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한달 앞으로...노딜 혼란 미리 엿보니

2019-09-30 00:03
브렉시트 비상체제에도 파운드 추락·시위·물류 대란 등 즉각 혼란 불가피
대영연합 균열·금융중심지 런던의 위상 훼손·인재이탈 인력난 예상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0월 31일 밤 11시부터 영국은 더 이상 EU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 영국과 EU는 탈퇴조건에 합의하지 못했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가 EU와 맺은 탈퇴협정에 영국 의회는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오는 10월 17~18일 열리는 EU정상회의에서 재협상을 시도하되, EU와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땐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할 태세다. 노딜 브렉시트란 영국이 EU와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한 채 EU를 나오는 것을 말한다. 영국 의회와 대법원이 존슨 총리의 위험한 도박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존슨 총리는 탈퇴 연기는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파운드 급락, 물류 대란, 아일랜드 유혈사태, 스코틀랜드 독립, 대규모 시위, 경기침체 등 무질서한 탈퇴가 불러올 후폭풍에 대한 공포가 크다. 당장 영국엔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블룸버그비즈니스가 최신호에서 그린 노딜 브렉시트 첫날은 적지 않은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브렉시트 비상체제 가동 

10월 31일 밤 11시 영국 웨스트민스터. 브렉시트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시계가 00:00:00를 가리킨다. 영국이 유럽과 결별한 건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46년만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긴급 안보회의 코브라를 소집했다. 노딜 브렉시트 비상계획을 담은 '노랑텃멧새 작전(Operation Yellowhammer)' 작전도 시작됐다. 시장에선 파운드가 추락하고 있다. 존슨 총리가 불안한 손길로 부스스한 금발 머리를 쓸어넘긴다. 존슨 총리가 바라는 건 심각한 혼란을 피하는 것. 그러나 벌써 총리 관저 앞으로 반(反)브렉시트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사진=AP·연합뉴스]



◆국경 검문·통관 부활

영국 도버항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서서히 정체가 시작된다.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빠져나오면서 국경 검문과 통관 절차가 부활한다. EU를 향하는 모든 물품엔 통관서류가 필수다. 매일 1만6000대 트럭이 배와 유로터널을 통해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향한다. 트럭 한 대당 통관시간을 평균 2분으로 잡을 때 27km 구간에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60시간의 지체를 유발할 수 있다. 

통관대행사 JJX에 따르면 영국에서 통관서류 준비가 처음인 회사가 20만개에 이른다. 지금껏 EU와만 거래해온 이 업체들은 낯선 통관절차에 우왕좌왕하기 쉽다. 영국 정부는 교통 체증과 서류 미비에 대비해 도버항 주변에 트럭 대기구역 5곳을 지정했다. 지난 8월 공개된 영국 정부 문서에는 영국 각 항구가 길게는 3개월까지 '심각한 혼란'을 겪고 물동량이 현재의 50∼70%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담겼다.

기업들은 이런 대란 우려해 미리 재고를 넉넉하게 쌓아두었고 영국 정부는 의약품, 화학제품, 연료 부족시 통관을 건너뛰는 비상공급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물류 지연이 계속되면 영국이 수입에 의존하는 토마토, 딸기 등 신선식품은 품귀 현상을 빚고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 슈퍼마켓의 텅 빈 매대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지면 공포에 질린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대영연합의 공중분해?

아일랜드섬은 EU 소속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국경을 두고 불안감이 맴돈다. 당장 물리적 국경이 들어설 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하드보더(엄격한 통행·통관 절차 적용)를 피하기 어려워서다. 유혈사태의 재연 우려도 높다. 1949년 아일랜드가 독립한 뒤 북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아일랜드계 구교도와 영국계 신교도의 유혈분쟁이 수십년 이어졌는데 국경시설은 자주 공격 대상이 됐다. 1998년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한 벨파스트 평화협정 덕에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하드보더는 북아일랜드의 독립 요구를 자극할지 모른다.

