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 R&D의 민낯] ③ 정권 바뀔 때 마다 ​R&D정책 '흔들'

2019-07-05 00:25
"예산 심사 통과하려면 생산기술 위주 사업 유리" 인식 팽배
널뛰는 과기정책 컨트롤타워…"연구 연속성 보장돼야" 지적

과학기술 연구제도 혁신에 대한 현장 체감도가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R&D(연구개발) 생태계 회복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한국의 기초원천기술 연구가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과학기술 제도가 중심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국정과제에 2022년까지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지원사업 투자를 2조5000억원 수준으로 증액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가 자유롭게 주제나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 상향식(bottom-up) 방식의 R&D로 꼽힌다.

지난해부터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R&D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기능을 넘겨받았다. 과기혁신본부는 운영 효율화를 위해 R&D 예타 간 연계를 강화하고 조사 기간도 단축했다. 중복소지가 있는 기술성평가 항목을 기존 30개에서 10개로 간소화하고 예타 진행 시 수행기간도 평균 6개월 이내로 단축했다.

또한 정부는 기획·관리·평가·제도 전반을 손질 중이다. 연구자 중심의 R&D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스템을 통합했다. 부처별 개별 연구비 관리 시스템 17개를 2개로, 연구지원시스템도 20개에서 1개로 정리해 행정 부담을 완화했다.

일부 지표에서는 성과도 나타났다. 2018년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 집행액은 1조4200억원으로 2017년 대비 12.3% 증가했다. 과제 수도 1만7547개로 6.5% 늘어났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면 R&D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맞지만, 특정 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면 모든 기술을 국산화해야 한다"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모든 기술을 국산화 한다면 R&D 비용이 2000조원쯤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본은 원천기술이 강하지만 상용화 기술이 약한 것처럼 각자 강점이 있다"며 "한국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기술 연구로 가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아주경제]



그러나 과학기술계에서는 기초연구사업 증액 목표만 달성된다고 해서 연구 생태계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지원 과제를 늘리는 것 이상으로 연구과제들이 연속성 있게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과기혁신본부가 예타 개선안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타를 과기혁신본부에서 하더라도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 영역에서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상용화와 즉각 연결되는 경제성을 여전히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예타를 담당하는 부처에 관계없이 경제성을 최우선시 해야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호원경 서울대 의과대 교수는 "기초연구사업비 증가는 과제수를 늘리는 데 급급해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며 "연구자들 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연구비 규모의 단계별 구조와 과제수를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는데 과기정통부와 교육부가 예산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8년 연구비 구간별 과제 수는 5000만원 미만이 2만2598개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으며 5000만원~2억원 미만 과제도 10.6% 늘어났다. 반면 2억원 이상을 지원받는 과제는 1만5284건으로 2.7% 감소했다. 과제당 평균 연구비 또한 2016년 3억5000만원에서 2018년에는 3억1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권마다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부처를 재정립하면서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가 R&D 예산도 집행하는 방식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됐으며 3년 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기능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과기위 또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에 흡수됐으며 이후 2015년 과학기술전략본부를 구성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차관급 기관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부활했다.

이처럼 정권에 따라 과학기술 R&D를 관할하는 부서의 위상이 널뛰기를 하면서 과학기술 정책의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당장 정권의 성과를 위해서는 상용화 단계의 기술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기초 원천기술 연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 교수는 "연구자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히 연구비를 더 달라는 게 아닌 제도적인 개혁"이라며 "R&D에 참여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 평가기관, 연구자가 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제대로 된 연구개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