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르포] 우체국 마스크 판매 첫날, 남양주시 덕소우체국 가보니 "80명분 순식간에 동나"

2020-03-03 00:00

"새벽 5시 30분부터 나와서 줄을 섰어요. 8시 되기 전에 이미 80명 마감된 것 같다며 직원들이 줄 서지 말라고 하는데 어디 그게 되나. 혹시나 해서 다들 줄서고 기다리고 있지."

남양주시 덕소우체국에는 새벽부터 100명이 훨씬 넘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 장윤정 기자 ]

우체국을 통해 정부가 보건용 마스크를 1인당 5장씩 1장당 1000원에 판매키로 한 2일 경기 남양주시 덕소우체국에 1번으로 줄을 선 이학란씨(68·남양주시 거주)의 말이다. 이씨는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 금요일에도 방문했다. 하지만 2시간 전에 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은 아예 새벽부터 줄을 섰다. 

남양주시 덕소우체국에는 이른 새벽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이수현 덕소우체국장은 "우체국 문을 오전 8시에 여는데 이미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며 "지금부터는 줄을 서도 소용없다고 돌아가시라고 해도 줄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기만 해서 어르신들 추우실까봐 따뜻한 물과 사탕 등을 나눠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체국에서 1인 5개 판매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사진= 장윤정 기자]

덕소우체국에 이날 배분된 마스크 분량은 400여개. 1인당 5개씩 80명에게 번호표를 나눠줄 예정이다. 오전 9시에 왔다는 한 할아버지는 "내일 다시 와서 또 줄을 서란 말이냐. 80명 이후에는 내일 와서 살 수 있도록 미리 번호표를 나눠줘야 공평하지 않냐"며 항의 중이었다. 하지만 우체국에서는 그렇게 될 경우 내일 와서 줄을 설 손님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미리 번호표를 배부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수현 국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2시에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소식에 낮 12시부터 줄을 서시 길래 번호표를 나눠드리고 이따 오후 2시에 오라고 말씀드렸더니 1시에 다시 줄이 이어져서 '왜 나한테는 번호표를 안 주냐'며 항의하는 손님들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미리 번호표를 배부하지 않고 11시 20분 전 번호표를 나눠드리고 11시 정각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수현 덕소우체국 국장은 2일 하루 덕소우체국에 할당된 400여개의 마스크를 보여주며 80명에게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 장윤정 기자]

남양주시 덕소우체국에 할당된 마스크. [사진= 장윤정 기자]

이 국장은 "매일 오전 10시 전에 남양주우체국에서 마스크 물량을 관내 우체국에 제공한다. 오늘도 원래 2시부터 판매하라고 하다가 11시로 당겨져서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덕소우체국을 방문했다가 인근 하나로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도 많았다. 

11시 20분 전 번호표 분배가 시작됐다. 1번으로 줄 선 이학란 할머니 앞을 막아선 할아버지들과의 싸움이 벌어졌다. "내가 일찍 왔는데 안에 잠깐 들어가 있었다고···.", "이 양반아, 줄을 서야지 안에 있었다고 거짓말하면 돼? 줄 선 사람들은 뭐가 되냐고." 고래고래 고함이 이어지고 이 국장이 줄을 정리한 후 번호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우체국장의 도장이 찍한 번호표 딱 80개만이 유효하다. 
 

마스크를 살 수 있는 번호대의 번호표를 손에 넣은 한 시민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 장윤정 기자]

11시 정각. 차례대로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5명씩 안으로 들어가 번호표를 내고 5000원에 5장의 마스크를 받고 돌아선다. 어렵게 마스크를 손에 넣은 손님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막무가내로 그냥 들어와서 마스크를 달라는 손님들이 계속 나타났다. 직원들이 "번호표를 보여달라"고 말을 해도 "마스크를 달라. 번호표 없다"며 떼를 쓰는 손님들도 다수다.

55번으로 마스크를 손에 넣은 조삼훈씨(73·남양주시 거주)는 "복권당첨된 것보다 더 기쁘다"며 "7시 20분부터 나와서 줄을 섰다"고 말했다. 내일도 나와서 줄을 설 거냐고 물어보니 "내일은 다른 사람들이 사야지, 내가 또 나오면 쓰나"며 돌아섰다. 

덕소우체국 이수현 국장이 미리 나눠준 번호표에 따라 1인당 5개의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 장윤정 기자]

80명분의 마스크가 순식간에 동났다. 마스크를 사지 못한 손님들은 선뜻 돌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선착순으로 판매하면 내일도 새벽부터 나와서 줄 선 사람이 또 마스크를 살 거 아냐. 공평하게 돌아가야지, 선착순으로 하면 사는 사람만 사게 되는 거 아니냐고"면서 "1인당 5개씩 나눠줄 수 있도록 동사무소에서 주민증 보고 각 가구마다 배부하도록 해라"며 따지기도 했다. 

이 국장은 "정신없이 80명 분이 끝났다"며 "마스크를 사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는 마음이 무겁다. 마음 같아서는 다 나눠드리고 싶은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우체국 앞에 마스크를 판매한다고 써붙였던 종이를 떼냈다. 내일도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행렬은 다시 이어질 것이고 이 풍경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당분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한, 마스크가 시중에 정상적으로 유통되지 않는 한 시민들의 고생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