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야구소녀' 이주영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2020-06-23 06:00

영화 '야구소녀' 주인공 이주영[사진=싸이더스 제공]

동네 청년들보다 확실히 제 마음을 표현할 줄 알던 주영(영화 '춘몽')을 지나 당당한 태도로 세상 밖을 꿈꾸던 소녀 지수(영화 '꿈의 제인'), 자아를 찾아 나선 트랜스젠더 현희(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이르기까지. 배우 이주영(28)은 언제나 '다름' '편견' 등과 싸우는 인물을 연기해왔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야구소녀'(감독 최윤태)도 마찬가지. '천재 야구소녀'가 현실의 벽을 넘어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에서 이주영은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 선수 주수인을 연기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도 기회도 잡지 못하던 수인이 흔들림 없이 유리천장과 편견을 깨나간다는 점에서 그간 연기한 인물과 결이 다르지 않다.

온 마음을 다해 극 중 인물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 배우 이주영이 가진 강력한 힘이자 무기다.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인물이 해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올곧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작품에) 애정이 가지 않더라고요. 저를 비롯해 감독님과 제작진 모두가 극 중 캐릭터를 이해받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작품을 볼 때 "지금 이야기할 법 하다" 즉 시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는 최근 영화계에 불고 있는 '젠더' 문제에 관해서도 깊이 고민해왔다. '꿈의 제인' '메기' '이태원 클라쓰'에 걸쳐 '야구소녀'에 도달한 그의 선택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얻을 수 있는 점과 좋은 점을 떠올리는데요. '야구소녀'는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선택 안 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나리오 전반적 느낌도 좋지만 주수인이라는 캐릭터를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야구소녀' 주인공 이주영[사진=싸이더스 제공]


전체적인 구성 등은 기승전결이 완벽했으나 주수인이라는 인물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조금 더 여성의 감성이 드러나길 바랐다. 캐릭터를 쌓아나가며 관객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길 바랐고 최윤태 감독과 긴 상의 끝에 현재의 주수인을 완성했다.

"'야구소녀'는 여성 서사인데 감독님은 남자라서 잘 이해하실 수 있을까? 그런 우려가 있었어요. 하지만 감독님을 처음 만나고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같이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저는 배우니까 캐릭터에 집중해서 보곤 하는데 조금씩 표현이 비틀어져 수인이 미움받거나 이해 가지 않는 인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들도 하나씩 상의했고요.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업이었어요. 시나리오가 가진 부분 좋은 점이 온전히 잘 담긴 것 같고요."

수인은 '천재 야구소녀'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물이다. 여성 최초로 고교 야구단에 입단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잃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수인이 겪는 상황들은 특수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흔히 볼 법한 일이기도 하다. 이에 이주영에게 "수인을 이해하고 또 반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 관해 물었다.

"모든 사람이 수인에게 '안 된다'고 제재해요. 웬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안 된다고 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수인은 끝까지 밀고 나가죠. 저는 현실적인 방향으로 가려면 한 번은 (수인이) 포기하거나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현실적이라고요. 하지만 이야기를 깨어나가며 든 생각은 수인은 어릴 때부터 야구만을 보고 그 길을 달려온 사람이니까.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나조차도 수인이를 너무 쉽게 평가했구나' 남들이 하는 말에 수인이가 포기하도록 만들었구나 하고요."

영화 '야구소녀' 주인공 이주영[사진=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앞서도 언급했지만 수인이 겪는 일이나 그가 처한 상황은 특별하다. 그러나 자세히 그를 바라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우리가 겪었을 법한 '말'과 '편견'이 담겨있다. 이주영에게도 수인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는 말이었다.

"저도 연기를 해나가고 있지만 넘어질 뻔한 적도 있고 고민과 주변의 걱정과 우려를 받은 적도 많아요. 수인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큰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어요. 너무나 공감이 갔고 이해할 수 있었죠. '야구소녀'가 좋은 건 수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입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엄마에게, 아빠에게, 코치님에게…누굴 빗대도 공감될 요소가 많죠."

수인에게 밀고 나가야 할 일이 '야구'였다면, 이주영에게는 '연기'였을까? 그는 "배우로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8년 정도 해오고 있지만 늘 어렵고 신기해요. 당장 내년도 제가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죠. 작년에 '야구소녀'를 찍을 때도 지금 같은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잖아요. 미지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하하하. 그런 걸 생각하며 하나씩 해나가는 게 의의가 있죠."

영화 '야구소녀' 주인공 이주영[사진=싸이더스 제공]


여성 성장 드라마로 이주영이 더욱 신경 쓰고 주의 깊게 돌아봐야 할만한 부분들도 많았다. 젠더 문제를 두고 "이 영화에서 '젠더'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문을 연 뒤 "젠더, 여성주의적이지만 광범위하게 수인이라는 아이를 모두 응원해주길 바랐다"라고 거들었다.

"연기할 때도 그런 점이 중요했어요. 무조건 강한 어조로 말하고자 했죠.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움직이고 꿈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우리 영화의 위험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수인이 스스로 갈 때 우리 영화의 메시지가 뚜렷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극 중 코치는 수인에게 "너를 보고 지원서를 넣은 아이"라며 고교 야구팀에 입단하길 바라는 중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버겁지만 책임감을 느끼고 용기를 내고자 하는 수인의 모습은 소수, 약자가 되어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인물들을 연기했던 이주영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어떤 작품 속 선구자로 혹은 롤모델로서"의 속내를 물었다.

"아직 롤모델이라고 하기엔 저라는 존재가 너무 작아요. 하하하. 인간 이주영으로서의 마음이 배우 활동 안에 자연스레 담기는 거 같아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 걸어온 길을 봤을 때 부끄럽지는 않아요. 제가 하는 걸 보면서 저와 같이 연기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제가 한 말을 통해 느낄 수 있다면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싶어요. 스스로 안 부끄러우려고 노력해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