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성추행 대자보 논란] 피해자는 5년 지나도 트라우마, 가해자는 "사랑이었어?"

2019-12-03 00:01
입학 초 부터 따라다니면서 어깨, 허벅지 등을 만져
가해자, '부적절한 행동 인정하지만, 사랑이었어...'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는 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2014년 당시와 지금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이 다르다. 그 당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야기하지 못해 유야무야 흩어지는 경향이 컸고 나도 참고 넘어갔다. 그 이후 잊은 줄 알았는데, 이번 학기 마주치게 되니 트라우마로 남았다는걸 알게 됐다. 보는 순간 너무 힘들었다”

건국대 재학생 A 씨는 5년 전 대학 생활의 부푼 꿈을 갖고 있던 신입생이었다. 하지만, A 씨는 선배 B 씨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학교와 멀어졌고,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입학 후 진행된 학술답사 기간에 선배 B 씨는 첫날부터 A 씨 옆자리에 꼭 있으려 하고, 걸음걸이 속도를 맞추며 A 씨를 따라다니다시피 행동했다. 술자리에서는 A 씨가 자리를 피하자 B 씨도 따라 나와 A 씨의 어깨를 만지고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등 성추행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 씨는 “그 이후 B가 학기생활 동안 계속 따라다녔고 당시 다른 사람들이 사귄다고 오해할 정도였다”며 “과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을 때는 이 사람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하는 건가 싶어 충격적이었고 비참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5년이 지난 올해 졸업을 앞두고 A 씨는 B 씨와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다시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A 씨는 "그 당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야기를 하지 못 하거나 유야무야 흩어지는 경향이 컸고 나도 참고 넘어갔다"며 "그 이후 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번 학기 마주치게 되니 보는 순간 너무 힘들었고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걸 이제 알게 됐다"고 신고 경위를 밝혔다.

A 씨는 시간이 지났지만, B 씨에게 사과와 자신을 피해 줄 것을 요구했다. B 씨는 곧바로 대자보를 통해 당시 행동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이유를 ‘사랑’으로 포장했다. A 씨는 "B의 대자보는 '오해하지마라'는 등 마지못해서 하는 사과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후 과방을 사용하고, 과 행사에 참여하면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일 A 씨는 이 일이 오래 지났어도 더는 묻힐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2014년의 일을 2019년에 맺고자 쓴 글’이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A 씨는 “학교라는 곳이 사회의 축소판이다”며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사회로 나가게 될 학생들이 사회를 믿고 공정하게 일을 진행할 것”이라고 대자보의 목적을 강조했다.
 

A씨의 대자보를 본 학생들이 함께 분노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정석준 기자]


이를 본 수십 명의 학우들은 “뻔뻔하다”, “징계촉구” 등의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 대자보에 붙이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수 및 학생회 임원 등이 모여 성폭력 임시 특별기구(TF)도 만들었다. TF 관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가 안 되고, 가해자 때문에 피해자가 학교를 못 나오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며 “조치를 하려고 해도 학습권 침해문제 때문에 격리 권고만 가능하다”고 전했다.

A 씨는 현재 졸업 논문도 내지 못할 정도로 학교생활을 하기 힘든 상태지만, 포기하지 않고 외로운 싸움을 진행 중이다.

그는 “계속 인권센터와 교수에게 조사받고, 시간을 투자해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데, 가해자는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낸다는 게 당황스럽다”며 “가해자가 다 인정하고 잘잘못을 따질게 없는데 격리조치도 늦었고, 징계위원회도 아직 안 열렸다. 가해자를 제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느슨한 제도를 지적했다.

건국대 인권센터는 현재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수업 분리에 대한 권고 조치를 내렸는데 인권센터는 강제적으로 실시하고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며 “해당 학과에서 이를 받아들여 시행 중이다”고 말했다. 두 학생 모두 졸업 예정이라 곧 학교 관할을 벗어나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