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핀얼다이' 신세대 농민공 분투기

2018-11-22 05:00
농민공 새 주류 '바링허우', 탈빈곤 안간힘
직업훈련 등 자발적 노력, 최대 난관 '교육'

[그래픽=이재호 기자]


고층 건물의 건설 현장을 가득 메운 일용직 노동자, 초겨울 추위에도 분주히 걸음을 재촉하는 택배 배달원, 부모의 맞벌이로 홀로 남겨진 아이를 돌보는 보모, 노점에서 중국식 토스트인 서우좌빙(手抓餠)을 만들어 파는 부부.

중국 곳곳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농민공(農民工)들의 모습이다. 개혁·개방 직후인 1980년대 초 농촌에 향진기업(鄕鎭企業)이 들어서자 공장에서 일하는 농민, 농민공이 등장했다. 1990년대 중국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하면서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중국 동부 연안의 대도시로 농민공들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저렴한 노동력 수요는 더욱 증가했다. 농촌을 등진 저임금 노동자의 안정적 유입은 중국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른바 'G2'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명(明)과 암(暗)은 공존하는 법. 농민공들은 중국의 빈부 격차, 계층 격차, 도농 격차 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농민공의 월 평균 임금은 3400위안(약 55만7000원)으로 도시 거주민 소득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호적에 해당하는 후커우(戶口)가 고향인 농촌에 묶여 있는 탓에 도시에서 제공하는 교육·의료 등의 복지 혜택을 누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중국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이후 농민공 임금은 매년 10% 이상씩 오르고 있지만 소득 격차 해소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개선의 여지는 없는 걸까. 농민공 계층 내 세대별 분화를 거쳐 주류가 된 2세대 농민공, 신세대 농민공이 변화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농민공 수는 2억8652만명으로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남성과 여성 비율은 각각 65.6%와 34.4%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980년 이후 출생자를 일컫는 바링허우(80後) 세대가 50.5%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들은 전 세대 농민공과 달리 교육 수준이 높고 직업 훈련 등을 통해 전문기술을 갖춘 경우가 많다.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자는 10.3%로 전년보다 0.9% 포인트 늘었다.

신세대 농민공은 도시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도시에 정착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분투 중인 그들의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다.

매출 규모 세계 1위 건설사인 중국건축(중건·中建)의 윈난성 쿤밍 분공사에서 일하는 후(胡)씨는 아직 서른 전이지만 이미 1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숙련공이다. 현재 6대의 타워크레인 정비를 맡고 있다.

그의 고향인 윈난성 푸위안현(富源縣) 황니촌(黃泥村)은 궁벽하고 낙후한 지역이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외지에 나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장을 정리하고 벽돌을 나르는 잡부로 일하던 그는 육체노동의 한계를 느끼고 기술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중건 쿤밍 분공사는 건설 현장에 야학을 설치하고 농민공을 대상으로 시공 규범과 선진 시공 기술, 품질 표준, 안전 지식 등을 가르쳤다. 후는 야학에 다니며 주경야독을 한 지 5년 만인 2017년 전국 2급 건축사 시험을 통과했다.

윈난성 정부가 개최한 기술·기능 경연대회에 참가해 장원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수입은 연간 10만 위안 정도로 훌쩍 뛰었다. 후는 "2년 전에 그동안 저축했던 돈으로 헌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었다"며 "조만간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라고 웃었다.

신세대 농민공 중 직업 훈련이나 기술 교육을 받은 비중은 32.9% 정도다. 허우(侯)씨는 철도 국유기업인 중국철로공정총공사(중톄·中鐵)에서 인생 역전을 이뤘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는 식판 설거지 등을 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지내다가 2005년 중톄의 전기 기술 견습생으로 선발됐다. 관련 지식이 전무했던 터라 하루하루가 허둥지둥,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기계를 조작하다가 대형 안전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간신히 퇴사를 면한 그는 작업장 내 이동식 간이 숙소에서 먹고 자며 사부인 숙련공을 그림차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히는 한편 저녁에는 회사가 운영하는 야학에 다니며 전기 이론을 습득했다.

2011년 말 그는 중톄와 정식 근로 계약을 맺고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현재는 원자재 절감 등 19가지 혁신 성과를 보유한 숙련공이 됐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업실까지 운영하고 있다. 근무 성적이 탁월하고 공헌도가 높은 노동자를 의미하는 모범근로자(勞動模範) 칭호를 받은 데 이어 국가가 수여하는 5·1 노동절 포상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농민공의 기술력 향상은 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단순히 저임금에 의존하는 노동력 운용 체계로는 경영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이뤄낼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임금을 더 주더라도 자기 몫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전체 산업 근로자의 절반을 농민공으로 충당하고 있는 후베이성은 지난해 9월 노동력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600만명 수준인 농민공을 대상으로 종신 직업 훈련을 실시하고 실습 훈련을 위한 공간을 추가 설립하기로 했다.

농민공이 지역 사회와 융화할 수 있도록 자녀 교육과 의료, 숙소 등과 관련한 차별을 최소화하고 100만명 규모의 농민공이 후커우를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 밖에 건축기술 교육 대상을 연인원 20만명 수준까지 늘리고 농민공 포상 제도를 도입하는 등 63가지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농민공들이 맞닥뜨리는 최대 고민은 자녀의 보육 및 교육 문제다.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교육은 계층·계급 이동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쓰촨성 태생인 탕(唐)씨는 6년 전 남편과 함께 산시성 시안으로 이주했다.

교외의 방 두 칸짜리 집에서 거주하는데, 직장에서 멀지 않아 출퇴근이 편리하고 생활 여건도 괜찮은 편이다. 걱정거리였던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문제도 원만히 해결됐다. 거주·후커우·근로 증명 등을 떼 교육청에 제출했는데, 심사 결과 시안 내 한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탕씨는 "아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하나 걱정했는데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농민공 자녀 가운데 3~5세 아동의 유치원 재학 비율은 83.3%, 초등학교 등 9년제 의무교육을 받는 비율은 98.7%에 달한다. 문제는 의무교육이 끝난 뒤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의 후커우가 있는 농촌으로 돌아가 진학하거나 공립보다 교육비가 수십배 비싼 사립학교에 다녀야 한다.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난해 이맘때 베이징 다싱구의 빈민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자 시 당국은 수천명의 농민공에게 강제 철거 명령을 내렸다. 당국의 폭압적인 철거 과정에서 그에 맞서는 농민공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중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모두가 풍요롭게 사는 샤오캉(小康) 사회의 도래가 임박했다고 강변하지만 농민공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부조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의미하는 '핀얼다이(貧二代)' 혹은 농민공 2세를 뜻하는 '눙얼다이(農二代)' 굴레를 벗으려는 신세대 농민공들의 분투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