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의 방담록] 김형주 블록체인산업협회 이사장을 만나다
2018-11-26 07:15
- "물고기가 죽으면 수질검사를 하면서 왜..."
- "골든타임은 놓쳤다. 상용화에서 승부수를"
- "암호화폐는 거래수단의 관점에서 접근을"
- "골든타임은 놓쳤다. 상용화에서 승부수를"
- "암호화폐는 거래수단의 관점에서 접근을"
안녕하세요. ‘제니의 방담록’의 제니입니다.
제니 방담록은 한국과 중국·미국 등지에서 만난 블록체인 관련 핵심인물과의 대화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를 통해 블록체인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제니의 방담록'이란 제목으로 짧지 않은 여정을 아주경제 독자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중앙집권화된 금융시스템의 위험성이 드러나면서 금융 시스템의 주체를 ‘개인화’ 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을 한 것입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로 알려진 프로그래머가 그 주인공이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거래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수많은 컴퓨터가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오늘날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이미 수많은 전통적 가치들을 재정의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화폐란 무엇인가’ ‘거래란 무엇인가’ 란 경제적 개념부터 ‘국가란 무엇인가’ ‘주권이란 무엇인가’ 등과 관련된 정치·철학의 문제까지 블록체인은 우리의 주변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당연해 보였던 기존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해보게 된 것입니다. 그 것이 당위가 아니라 사실은 게임의 룰에 의해 고안되고 고정돼 온 것이란 진실도 블록체인이 우리 앞에 꺼내 놓았습니다.
제니 방담록은 이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 첫번째 인물로 제니가 찾은 인물은 김형주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장(이사장)입니다.
며칠전 블록체인 센터란 입간판에 세워진 역삼동 한 카페에서 김형주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블록체인산업협회는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국내 첫 번째 협회입니다. 김 이사장은 17대 국회의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고, 청년정보문화 운동을 이끌어 온 인물입니다. 블록체인산업협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계십니다.
‘물고기가 죽으면 수질검사를 하지 않습니까?’ 이번 방담록에서 그는 블록체인 관련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우선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규제의 문제가 나오자 그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제반 환경 전반을 살펴봐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물고기 배만 갈라본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구성하는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객체만 본다는 것입니다.
그는 “작년말부터 암호화폐 투자열풍이 문제가 되자 ICO(암호화폐공개) 금지에 관한 법안이 발의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 올바른 정부의 역할은 규제와 제도가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는지, 세계 경제 환경은 어떤 상황인지,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떤지 등을 먼저 살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입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는 문제지만 빈대잡으려다 초가산간 태우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중국의 투자자들이 투자 기회를 물어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국내 투자자들조차 싱가포르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는 “해외투자자들이 다시 우리 시장에 발걸음을 하게 하려면 우리 시장이 투자자들이 실익을 보는 구조란 확신이 들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고, 육성하는 정부의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정부가 연말 블록체인 관련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헌했으면서도 아직 정확한 가이드라인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업계에선 규제라도 좋으니 정부의 입장에 대한 정확한 시그널을 보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규제보다 무서운 게 불확실성이란 얘기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김 이사장은 강조합니다. 그는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찾았던 건 비트코인 열풍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IT 인프라와 민주적 여론 사회란 한국의 정치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원천기술에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구체적인 상용모델을 만드는 경쟁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게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이끌고 있는 CEO(최고경영자)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김 이사장은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 발행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블록체인과 중앙정부는 본질적으로 상충한다”고 했습니다. 블록체인의 탈중심 철학이 중앙집권형 중앙정부의 이해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부합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그가 생각하는 대안이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의 보급입니다.
김 이사장은 “지방정부의 복지정책과 암호화폐는 잘 맞는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컨대 지방정부가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복지 토큰을 발행한다고 칩시다. 이 토큰은 취업준비를 위한 학원 등에 사용이 제한됩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재원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실제 목적에 맞게 토큰이 사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지급하면서 논란이 됐던 청년수당의 부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돈을 받은 청년들이 유흥비로 수당을 쓰는 등의 문제 말입니다.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선 노원구가 노원화폐란 암호화폐로 발행을 합니다. 강원페이나 제주코인은 해당 지역에서만 일부 또는 전부 사용이 제한된 사실상 지자체 전용화폐입니다. 강원도의 경우 지역 공사에 대한 시공비를 암호화폐를 지급하고 일정 부분을 강원도에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지역 분권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암호화폐의 등장은 기존 화폐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블록체인 산업 전반의 지원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로서 그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는 일단 “암호화폐의 개념을 기축통화의 경쟁 개념으로 접근하면 처음부터 논쟁이 너무 무거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폐의 본래 목적은 물물교환의 대체수단이었던 것처럼 암호화폐 사용 초기엔 교환수단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암호화폐는 기존의 토큰이나 상품권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버스 토큰이 버스 업계의 화폐이듯, 백화점 상품권이 해당 백화점 내에선 화폐이듯 말입니다.
그의 이같은 시각은 암호화폐와 기존 화폐의 대립구도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논쟁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달러나 위안화, 원화 등 기존 기축통화 또는 법정 화폐들에 비하면 암호화폐는 아직 유통량이나 사용자 수 면에서 미약한 수준입니다. 같은 체급으로 링에 서려면 더많은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암호화폐가 언젠가는 기존 화폐 제도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속내입니다.
김 이사장은 “화폐는 본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됐다”며 “암호화폐가 발전하면서 탈중심화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고 기존 국가 개념을 재정의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중국에선 블록체인 산업을 계기로 체제 논쟁이 물밑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지난해 암호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한 것도 이같은 논쟁이 같는 폭발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는 “암호화폐를 얼마나 허용하는 지가 해당 국가의 분권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꼬가 터지자 보다 심도 있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는 “중국이 화폐전쟁의 대안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암호화폐 자체가 기존 기축통화에 대한 도전이라면, 궁극적으로 암호화폐는 달러를 상대하는 다른 진영에겐 지원군이 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베네수엘라 등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국가들이 대안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단계를 넘어서 국제 주요 원자재를 암호화폐로 거래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 화폐전쟁이 법정통화간의 싸움에서 기축통화와 암호화폐간의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탈중심화의 주요 대상으로 개인정보를 꼽습니다. 주민등록부터, 토지대장까지 지금은 거의 모든 정보를 정부가 통제합니다. 그는 “블록체인이 발전하면 데이터의 관리 주체가 그 데이터의 주인인 나 자신이 된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른바 ‘마이 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되면 빅데이터 관련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SK텔레콤 등 일부 기업에선 이미 마이 데이터 시대에 맞는 상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주민등록증 등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을 ID카드를 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 방담록의 제니는 = 중국 샤오미의 한국총판인 지모비코리아의 정승희 CEO다. 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