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탈중국’, 삼성·롯데 사례가 본보기

2019-07-04 17:12
사드보복으로 탈중국 '선두주자'된 韓 기업들 '전화위복' 기회
SCMP "서구기업,. 한국 사례 면밀히 살펴 볼 것"

# 2017년 호주를 방문한 한국의 한 원로 정치인은 줄리 비숍 당시 호주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인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로 롯데가 중국 사업을 철수한 상황이었다. 비숍 장관은 이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그를 초청한 것이었다. 호주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언제라도 한국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당는 우려가 호주 정부를 긴장시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4일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최근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호주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관세 피해로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에 속도가 붙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중국에서 발을 뺀 삼성·롯데 등 우리 기업들이 선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SCMP는 “많은 전문가들은 무역전쟁으로 인한 관세를 피하려는 서구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탈중국 사례를 면밀이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의 있는 생산기지를 이전하거나, 중국 사업을 축소하는 곳이 많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델, HP 등 미국 IT 공룡들을 비롯해 소니, 닌텐도 등 일본 전자기업들 모두가 최근 중국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아마존은 전자책 리더 '킨들'과 스마트 스피커 '에코'의 생산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MS는 엑스박스와 스마트 스피커의 생산을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로 옮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구글은 ‘구글 홈’의 생산기지 이전을 고려 중이다.

SCMP는 이 같은 기업들의 탈중국 행렬을 한국 기업들이 과거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을 빠져나간 사례와 연결 지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 기아차, 롯데그룹 등이 거론됐다.

지난 2016년 주한미군이 사드를 경북 성주 롯데 소유 골프장 부지에 배치하자 중국에서는 롯데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도 규정 위반 등의 이유를 들며 ‘롯데 죽이기’에 나섰다. 롯데는 결국 중국에서 거의 모든 사업을 접은 상태다.

삼성전자와 현대 기아차도 중국내 사업을 줄이고 동남아로 공장 이전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쥘리앵 셰스 홍콩시립대 무역법 교수는 SCMP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들의 사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다른 외국 기업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면서 "유럽기업들도 중국 사업을 곧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자문업체 컨트롤리스크스의 한·중 문제 담당자 앤드루 길홈은 "2017년 이후 일부 한국 기업들이 겪었던 문제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기업들의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이 다른 기업들보다 2년 먼저 공급망 전환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현재 무역전쟁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삼성과 롯데처럼 장기적인 탈중국 계획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며 "이들은 이제 막 중국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기업들처럼 압박이 크고 애매한 상황에서 탈중국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