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지금, 바른 말 할 ‘21세기 유성룡’ 없나

2019-09-16 13:07

[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서애(西厓) 유성룡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에 다녀왔다. 만대루 2층 누마루에 올라 서애를 떠올렸다. 서애는 당쟁과 사화로 얼룩진 시대를 살다 갔다. 그럼에도 소신을 견지하고 끊임없이 성찰했다. 인재를 발탁하고, 충언을 아끼지 않고, 잘못을 경계하는 글을 남겼다.

이순신을 천거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종6품에 불과했던 이순신은 정3품 전라좌수사에 전격 기용됐다. 당시에도 7계급 특진은 파격이었다. 믿음대로 이순신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던 조선을 살렸다.

서애는 충언해야 할 때도 주저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초기 선조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도망가려 할 때다. “대가(大駕‧임금이 타는 수레)가 우리 땅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가면 조선 땅은 우리 것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눈치볼 때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스스로 허물을 징계하고 훗날을 경계하자는 성찰이다. 지식인으로서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우리사회는 지난 한 달여 동안 조국 사태로 들끓었다. 진보와 보수로 갈려 진영싸움으로 날이 샜다. 상식과 합리는 실종됐다. 그저 내편 네 편으로 갈려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자기편에는 한없는 아량과 관대함을, 상대에게는 날 선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나라는 두 동강 났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철없이 환호한다. 후유증과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 방증이다. KBS조사(10~11일) 결과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해 ‘잘못했다’는 51%, ‘잘했다’는 38.9%였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도 53.3%(긍정 44.8%)였다. SBS조사(9~11일)도 마찬가지다. 조국 장관 임명 반대 53%, 찬성 43.1%였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추석 민심을 입맛대로 해석한다. 반대여론은 소모적인 정쟁으로 폄하했다. 지지층 환호에 기댄 오만이다. 전형적인 확증편향이다.

야당 또한 조국 사태를 대하는 인식은 후안무치다. 해임 건의안, 특검, 국정조사 카드로 계속 압박할 태세다. 자신들 허물은 눈감고 국민은 안중에 없다. 오로지 정쟁에 도움이 되는 호재로만 인식할 뿐이다.

이 와중에 국민들만 만신창이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도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이다. 벌써부터 조국 공방으로 전운이 감돈다. 450년 전 혼란한 정국에서 길을 제시했던 서애가 그리운 이유다. 정치권에 서애와 같은 인물이 있는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을 임명하면서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지 회의적이다. 앞선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듯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이다. 가슴에 닿지 않으니 호응하기 어렵다.

임명 제청권을 가진 국무총리 또한 부자 몸조심하듯 침묵한다. 경고음이 사라진, 침묵하는 민주당과 청와대에는 확증편향만 맴돈다.

그나마 김해영·금태섭·박용진 의원 정도가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돌아온 건 거센 비난이다. 무조건적인 옹호는 위험한 신호다. 다른 목소리를 막고 침묵을 강요하는 조직은 몰락한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활발한 내부 비판이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민주당은 내부 비판을 차단한 채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내편은 괜찮다는 진영논리에 빠져 무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20대가 분노하는 지점은 조국 장관이 보여준 이중적이며 위선적 행태다. 정의와 공정을 내팽개친 편법과 특혜에 대한 좌절이다. 또 기울어진 운동장은커녕 아예 자신들은 모르는 운동장이 있었다는 절망이기도 하다.

조국과 같은 시대를 헤쳐 온 586세대들이 느끼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믿었던 상식이 와르르 무너졌다는 무력감이다. 이 때문에 핵심 지지층은 환호하지만 절망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조국 장관 임명을 공감능력 부족에서 찾고 있다.

이제라도 아닌 것은 아니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해야 한다. 그럴 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비판적인 지지층까지 껴안을 수 있다.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는 편협하다.

조국 장관은 도덕적 권위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가 법무부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는 또 다른 변수다. 국민들이 침묵한다고 해서 생각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당뇨병은 자각 증세가 없다. “우리 편은 옳다”는 확증편향은 당뇨병과 같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지만 그때는 늦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30년 만에 전쟁(정묘호란)을 겪는다. 이어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유린됐고 왕은 도망가다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1905년 통째로 망한다. 치욕스런 역사의 이면에는 느슨한 내부 경고와 반복되는 자기 합리화가 있다. 지금 집권여당에 필요한 것은 성찰과 치열한 내부 비판이다.

서애 유성룡처럼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인재를 널리 구하고, 스스로 허물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 뜻을 헤아려야 한다. 공감능력을 잃으면 독단과 독선이란 독버섯이 자란다. 길을 제시하는 경륜 있는 정치인이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