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섬진강 물빛이 만들어낸 우주" 이창수 개인전 '이그빛' 학고재갤러리

2018-07-31 15:45
-지리산 주제로 한 마지막 세 번째 개인전 8월 12일까지

지리산 자락 섬진강의 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세히 보니 물도 아닌 그냥 빛이다. 빛의 향연은 우리를 우주로 이끌고 결국 가장 미시의 세계가 가장 거시의 세계와 통하는 원자와 우주의 관계로 발전한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7월 20일부터 8월 12일까지 이창수(58) 작가의 개인전 '이 그 빛'이 열리고 있다.
지리산을 주제로 세 번의 전시를 열겠다고 다짐한 작가의 2008년 학고재에 이어 2009년 성곡미술관에서 두 번째 전시 이후에 마지막 세 번째 전시회이다.

[이창수 작가가 학고재갤러리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섬진강 수면의 빛을 촬영한 33점의 사진과 1점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사진은 형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인데, 이창수 작가의 이번 작품에는 뚜렷한 형태가 없다. 회화로 따지면 추상화이고 형태가 반복되는 미니멀리즘 느낌도 난다.

이 오묘한 작품들은 이창수 작가의 전작인 히말라야 사진전 '이창수 영원한 찰나'(2014)를 생각한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형태이다. 하지만 그는 히말라야와 섬진강의 물에서 공통점을 끄집어냈다.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이창수 작가 '방금 있다가 지금은 없네' ]


최근 학고재에서 만난 이창수 작가는 "히말라야산맥에서 거시적으로 본 에너지의 느낌을 물에서도 느꼈다" 며 "조금씩, 조금씩 물의 내부로 들어와서 물의 흔적을 전부 없애고 나니 여기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담대한 히말라야산맥의 원경을 바라보던 시선이 가장 가까운 근경의 섬진강 물빛으로 옮겨오게 되고, 그곳에서 히말라야산맥에서 봤던 자연의 정수를 발견한 것이다.

이번 작품들은 섬진강의 물로 시작해 빛으로 끝난다. 전시 제목인 '이 그 빛'은 물과 빛이 독립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하나라는 불이(不二)를 내포한다.

[이창수 작가가 학고재갤러리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매체로 잡은 물, 섬진강인데 강이 아니고 물, 물인데 물이 아니고 빛, 빛과 물이 둘이 아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100% 물인데 물이라고 보이는 흔적은 가능한 한 없앴다. 다 없애고 빛 자체로만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을 찾아 더 본질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창수 작가는 물의 흔적을 없애면서 좀 더 좁은 곳으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듯이 빛에 빨려들었지만, 어느 순간 우주만큼 큰 세계를 경험했다.

"사진을 놓고 보자면 물의 결에서 빛이 넘실대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아주 가까이에서 물의 흔적들을 조금 더 세밀하게 찍어내니 오히려 넓게 바라본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우주를 느끼고 됐다. 아주 작은 미시적으로 봤을 때 훨씬 더 넓은 공간이 느껴지는 거죠"

빛이 넘실대는 장면은 작품 '방금 있다가 지금은 없네'에서 절정에 이른다. 물의 결을 따라 영화 매트릭스의 행렬처럼 빛들이 쏟아진다. 실제로 작가는 계곡에 놀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을 찍었다.

"빛이 흘러내리는 느낌으로 빛을 드러낸다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이것을 다시 찍으라면 못 찍는다. 그날의 물의 흐름 정도, 빛의 각도, 물의 양에 따라서 이렇게 나왔을 뿐이다."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이창수 작가의 '노니는 이 그 빛']


마지막에 전시된 7분짜리 미디어 아트 '이 그 빛,2018'은 이번 전시의 백미(白眉)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과 전시되지 않은 초창기 사진을 써서 미디어 아트를 구성했다. 흘러가는 물빛의 영상과 인디밴드 데이모노마드가 만든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배경음악은 관람자들을 우주 한복판에 던져 놓는다.

이창수 작가는 "미디어 아트는 한 번에 훅 갈 수는 없으니까 초창기 작품부터 차츰 보여줬다" 며 "인디밴드 데이모노마드가 작품을 보고 즉흥으로 연주를 했다. 이 정도로 연주를 했다는 것은 내 사진에서 최고의 음악이 나온 것이다"고 강조했다.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이창수 작가의 미디어 아트 '쉼 없는 시간']


▶파랑, 노란, 흰색 3가지 빛색의 향연
이번 전시에서 사진 작품들은 크게 푸른색 계열과 노란색 계열, 흰색 계열 등 3가지 빛의 색을 띤다. 이것은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 시간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 작가는 "색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다른 것이다. 보통 해 뜨기 전에 여명이 비추고 보랏빛이 나는 블루가 돈다. 해가 뜨면 먼동이 트면서 그때는 엘로우 빛이 나다. 아침노을이 그런 색이다. 해가 완전히 떴을 때는 좀 더 진해지면서 하얀색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는 사진들은 특별한 촬영기법이 있거나 과도한 보정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창수 작가는 "100% 그냥 강에 쭈그리고 앉아서 일반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며 "상황에 따라서 셔터를 빠르게 하기도 하고 느리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심도(초점이 맞는 공간의 범위)를 깊게 했다. 후보정 작업도 과도하게 보정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이창수 작가의 미디어 아트 '이 그 빛,2018']


▶이창수 작가 누구?
이창수 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중앙과 중앙일보, 뿌리 깊은 나무 등에서 16년간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이후 2000년 지리산 자락(경남 하동군 악양면)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이창수 작가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히말라야 사진전 '이창수 영원한 찰나'였다. 당시 그는 장장 700여 일을 걸쳐 히말라야산맥을 등반하면서 촬영한 사진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