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료현실 꼬집은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 흥행몰이

2018-07-17 16:00
'나는 약신이 아니다' 개봉 열흘째 박스오피스 25억위안 육박
'루융사건' 모티브로…'칸빙난, 칸빙구이' 적나라한 의료현실 폭로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 포스터. 


'칸빙난, 칸빙구이(看病難, 看病貴).'

아파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기 어렵고 병원비도 약값도 비싸다는 뜻으로, 중국 서민들이 자주 내뱉는 불만이다. 중국의 부조리한 의료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의 이러한 의료 현실 문제점을 생생하게 고발한 영화가 올여름 중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영화 ‘워부스야오선(我不是藥神·아부시약신)’이다.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뜻이다. 원무예(文牧野)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쉬징(徐峥), 저우이웨이(周一圍) 등이 열연했다. 

지난 6일 개봉한 지 열흘 만인 15일 25억 위안(약 4200억원)에 육박한 박스오피스 수입은 현재 30억 위안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는 게 극장가 관측이다.

영화 평점도 높다. 중국 영화평론사이트 더우반(豆瓣)에서 평점 8.9점을 기록했다.  중국 내 사회적 약자, 사회 공정성, 생명 존엄성 문제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누리꾼들은 "영화는 영화에 불과하지만, 이런 걸작을 볼 때마다 영화는 영화에 불과하다는 게 아니란 걸 느낀다”고 평했다.

그동안 중국 극장가를 휩쓴 '전랑2', '홍해행동'처럼 애국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된 소위 '국뽕' 영화가 아닌 중국 서민들의 현실적 삶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비싼 약값으로 고통 받는 만성 골수암 백혈병 환자들의 애환을 담았다. 주인공 청융(程勇)은 성질 괴팍한 중년 남성이다. 아내한테 이혼 당하고 중병으로 몸져누운 아버지와 둘이 사는 그는 하루 종일 좁고 허름한 봉고차에서 '인도판 비아그라'로 불리는 '신유(神油·갓오일)'를 팔아서 간신히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약장수다.

그런데 어느 날 골수암 환자 뤼서우이(呂受益)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변한다. 뤼서우이는 그에게 인도에서 골수암 치료제 복제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사의 골수암 치료제 '글리벡'의 복제약인데, 효능은 같은데 가격은 거의 40분의 1 남짓이라는 것이다.

청융은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인도 복제약의 중국 판권을 따는 데 성공한다. 밀수로 들여온 인도 복제약은 중국 암환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불티나게 팔렸다. 덕분에 청융도 떼돈을 번다. 하지만 경찰과 거대 제약회사의 좁혀오는 수사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복제약 판권을 다른 사업가에게 넘긴다. 하지만 이 사업가도 결국엔 도주하고 만다. 청융은 나중에 복제약을 구하지 못한 뤼서우이가 비싼 약값에 괴로워하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분개한 청융은 다시 인도 복제약 판매 사업을 시작한다. 적자도 감수하며 원가만 받고 복제약을 판 그는 골수암 환자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지만 결국엔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간다. 하지만 나중엔 중국 정부도 결국 글리벡을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고 약값을 낮추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과거 중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루융(陸勇) 사건'을 바탕으로 한 만큼 더 현실적이다. 비싼 약값을 견디지 못한 골수암 환자 루씨는 인도 복제약을 직구하다가, 나중엔 다른 골수암 환자들을 위해 복제약을 구매대행하다가 결국 '가짜약' 판매혐의로 2013년 체포됐다. 수많은 골수암 환자들이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결국 검찰도 그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면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영화가 중국 대륙에서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중국의 심각한 의료 문제를 서민들의 삶에 투영해 현실감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아픈 딸 약값을 대느라 스트리퍼가 된 어머니, 백혈병을 앓는 교회 신부, 농민공 출신의 스무살 백혈병 청년환자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반 서민들의 모습이라는 것. 

특히 영화 속 배우들이 쏟아내는 촌철살인 대사도 인상깊다. 골수암을 앓는 한 노인이 복제약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당신이라고 뭐 한평생 건강할 줄 아시오?"라고 소리칠 때, 한평생 가짜 약만 팔아온 한 장사꾼이 도주 직전 주인공에게 " 이 세상에 병은 오로지 하나, 바로 가난병이오. 그건 당신이라 해도 고칠 수 없소"라고 말할 때, 주인공이 "이제 겨우 스무 살 청년이 그저 더 살고 싶다는 것뿐인데, 그게 어찌 죄가 된단 말이오"라고 경찰에게 소리칠 때 관객들은 마음속으로 울었다. 

영화와 관련해 중국 국가지적재산권 대변인도 최근 정례브리핑에서 “제약회사와 대중 간 이익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중국 당국도 주목하는 작품이다. 중국의 한 언론매체는 중국의 민감한 의료개혁 문제를 파고든 영화가 당국의 까다로운 검열 심사를 통과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