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이한빛 PD 죽음 3년....그 후 방송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019-11-04 17:40

 
지난 2016년 노량진 공시생들의 애환을 그려내며 장안의 화제가 됐던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마지막화가 방영된 다음날.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울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내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나가긴 어려웠다”는 유서 한 통만을 남긴 채 말이다.

혼자 보는 건 가능해도 혼자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만큼 우리가 웃으며 보는 TV드라마에 비춰지지 않았던 누군가는 밤을 지새워가며 촬영이 없는 시간을 틈타 쪽잠을 자고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3년이 지난 2019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번 인터뷰는 故 이한빛 PD의 동생이자 형의 유지를 이어 받아 방송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해 비영리공익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한솔 이사의 인터뷰 이다.
 

[사진= 이한솔 이사 제공/ 이한솔 이사]\

Q,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일하는 현장은 어떤가요?

A. 저희가 굉장히 다양한 측면의 방송현장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어요. 노동의 문제, 폭력적인 문화에 대한 문제, 안전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특히드라마 현장 같은 경우 부당 100시간 노동을 한 달 동안 이어가는 초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가 워낙 심각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초고강도의 노동 환경이 가장 큰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Q.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달라진 것이 있나요?

A. 그래도 그 전까지는 문제가 있었는데도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아무도 문제제기를 못해서 문제가 계속 쌓이고만 있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형이 죽고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센터가 생긴지 2~3 정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확실히 많이 달라지긴 했어요.

대표적으로 인식의 변화가 있는데 그 전까지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게, 이제 ‘제작구조 문제가 심하다’라고 인정을 하는 분위기로 바뀌긴 했어요. 그리고 한빛센터가 알려지면서 하소연 하고 제보할 수 있는 곳이 생겼죠. 문제들 중 일부는 해결된 사례까지 있고요.

그 전까지는 프리랜서라고 해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방송현장에서 드라마를 찍는 스태프들도 노동자로 인정을 받았고 방송국 지상파에서는 직접 계약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까지 바뀌기는 했어요.

Q. 형의 죽음 이전에도 방송현장이 초고강도의 노동현장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A. 저같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었죠.

Q.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취지나 설립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설립이유는 명확해요. 그때 CJ E&M이라고 하는 대기업 CEO가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최초의 사례라고 들었어요.

대책위가 시민들의 지지 속에서 좋은 성과를 냈고 CJ E&M의 재발 방지 약속과 동시에 위로금이 나왔었어요. 저는 그 위로금이 가장 의미 있게 쓰이는 방식과 한빛 PD를 잘 기억하는 방식은 형이 바랬던 방송현장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빠르게 센터를 설립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Q.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의 되었는데 촬영장에서도 괴롭힘들이 많이 이루어지나요?

A. 예를 들어 막내 교육과 같은 것들이 굉장히 심하고 도제식 피라미드 구조로 인해 욕설이나 눈치 주는 건 막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판은 좁은 게 마찬가지라서 예술이나 창의 노동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직장과 달리 도제식 군대문화가 있다 보니까 문제제기를 하면 본인이 쫓겨 나야 되는 상황이에요.

노동자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주로 프리랜서 형식으로 근무를 하다 보니까 통과된 금지법과 노동자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흐름이 그대로 적용받기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문화는 조금씩 바뀔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에 대한 흐름이 방송현장에 적용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Q. 최근 방송계에도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를 통해 어떠한 변화들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보시나요?

A. 그래서 저희 센터가 현장에 특별근로감독을 넣고 직접 계약을 방송국에 요청하는 맥락이 그것 때문이에요. 창의노동이나 창작노동을 하는 상당수의 분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랬을 때 핵심은 금지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게 문제인거죠.

애초에 비정규직도 안 되고 노동자가 아닌 걸로 취급 받다 보니까 방송업계가 52시간을 적용받는다고 하더라도 방송업계에 해당되는 정규직들이 적용 받는 것이지 턴키계약으로 계약을 맺는 프리랜서들이 금지법에 적용 받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까 이 사람들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게 올해 저희로서 중요한 활동의 목표점이에요. 근데 아예 부정적이지는 않아요. 특별근로감독에서 상당수의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했고 그걸 기반으로 방송국과 협상하는 구도에서도 최소한 일부라도 직접계약을 맺고 하겠다는 약속들을 받고 있거든요.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52시간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여지는 생겼다고 보고는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방송계에서 계약을 맺을 때 턴키라는 이름의 계약을 맺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계약은 어떤 건가요?

