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마스크 하나 못 사는 나라…‘통치자의 지혜’ 절실

2020-03-01 13:15

[석유선 산업부 차장]

우리에게 ‘국가론’으로 익숙한 플라톤의 정치철학서 <국가(폴리테이아·The Republic)>에서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국가가 실현되려면 세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통치자들의 지혜, 둘째는 수호자들의 용기, 셋째는 일반 시민들의 절제로, 그는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국가의 올바름’이란 국가를 구성하는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자기 일을 제대로 할 때 실현된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떠한가. 세 부류의 사람들 중 특히 수호자들의 용기는 그야말로 눈물겹다.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고 대구·경북 지역으로 선뜻 달려간 의사들에게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절제 또한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침예절, 마스크 착용, 손씻기 생활화 등 국민행동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기업들 또한 과감히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임직원의 건강권 확보에 힘쓰고 있다.

문제는 통치자들의 지혜다. 계속되는 마스크 대란 사태 속에서 과연 우리 정부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의심이 든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마스크 생산자의 해외 수출을 원천 금지하고, 생산물량의 50%를 우체국·농협 등을 통해 공적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이 계획은 국민들에게 ‘희망고문’이 됐다. 실제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우정사업본부마저 3월 2일 오후부터 판매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른바 ‘공적 마스크’를 오매불망 기다려온 시민들의 분통이 터졌다. 결국 정부를 믿지 못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스스로 수급한 마스크를 취약계층에 무료로 나눠주거나, 주민등록증 확인 후 시민들에게 직접 배포하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일찌감치 공적 마스크는 우체국이 아닌 시·군·구 동사무소를 통해 판매 또는 배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시민들이 마스크 하나 못 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희망고문은 계속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첫 사망자가 나온 지난달 21일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순서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볼멘소리를 내놨다. 경제 전문가들도 현 시국에서는 “방역이 최우선의 경제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이 일찌감치 감염병 대응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했지만, 23일에서야 정부는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상향했다. 매번 한 발씩 늦은 대책에 확진자는 폭증했고 사망자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중국발(發) 입국금지’ 요구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결국 지역사회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됐고,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의 오명을 쓰고 있다. 반면 세계 각국에서는 한국인의 입국 금지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외교당국은 해당 국가에 반발만 할 뿐 별다른 묘수를 못 찾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내놓은 코로나19 관련 민생경제 종합대책은 과연 효과를 낼까. 20조원 규모의 재정에 추경까지 더해 △카드 소득공제율 2배 상향 △자동차 개별소비세 70% 인하 △소상공인·자영업자 부가세 경감 등을 통해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기업의 투자활성화 대책은 미비하고 글로벌 불황에도 대비하지 못한 단기적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증시는 매일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1월 제시한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3.3%)를 추가 하향할 수 있다고 시사한 상태다. 응급처치식 경기 부양책 외에 글로벌 경기 전망에 대응할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이참에 그동안 미뤄온 규제·노동개혁 등 근본적인 구조개혁 목소리도 거세다. 그 해법은 결국 문재인 정부, 즉 통치자들의 지혜에 달렸다.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 중구 대흥동 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 품절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