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면 도태된다"···허물어지는 금산분리 원칙

2019-09-06 05:00
금융사 핀테크 기업 투자 허용 등 변화
재벌 사금고화 등 부작용 최소화 과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과 금융사의 핀테크기업 투자가 허용되면서 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산업권에서는 지금까지 국내 경제 생태계를 지켜왔던 철칙인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찬반 양론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혁신성장을 위해 일부분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금융사와 산업자본의 유착 현상이나 일부 IT기업만 특혜를 받게 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에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원칙이다. 고객의 돈으로 운영되는 금융사와 산업자본이 연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특정 재벌이 금융사를 소유해 지배권을 행사하면 모 그룹의 부실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돈을 대규모로 투자할 우려가 크다.

반대로 은행이 산업계열사를 소유하게 되면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고객의 돈을 사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양쪽 모두 국내 산업 발전에 이롭지 않다는 판정을 받아 그동안 철저히 금지돼 왔다.

그러나 최근 금산분리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4일 금융사가 다양한 핀테크 기업에 자유롭게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산업자본의 금융사 지배를 허용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도 올해 초 전격 시행됐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는 4차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환경변화와 영향이 깊다. 최근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둘을 떼어놓을 수 없게 됐다. ICT 분야에서도 고객의 금융정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되고 있으며, 금융사도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의 기술 분야를 등한시했다가는 한순간에 도태될 수 있다. 때문에 금융사와 ICT기업 양자가 서로 투자·소유해야 할 이유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금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금산분리 규제를 '붉은 깃발법'에 비유했다. 이는 1865년 영국이 자동차산업으로부터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시속 3㎞로 제한한 법이다. 금산분리 규제가 핀테크의 혁신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 최종구 금융위원장, 은성수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자 등도 금산분리의 일부분 완화가 필요하다며 문 대통령과 입장을 같이했다. 금융권 관계자들도 금산분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금산분리의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재벌로 표현되는 대기업 그룹이 금융산업을 잠식할 경우 2013년 동양증권 사태와 같은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동양증권은 당시 계열사인 동양시멘트·레저의 부실을 덮고 회사채·기업어음(CP) 등을 1조3000억원가량 판매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양시멘트 등은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개인투자자 4만여명은 큰 피해를 보았다. 금융권과 학계에서는 금융사인 동양증권이 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금산분리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는 일부 재벌이 면죄부를 받게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최근까지 금융계열사의 자금으로 산업계열사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삼성그룹 등을 놓고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 등 산업자본의 금융사 지배가 많아질 경우 지배구조 개혁 동력도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 보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는 인터넷은행이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와 대주주가 발행한 지분증권 취득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금산분리 원칙도 일부분 완화해야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됐다"며 "다만 금산분리 완화가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운용의 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