A. 건설업에서 쓰는 용어에요. 건물을 지을 때 한 팀이 전부 짓지는 않는데 건설업에서는 턴키계약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바닥은 A업체, 가구는 B업체, 도배는 C업체에게 맡겨서 진행을 하겠죠.

분할해서 영역이 나눠지는 것을 하도급 주는 형태의 계약이 턴키계약인데 아 자체로도 문제가 있어요. 건물 자체에서 하자가 있더라도 책임을 분산하는 구조이고, 노동자에게 사고가 났을 때 총괄 건설사가 아닌 하도급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악덕 계약 방식이에요.

턴키계약의 핵심은 분야가 나눠져 있다는 게 핵심인데 잘못 적용이 된 거예요.

방송업계에서는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을 턴키로 계약을 맺어서 건설업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건설업계보다 좀 더 집약적으로 서로가 연계해서 작업하는 것이지, 분절적으로 작업하는 게 아닌데 턴키계약을 맺는 거죠.

그렇게 되면 책임은 다 개별 스태프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사정으로 인해 주인공이 바뀌게 되면 다시 찍어야 되는데 방송국과 제작사 측에서는 편한 거예요.

턴키팀에게 5000만원을 줬다고 하면 더 안줘도 되는 거예요. 스태프들은 두 뱆로 찍어야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방송국에 찾아가도 “턴키 맺었으니까 너희 팀 찾아가라”라는 식으로 듣게 되는 거예요.

Q, 스태프들에게도 쉼이나 특별 휴가가 보장이 잘 되는 편인가요?

A. 특별휴가를 안 보내주는 건 아니에요. 턴키를 맺다보면 단가가 정해져 있어서 단가 후려치기가 가능한 거예요. 10년 전에도 5000만원으로 계약을 했고 지금도 5000만원에 계약을 하는 거예요.

물가수준도 다르고 촬영기법도 고도화 돼서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보니까 재정적 순환이 불가능해진 거예요. 옛날에는 1년에 2편만 찍어도 될 팀이 지금은 4편을 찍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니까 쉬는 시간들이 더 부족해진 거라고 볼 수 있어요.

Q.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곳인데 이사로서 일을 하시면서 가장 소명의식을 가졌을 때는 언제인가요?

A. 한국사회에서의 소명의식이라기보다는 형이 남겼던 유지를 이어가는 삶을 살지 않으면 스스로가 불편한 거예요. 형한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으로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명의식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형한테 안 부끄러운 활동을 생각하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별도로 센터가 출범하고 나서 방송현장에 보여준 변화들이 많기 때문에, 센터의 사회적 의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아이들은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꿈을 갖게 되는데 현장의 현실은 어떤가요?

A. 아동, 청소년, 성인 할 거 없이 모두 삶의 다양한 감정들을 한편의 드라마를 통해서 해소하거나 충족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미생을 예로 들자면 실제로 현장에 있는 감독은 더 악랄한 거예요. 눈앞에서는 힘든 노동 환경을 보여주면 이렇게 살지 말아야 된다는 내용인데 찍고 있는 당사자는 엄청나게 착취당하고 있는 거예요.

이 괴리감이 가장 큰 문제이고 시청자도 그걸 알게 됐을 때 배신감이나 씁쓸함이 존재하게 되는 거죠.

Q. 드라마 현장 그리고 방송계가 가장 바뀌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창의노동과 창작노동도 하나의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으로서 존중해주는 문화가 생겨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은 만들어질 때까지 굴려도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쉴 수 있고 똑같이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고 똑같이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노동을 존중받는 게 저의 우선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스태프들과 방송업계의 책임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만드는 사람 조차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현장이 되어야 서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조금 더 양질의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옛날에 단추가 잘못 끼워진 산업구조만을 상상하면서 살기보다는 미래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현장들을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이한솔 이사와]


-김호이의 사람들-
인터뷰: 김호이/ 김해온
기사 작성 및 수정: 김호이/ 김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