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한시오분'] 코로나시대의 음주

2020-03-09 09:49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는 않고(待酒不至)' 당나라 이백의 시

* '한시오분(漢詩五分)'은 틈틈이 5분 동안 즐기는 한시라는 뜻으로, 시읽기를 생활화하는 여유를 갖자는 뜻에서 지은 명칭입니다.<필자>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


요즘은 코로나19로 술자리도 확 줄었다.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이 다 위험한 것이 되어버린 날들. 인간만사(人間萬事)가 사람 사이의 일이란 걸 깨달으면서 급속히 고독해진다. 사람 사이가 격리되면 저마다 옥살이다. 고독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우울증과 정신적 폐소의 공포가 찾아온다.

일찍이 이백은, 언택팅(UNTACTING) 사회를 예견한 듯 이런 시를 남겨놓았다.

산중에 앉아서 술심부름을 보내는 시인이 권력적이고 귀족적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고 어린 아이에게 편의점 가서 소주 사오라고 시키는 몰상식 아빠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요즘 식으로 보자면 '택배'나 '온라인주문' 같은 거로 생각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모자라는 동자가 하나 있는데, 칠칠치 못해 가다가 넘어져 술병을 깰까 걱정이다. 그러니 녀석의 머리카락을 풀어 흰 술병의 긴 주둥이에 묶었다. (그냥 이동용 술병을 만들기 위해 청실로 주둥이를 묶어 손잡이로 삼았다는 풀이도 있다. 그게 더 점잖나?) 평소 정신도 그리 믿을 만한 녀석이 못되는지라, 보내놓고는 내내 걱정이다. 이쯤이면 와야 하는데, 산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 술생각만 더 간절해진 상태다. 아휴, 내가 갈 걸, 싶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 없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보니 벌써 저녁답이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 산 아래까지 가보았다. 그제서야 비칠비칠거리며 나타나는 녀석. 아유, 그래도 사온 게 어디냐?

산 아래 너럭바위에 퍼질러 앉아 술을 마신다. 어디선가 꾀꼬리 소리가 들린다. 노래기생(流鷪유앵) 을 모셔놓은 듯 자못 흥겹다.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봄바람을 맞으니 술로 불콰해진 얼굴이 더 이상 시원할 수 없다. 춘풍과 취객이란 이렇게 서로를 돋우고 어루만지는 단짝이 아닌가. 굳이 술친구가 없어도, 가무하는 이가 없어도, 또한 세상의 온갖 메뉴와 술자리 수다가 없어도, 외로울 일이 없다. 술이 친구이고 봄바람이 대작해주기 때문이다.

이 좋은 3월에 세상격리 마스크로 겁먹은 눈을 뜨고 시절을 도주하듯 다 보낸다. 한 잔 할 일도 사람도 마음도 없어진 황량한 봄날이다. 이 사람 같으면, 이런 시대에도 신나게 살았을까. 

흰 술병을 검은 머리칼로 묶어
술 사러간 녀석 왜 이리 안오는거지
산의 꽃들은 나를 향해 웃고 있으니
한 잔 머금기 딱 좋은 때로다
동쪽 산 아래서 뒤늦게 술을 마시니
꾀꼬리 여인이 여기도 있구나
봄바람이 술 취한 사람과 함께 하니
오늘 마침내 서로 잘 맞구나

           이백의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고'

           李白 待酒不至(대주부지)

玉壺繫靑絲 沽酒來何遲 (옥호계청사 고주래하지)
山花向我笑 正好銜盃時 (산화향아소 정호함배시)
晩酌東山下 流鷪復在玆 (만작동산하 류앵복재자)
春風與醉客 今日乃相宜 (춘풍여취객 금일내상의)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