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 치킨게임'에 발목 잡힌 세계 경제

2019-09-25 18:17
동시다발적 치킨게임에 글로벌 경제 타격 우려
미중 무역전쟁·이란발 갈등은 경제 하방 직격탄
브렉시트·아르헨티나 위기도 위협 요소 떠올라

'치킨게임'의 핵심은 경쟁이다. 손해를 감수하는 싸움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피해를 보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보통은 양자간 손해로 끝나지만 제3의 피해자를 내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가 대표적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치킨게임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든 글로벌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에 증시 불안...美·이란 갈등에 유가 불안 

글로벌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첫 번째 치킨게임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은 9월 1일을 기점으로 맞불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중 통상 갈등 우려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증시가 급락하고 안전자산인 엔화의 가치는 상승했다.
 
미·중 통상 갈등이 글로벌 경제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신호는 여러 차례 나왔다. 일단 제조업 분야 수요가 줄면서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가 가속화했다. 2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ADB)는 이날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 전망치를 6.2%로 내다봤다. 지난 4월 전망치(6.3%)보다 내려잡은 것이다. 내년 성장률은 6.0%로, 전년의 6.1%에서 소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나마 미국 소매지표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3일 8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4% 늘었다고 발표했다. 시장 전망치(0.2%)를 웃돈 수준이다. 7월 소매판매의 전월 대비 증가율도 0.8%로 상향 조정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도 미국의 소비는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다만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 경제도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의 대립도 대표적인 치킨게임으로 꼽힌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원유시설이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은 이후 양국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간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제재해왔던 미국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한 뒤 제재 수위를 높였다. 양국의 상호 비방이 이어지면서 국제유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중동발 지정학적 우려를 높였던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 옵션도 여전히 남아 있다. 스태그플래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 불황(스태그네이션) 속에서 이례적으로 물가가 상승(인플레이션)하는 현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유가를 상승시켜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며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1979년 이란 혁명, 1990년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이후에도 그랬다"고 지적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브렉시트 불똥 튄 유로존 경제...아르헨티나 대선 결과도 관건 

영국과 유럽연합(EU)도 브렉시트(영국의 EU 이탈)를 두고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핵심 쟁점은 '백스톱(backstop·안전장치)'이다. 별도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남는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백스톱 폐기와 브렉시트 합의문 재협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EU는 재협상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입장차가 적지 않은 만큼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없이 EU를 이탈하는 것) 가능성도 높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는 이미 하방 위협을 받고 있다. 유로존의 9월 합성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6년 만에 최저치다. 서비스업 PMI와 제조업 PMI가 각각 52.0, 45.6으로 8월보다 낮았다. PMI는 50 이상이면 경기확장, 50 미만이면 경기위축을 의미한다.

브렉시트는 미·중 무역전쟁 만큼 직격탄을 날리지는 않는다. 다만 유럽 경제가 침체되면 전 세계 성장률을 낮추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로화와 파운드화(영국 화폐)의 가치가 다른 통화에 비해 큰 폭으로 절하되면 새로운 화폐전쟁(환율전쟁)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이 외신의 지적이다.

아르헨티나의 위기도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경제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총 560억 달러(약 68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에 합의했다. 지금까지 440억 달러를 지급 받았다. 당초 합의대로라면 상환 기간은 2021년부터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달 말 IMF 등에 채무 만기 연장을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오는 10월 27일 예정돼 있는 대통령 선거다.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선 후보가 정권을 잡을 경우 현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과는 달리 IMF 프로그램을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1년 경험했던 1000억 달러 규모의 부채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터키와 베네수엘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자본이탈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모든 위기가 최악의 치킨게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적다. 미·중 무역협상과 브렉시트 협상이 더디지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극단적인 비관론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든 세계 경제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루비니 교수는 "세계 경제의 미래는 네 가지 치킨게임에 달려 있다"며 "각각 대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떤 경우든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건 나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