과거 독립 시도가 몇 번이나 있었던 스코틀랜드 역시 노딜 브렉시트로 인해 EU와 억지로 단절되고 경제적 피해가 가시화하면 독립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선 독립에 찬성하는 응답이 이미 과반을 넘었다

 

한 시민이 노딜 브렉시트로 인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 하드보더가 생길 것을 우려해 27일(현지시간) "평화협정을 지켜달라"고 적은 아일랜드 국기를 들고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시티 오브 런던'의 추락

EU 주식거래의 20%를 담당하는 CBOE유럽을 포함해 런던에 있던 주요 증권거래소는 EU 주식거래 거점을 런던에서 암스테르담이나 파리로 옮겼다. EU 당국이 노딜 브렉시트 땐 EU 주식을 역내 플랫폼을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HSBC, 도이체방크, JP모건체이스 등 여타 금융업 공룡들도 런던에 있던 EU 본사를 더블린,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등으로 재배치했다. 유럽의 월가 '시티 오브 런던'의 위상이 흔들리는 셈이다.

거점을 옮긴다고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유럽 주식거래가 파편화되면 경쟁력은 떨어지고 비용은 올라간다. 대형 은행만큼 중소 은행들이 노딜 브렉시트에 철저히 대비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규제 불확실성에 놓인 미청산 거래규모가 16조 파운드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불확실성에 떠는 기업들

굿피쉬는 바이올린 케이스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공급 차질이나 관세 부과에 따른 추가 비용을 원치 않는 EU 고객사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올해 매출이 20%나 줄었다. 고객의 추가 이탈을 우려해 굿피쉬는 슬로바키아 같은 EU 국가로 공장 이전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영국 직원들을 지키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모른다. 

불확실 아래 놓인 건 제조업체만이 아니다. 당초 EU 안에서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정보와 서비스를 주고받던 행위가 하룻밤 사이 처벌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업 법무팀은 답을 얻기 위해 시시각각 불안한 마음으로 EU 집행위원회 홈페이지를 들락거린다. 

◆인적 이동의 제약

영국의 EU 탈퇴에 따라 영국인은 이제 비(非)EU 국민으로서 입국심사를 받게 된다. 90일까지는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경우 체류 목적에 따라 비자 발급이 필요하다.  

EU 국민이 영국을 방문할 때에도 90일까지 무비자 방문이 허용된다. 3개월 이상 장기 체류자는 임시 체류자격 제도(Temporary Leave To Remain)에 따라 최대 3년의 체류가 가능하다. 2020년 12월까지 입국자에 한해 복잡한 비자 발급이나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한 제도다. 존슨 총리는 EU 탈퇴와 함께 거주·이동의 자유를 중단한다는 종전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대신 2021년 1월 기술과 재능에 근거한 새 이민제도를 도입해 이민 문턱을 높일 예정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EU 인재들의 이탈도 예상 가능하다. 영국이 이민자에 적대적이라는 이미지가 박히면 비숙련 EU 인력 의존도가 높았던 간병이나 건축 산업은 인력난에 허덕일 수 있다. 

 

영국 런던의 경제중심지 시티오브런던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최대 위험은 불확실성

물론 노딜 브렉시트를 단정할 순 없다. 남은 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EU와 탈퇴협상을 극적으로 합의할 수도 있다. 영국 의회의 노딜 브렉시트를 아예 차단할 수도, 노딜 브렉시트가 3개월 뒤 현실화할 수도 있다. 존슨 총리가 쫓겨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건 계속되는 불확실성은 영국 경제를 더 깊은 침체로 몰아넣을 공산이 크다. 이미 브렉시트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 위축에 영국 경제 성장률은 2분기 0.2% 역성장했다. 세계 5위 경제국 영국의 침체는 세계에 충격파를 던질 것이다. 기업들은 노딜 브렉시트가 경제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파운드가 추락해 수입 물가가 뛰는 상황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는 영란은행의 계획을 꼬이게 만들 수 있다. 

영국이 EU 탈퇴를 한 달 앞두고도 여전히 확실한 것은 없다. 가장 확실한 건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