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비준 강행 나선 巨與, 친노동 본색 드러냈다...노조 리스크 후폭풍 덮친다

2020-06-24 00:00
文정부, 23일 국무회의서 노동3법 통과
노사갈등 우려...20대 국회서 자동 폐기
법안 통과 시 실업·해고자도 노조 활동
전문가들 "노조 기본 취지에 부합 안해"
"코로나19 사태 속 기업 경영난 가중"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및 수도권 방역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동조합(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법안 통과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노조 리스크' 등 향후 닥쳐올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재계의 우려에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강행을 위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 당시 노사 갈등을 키우고 경제 활력을 낮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 야당 반대에 부딪혀 자동으로 폐기됐다.

그러나 4·15 총선을 통해 의석 176석을 등에 업은 여당이 친(親)노동 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 ILO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은 21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해고자도 노조원··· "일반 선진국 경향"

정부는 2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32회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3개 법안을 의결했다.

일명 노동 3법으로 알려진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노조법) 등 세 가지다.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도 통과되면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은 그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초기업 노조에 대해서만 실업자와 해고자가 활동하도록 하고, 기업 단위 노조는 예외로 해왔다.

퇴직 교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가입도 허용될 예정이다. 전교조는 2013년 조합원 가운데 해직 교사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법외 노조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교원노조법이 개정될 경우, 전교조는 합법 노조 자격을 회복하게 된다.

노조 가입 범위를 6급 이하로 제한한 직급 기준도 사라져 고위직 공무원의 노조 가입도 자유로워지게 된다.

이는 정부가 미비준 상태인 ILO 핵심협약(총 8개) 4개 중 △결사의 자유(제87호) △단체교섭권 보장(제98호) △강제노동 철폐(제29호 및 제105호) 등 3개를 비준하기로 하고, 관련 국내법을 개정 중인 데 따른 결과다.

정부는 그간 ILO와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으로부터 핵심협약 비준 압박을 계속 받아왔다. 특히 EU는 최근 자유무역협정(FTA)을 고리로 ILO 핵심협약 이행 노력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왔다.

정세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그간 선진국의 일반적인 경향인 ILO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아주경제 편집팀]


◆밀어붙이면 정국 경색으로 경제 부담

다만 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는 데 이어 노조 리스크까지 겹칠 것이 예상됨에 따라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계는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이 허용되면 노사 관계 악화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경우 기업이 인사권을 적용할 수 없는 만큼 더욱 과격한 노조 활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 단체는 최근 노동 3법 통과와 관련해 이 같은 우려를 담은 반대 입장을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노조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기업들의 경영난이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부정적 관측도 지배적이다.

이런 우려로 노동3법은 지난해 사회적 협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노사 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해 최종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정부 입법안 초안을 작성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국회에서도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 상정이 불발돼 법안 심의도 받지 못한 채 20대 국회 종료로 자동폐기됐다.

이처럼 여야, 노사 간 입장이 확연히 갈리는 법안인 만큼 이번 국회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경우 정국이 경색돼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는 결국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ILO 협약 자체는 어려운 근로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취지"라면서 "노조법 개정안 대상은 결국 대기업과 교원, 공무원들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더 울리는 법인 셈"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