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에 '주휴시간' 포함...정부 최저임금법 시행령 수정안 입법예고

2018-12-26 16:51
"주휴시간만 빼면 불합리"
30년 된 행정지침 명문화에 경영계 반발 시정기간 부여도 논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및 최저임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을 넣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수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수정 방침을 밝힌 지난 24일 수정안에 대한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28일까지이며 오는 3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다.

수정안은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을 '소정근로시간 수와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라 유급으로 처리되는 시간 수를 합산한 시간 수'로 규정했다.

근로기준법 제55조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도록 한 것으로, 주휴수당에 관한 조항이다. 수정안은 주휴수당 지급에 해당하는 시간, 즉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포함하도록 한 것이다.

월급으로 임금을 주는 사업장의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질 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임금 총액을 월 노동시간으로 나눠 최저임금과 비교할 '가상 시급'을 산출해야 하는데 이때 적용하는 월 노동시간이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이다.

분모인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이 작을수록 경영계에 유리하다. 같은 월급을 주고도 가상 시급이 커져 최저임금 위반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경영계가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서 주휴시간을 빼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유다.

문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는 임금 총액, 즉 분자에는 주휴수당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분자에는 주휴수당을 넣고 분모에서는 주휴시간을 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고용부는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약 30년 동안 일관적으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행정지침을 유지했다.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안은 이를 명문화한 것뿐으로,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의미다.

경영계가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에 반발하는 이유도 행정지침이 명문화되면 이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계는 외형상 행정지침과 달라 보이는 일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서 주휴시간을 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행정지침에 대한 경영계 반발은 커졌고 노동부는 논란을 방치하면 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으로 보고 행정지침 명문화에 나선 것이다.

고용부는 행정지침을 명문화하면 대법원도 기존 판례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서 주휴시간을 빼달라는 경영계 요구는 여러 면에서 불합리하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특히, 최저임금 비교 대상인 가상 시급을 산출할 때 분자의 주휴수당은 그대로 두고 분모에서 주휴시간을 빼면 월급제 노동자가 시급제 노동자와 비교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고용부는 우려한다.

소정근로시간 주 40시간(월 174시간)에 주휴시간을 뺀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은 174시간이다.

여기에 내년 최저임금 8350원을 적용하면 시급제에서는 한 달 동안 노동자에게 최소한 8350원에 소정근로시간 174시간을 곱한 145만원을 줘야 최저임금 위반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의무 수당인 주휴수당 29만원은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 한 달 동안 174만원 이상은 줘야 최저임금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휴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한꺼번에 지급하는 월급제에서는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145만원만 줘도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으로 나눈 가상 시급이 8350원이 돼 최저임금 위반을 면할 수 있다.

월급제 노동자는 결과적으로 29만원(174만원-145만원)을 적게 받을 수 있다. 임금이 시급제보다 16.7% 적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고용부는 최저임금 가상 시급을 산출할 때 분자에 특정 임금을 넣으면 분모에도 이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을 넣는 게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대법원이 1998년 통상임금 관련 판례에서 노동의 시간당 가치인 시급을 산정할 때 임금(분자)과 노동시간(분모)이 상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점을 강조한다.

고용부가 수정안에서 최저임금 산정에 유급휴일수당과 유급휴일시간은 각각 분자와 분모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도 같은 원칙에 따른 것이다.

유급휴일수당과 시간을 동시에 제외하면 분자와 분모가 같은 비율로 줄어 가상 시급 산출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데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고용부가 최저임금 산정에서 유급휴일수당과 시간을 제외하기로 한 것은 유급휴일수당을 지급하는 사업주가 시행령 개정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수정안이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의미다.

경영계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원안에 대해 토요일 8시간에 해당하는 유급휴일수당을 지급하는 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이 243시간으로 불어난다며 반발했다.

경영계가 기존 제도에는 없는 새로운 부담을 져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이 같은 주장이 확산하자 고용부가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최저임금 산정 방식을 더 복잡하게 만든 셈이다.

고용부가 현대모비스와 같은 고액연봉 기업의 경우 최저임금 위반이 적발돼도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주기로 한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정부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항상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면서 사용자에 대해서는 법 시행을 사실상 유예하는 이중 잣대를 보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서도 지난 7월 시행을 앞두고 경영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6개월의 계도기간을 줬고, 계도기간이 끝나는 연말이 다가오자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3개월의 계도기간을 더 주기로 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핵심 정책인 노동시간 단축의 의지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한국노총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갈수록 후퇴하고 사용자 쪽으로 경도되는 것으로 보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