. 최근 헤이룽장성에서 보고된 역외 유입 확진자는 러시아에서 장기 유학·근무하거나 사업차 방문했다가 감염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러시아 내 중국인들은 대부분 모스크바에 몰려 있다. 모스크바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4484명으로 전체 확진자의 70%에 달한다.
현지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중국인들이 대거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이들에게는 러시아 국내선으로 중·러 접경까지 이동한 뒤 커우안을 통과해 입국하는 경로가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제한된 항공편에 중국인과 러시아인이 뒤섞여 빼곡히 앉다 보니 항공기 내 감염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인 장(張)모씨는 중국 제일재경과의 인터뷰에서 "모스크바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한 러시아인이 30% 정도에 불과하다"며 "러시아인은 비행기 내에서도 아무런 방호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20㎞ 정도 떨어진 쑤이펀허 커우안은 밀려드는 귀국 행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 10만 미만의 작은 국경 도시가 졸지에 코로나19 역외 유입 차단의 최전선이 됐다. 쑤이펀허시 인민정부 관계자는 "최근 입국자가 폭증하면서 커우안의 검역·검사 역량의 한계를 넘었다"며 "시내에도 더이상 병상과 격리 시설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결국 쑤이펀허시는 국경을 맞댄 러시아 쪽 도시 포그라니치니와의 도로 통행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7일부터 오는 13일까지 통행을 금지하기로 했고, 해제 시기는 추후 논의할 방침이다.
아직 귀국하지 못한 중국인들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러시아 측이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항공편 운항을 더 줄이기로 한 데다, 국경 일대 도시들이 호텔 등 숙박 시설 운영을 중단한 탓에 미리 도착해 머물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국경선 인근 도시의 경우 지난달 31일부터 6월 1일까지 호텔·요양원을 일시 폐업하고 병원도 외국인 환자는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체류 중인 한 중국인은 "러시아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계속 늘어나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커우안에 도착하자마자 격리돼 검사를 받고 증상이 있으면 입원하는데 굳이 입국을 막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산 넘어 밀입국까지, 국경 방어 '비상'
지난달 29일 중국 중앙기율검사위원회 기관지인 '중국기검감찰보'는 광시좡족자치구에서 밀입국하려던 외국인이 적발돼 강제 송환됐다고 보도했다.
중국기검감찰보는 "베트남 등 국적의 외국인 13명이 산을 넘어 광시 바이써시로 진입하려다 들통이 났다"며 "이들은 법에 따라 즉시 본국으로 송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써시 기율검사위가 실태 조사를 한 결과 국경 근처 소도(小道)에 대한 감독 소홀 등 다수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광시는 확진·의심환자가 없는 청정 지역이지만 육지와 해안 국경선이 길어 전염병의 외부 유입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육지 국경선을 따라 총 139개의 커우안이 설치돼 있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면서 이들 커우안을 중심으로 외국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인훙신(尹宏鑫) 윈난성 루이리시 상무국 부국장은 중국신문망과의 인터뷰에서 "루이리 커우안의 경우 하루 통행 인원이 3만명으로 전염병 발생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커우안 건너의) 미얀마 측과 방역을 유지하며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헤이룽장성의 사례처럼 베트남·미얀마·라오스 등 동남아 지역에 머물던 중국인들이 육로로 입국하거나, 외국인의 밀입국 시도 가능성이 제기되자 통제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내륙을 종단할 때 마지막으로 통과한 광시 핑샹(凭祥) 커우안은 베트남과 중국을 잇는 최대 관문이다.
린이천(林羿岑) 커우안 감독관은 "매일 출입국하는 모든 인원을 전수 조사 중"이라며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당국과 24시간 연락 체계를 구축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윈난성은 경내 19개 육로 커우안에 대해 지난 1일부터 불필요한 인력 통행을 금지했다.
중국인의 출국과 외국인의 통행을 막고, 출입국 증명서 발급 업무도 중단한다. 또 국경 지역 마을의 경우 봉쇄식 관리에 들어가 외부인 출입을 막도록 했다.
미얀마 등 인접국에도 투자·의료 등 긴급한 사안 외에는 해당 국민의 중국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를 권고했다.
광둥성과 푸젠성 등 연안 지역의 지방정부들은 해로·수로를 통한 밀입국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푸젠성 취안저우시 공안국은 최근 '코로나19 역외 유입 방비에 관한 통지'에서 밀입국을 하거나 이를 돕는 행위를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공안국은 "조직적인 밀입국은 형법에 따라 징역 2년 이상 7년 이하에 처해지며 벌금도 부과된다"며 "정도가 심하면 7년 이상의 징역과 재산 몰수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놨다.
왕시잉(王喜瑛) 푸젠성 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은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의 전염병 확산세가 향후 푸젠성 방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화교와 해외 유학생의 입국 수요 증가도 역외 유입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중국 소식통은 "푸젠성 취안저우가 본적인 화교만 950만명 이상이며 이 가운데 90%가 동남아에 거주 중"이라며 "아직 바다를 통한 역외 유입 사례는 없지만 발생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