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배로 5년 보장합니다"...인력 유출 위험수위 넘은 코리아 반도체ㆍ디스플레이
2020-06-15 00:10
39년 삼성맨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의 중국행...산업계 충격
인재 유출 방지하는 강력한 처벌규정보다 당근책 마련이 절실
인재 유출 방지하는 강력한 처벌규정보다 당근책 마련이 절실
"현재 연봉의 5배 수준으로 5년 동안 자리를 보장합니다."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한국 인재 영입을 위해 내건 조건이다. 기술 인재가 현재 연봉 기준으로 25년이나 더 일해 벌 수 있는 소득을 5년 안에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의 인재를 모조리 영입한다는 중국의 '천인계획'이 이제는 '만인계획'으로 확대돼 우리나라까지 휩쓰는 등 인재 유출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기술 패권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국내 주력 산업의 근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최근 '39년 삼성맨'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66)이 중국 디스플레이 구동칩세트 제조업체인 에스윈의 부회장(부총경리)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윈은 2016년에 설립된 신생 회사다. 중국 디스플레이업체 BOE의 창립자 왕둥성이 회장(총경리)을 맡고 있다는 데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왕 회장은 BOE를 세계 1위 디스플레이업체로 키운 '중국 LCD의 아버지'로 불린다.
장 전 사장의 중국행은 삼성 사장급 출신 인사 중 중국 경쟁사로 이직한 첫 사례여서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국내 핵심 인재 유출의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수 있어서다.
중국이 인재를 쓸어가고 있는 게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2008~2010년 해외 우수 인재 2000명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둔 '천인계획'이 추진됐고,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에 따라 2022년까지 1만명의 인재를 영입하는 '만인계획'으로 확장됐다.
문제는 인재 영입을 통해 중국이 기술을 빼돌리는 데 있다. 국내법을 교묘히 우회하는 방식으로 얻은 기술력으로 중국은 인재에 쏟아부은 투자금의 수십~수백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인재 유출을 법 제도로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강력한 처벌 규정을 신설할 수는 있으나 현·퇴직 기술 인재가 국가의 주력 산업 기술을 빼돌리지 않도록 유인할 수 있는 '당근책' 마련이 산업을 키우고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해답이라는 조언도 들린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신산업실·부연구위원은 "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의 기술 인재를 해외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공공 R&D 센터 등 급수 높은 일자리를 마련해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기술 인재 유출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은 기술 패권 국가가 되는 핵심적인 기술로, 단순히 기술을 빼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데려가는 것인데, 해당 인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다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이공계에 대한 투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전폭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기술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기술 패권 시대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