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벼랑끝 몰린 이시바… 日경제 개혁동력 되살릴까

2024-11-01 06:00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시바 시게루씨가 일본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일본에 새로운 변혁의 기운이 돌 것인지 주목된다. 이시바 총재는 오래전부터 당 총재선거에 출마해 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거듭거듭 낙선하였다. 이번이 다섯 번째 출마로 자신의 정치 인생 최후의 총재선거라고 생각하면서 임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던 경쟁자 다카이치 사나에를 꺾고 당 총재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24년 10월 1일 제102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오랜 세월 당 총재를 목표로 고군분투해 왔던 데는 그만의 정치적 비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당내 지지 기반도 취약한 한 정치인이 무모하게 총재선거에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오히려 일본이 처해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권력을 좇아서 선거에 도전해 왔을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정치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렇다면 이시바 총리가 취임한 이후 일본 정치·경제는 과연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가? 이시바 총리는 새로운 경제정책 노선을 내걸고 야심 차게 경제개혁을 단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거리는 일본 경제에 다시금 탱탱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그 이유는 먼저 이시바 총리와 내각이 과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 만큼 당내 기반, 국민적 지지, 그리고 정책적 독창성을 가졌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아소씨를 최고 고문에 등용하는 등 당내 화합을 이루려 했으나 당내 거대 세력인 구 아베파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고 전해진다. 구 아베파의 각료 등용이 전혀 없어서 불만을 샀고 총재선거 경쟁자였던 다카이치 후보, 고바야시 후보는 내각 참여를 거절하여 갈등이 남아 있다. 이시바 총리와 내각에 대한 당내 지지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취약한 당내 기반은 국민적 지지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10월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가 크게 승리를 거둔다면 개혁의 동력은 확보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민당은 참패하고 말았다. 이시바 총리를 자민당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그가 가진 국민적 인기를 선거에 활용하려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연립정권을 구성해 왔던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을 합해도 과반에 이르지 못했다. 자민당 정권이 위기에 봉착했다.
이시바 총리의 경제정책은 당초부터 명확한 방향성과 독창성을 뿜어내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였다. 총리 취임 이후 이시바 총리 그리고 그 내각이 당 총재 선거 과정의 발언과는 색깔이 다른 정책들을 제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총재선거에서 법인세와 소비세의 증세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주식투자 등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부자들에 대한 과세 강화책으로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총리 취임 이후 증세에 대한 적극적인 요구가 약화하기 시작했다. 금융정책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은행은 정부의 자회사가 아니라면서 일본은행의 금리정책에 대해 정부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였다. 그러나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민당 총재 당선 직후 주식시장이 급락한 것을 보면서 증세 노선이 시장에 주는 영향의 크기를 실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에너지 정책도 변화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원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총리 취임 이후 안전성 확보를 대전제로 필요한 원전의 가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이 선회하였다. 인공지능의 확대로 인한 전력수요의 증가에 대응하여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이시바 총리가 가지는 색깔이 점차 바래지면서 이시바 내각의 경제정책은 기시다 내각의 경제정책과 거의 대동소이하게 되어 버렸다. 다시 말해서 이전 정부의 경제정책을 계승한다는 것이 이시바 신정부 경제정책의 최대 특징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이시바 내각의 경제정책은 디플레이션 탈출과 성장을 중시한 기시다 내각의 정책 방향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재정정책은 재정규율보다 재정 확대를 통해 성장의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노선, 금융정책은 금리 인상을 통한 금융정상화보다 완화정책과 엔저정책을 통한 자산시장 및 수출기업 지원을 이어간다는 노선, 이러한 확장적인 재정 및 금융정책을 통해 2%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웃도는 명목임금 인상을 통해 실질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 환경을 만든다는 노선이 이시바 내각이 계승하는 경제정책의 근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시바 총리가 주장하였던 증세정책, 그리고 금리 인상에 대한 무관여의 방침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민당 내 지지를 얻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중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해야 했다. ‘자산운용입국’을 내세우며 자산시장으로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을 지속한다. 이제 주식시장으로 국민들의 자산이 많이 투자된 이상 이들의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가 하락은 곧 정권에 대한 지지율 하락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노선은 철회하였다. 임금 인상 속도는 더욱 가속화한다. 기시다 정부가 2030년대 중반까지 달성하겠다고 한 최저임금 전국 평균 1500엔 목표는 2020년대 이내에 달성하기로 시기를 앞당겼다. 2029년까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평균 89엔의 인상이 필요한데 2024년 최저임금 인상액은 51엔으로 역대 최고 인상 폭이었다. 지속적인 임금 인상을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증가가 필수적이다. 노동력 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이시바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반영된다. 그러나 여성, 고령자, 외국인 활용 확대라는 정책을 넘는 보다 참신하고 근본적인 노동시장 개혁노선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시바 내각의 경제정책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방창생’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지방창생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지방경제 활성화 혹은 지역균형발전이 될 것이다. 대도시와 수도권에 집중되는 인구와 경제력을 지역에 분산시켜 일본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폭제로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2014년 이시바 총리는 당시 초대 지방창생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이제 예산과 조직을 증강하여 ‘지방창생 2.0’으로 새출발한다. 지방창생교부금을 2배로 늘리고 창생본부를 설치하여 정책을 구상한다. 도쿄와 간사이에 집중되는 인바운드 외국인 관광객을 지방으로 유입시켜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며 해외의 공장을 국내 지방으로 유턴시켜 새로운 산업클러스터를 육성한다. 반도체 산업의 규슈 집적은 최근의 성과이다. 지방의 농림수산업을 발전시켜 환경보호, 식량안보 실현, 농림수산물 수출 확대, 식료품 산업 육성을 달성한다. 지방에 젊은 여성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보육만이 아니라 결혼 자체를 지원해야 한다는 노선도 제시하였다. 거대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2026년부터 방채청을 설치·가동하며 이후 방재성으로 확대 재편한다. 방재 분야 예산과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방위력 증강을 위해 자위대 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처우 개선에 나선다. 방위력 증강을 위한 예산 증액이 필요한 바, 재원 조달을 위한 방안 마련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된다.
이러한 정책들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당내 기반 확보, 국민적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시바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였다. 자민당 단독은커녕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 형성도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야당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으며 야당과 어떤 형태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일본 정권의 형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경제정책 방향도 어떻게 수정될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시바 총리는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