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00만명 '검은 대행진'에 '백기'...행정장관 첫 공개사과

2019-06-17 08:18
송환법 철회·사퇴 요구는 수용 안 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에 반발하고 나선 200만 홍콩 시민들의 '검은 대행진'에 홍콩 정부가 한 발 더 물러섰다.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송환법 개정 추진을 중단한 데 이어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사과하고 나선 것.

1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람 장관은 전날 저녁 8시 30분에 낸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홍콩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정부 업무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많은 시민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점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송환법 개정안 반대 운동이 시작된 뒤 람 장관이 시민들에게 직접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판 철의 여인', '싸움꾼' 등으로 불리는 그는 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친중국 정책을 밀어붙였다. 람 장관은 다만 시위대가 요구한 해당 법안 철회와 사퇴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고 SCMP가 전했다.

일주일 전인 지난 9일 홍콩 도심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집회엔 시민 103만명이 동참하며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 시위로 기록됐다. 이어 12일엔 입법회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수만명이 시위를 벌여 경찰과 충돌하면서 유혈사태까지 빚어졌고 같은 날 예정됐던 송환법 심의는 결국 연기됐다.

급기야 람 장관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송환법 개정 추진을 중단할 것이라며 대중의 의견을 듣는 데 시간표를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무기한 연기 입장을 밝힌 셈이다. 하지만 이튿날 홍콩 도심에서는 참가자가 200만명에 달하는 홍콩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이날 수십명의 시민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송환법 완전 철회와 람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8시간동안 시내 곳곳에서 '검은 대행진'을 벌였다.

 

검은 옷을 입은 홍콩 시민들이 16일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당초 송환법 개정안은 12일 입법회(홍콩 국회) 심의를 거쳐 20일 표결에 부쳐 처리할 계획이었다. 입법회는 친중파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어 개정안 승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람 장관이 이를 중단하고 나선 건 시위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중국 정부의 선제적 조치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빈과일보, 명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람 장관이 뒤늦게 사과하고 나선 것은 하루 빨리 이번 사태를 해결해 중국 정부의 '신임'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 시위가 주요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국제적 쟁점으로 주목받는 것이 중국엔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홍콩 사태를 지렛대로 삼을 조짐도 포착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6일 '폭스뉴스선데이'와의 회견에서 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논의할 여러 의제 가운데 홍콩 사태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