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계속된 자동차 급발진 사고, 국내 해결방법은 전무(全無)

2018-07-24 05:00

[사진=김필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장]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위험성이나 두려움은 운전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최근엔 더욱 많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 블랙박스 영상 등의 자료나 현상을 보면 급발진의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그러나 국내에서 운전자가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문제로 법원에서 승소한 경우는 전무하다.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 법적 구조 때문이다. 병원에서 수술을 잘못한 경우를 환자가 밝혀야 하는 구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법정에서 피해자의 주문에 자동차 업체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 구조다. 어떤 결과가 도출되지 않아도 재판과정에서 업체의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합의를 도출해 보상금을 주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연간 발생하는 자동차 급발진 의심 신고건수는 표면적으로 100건 내외이나 실질적으로 20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 2000건이라는 뜻이고 이 중 약 70~80%는 운전자 실수로 판단된다. 따라서 연간 400~500건 정도가 실제 자동차 급발진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급발진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국내에 정식으로 신고할 수 있는 기관도 없어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 제품결함신고센터에 신고해도 무의미하고, 한국소비자원도 어떤 결과를 내도 권고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구제책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1980년 초부터 시작된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자동차에 전자제어장치를 도입하면서 발생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부작용이다. 전자제어장치는 문제가 발생하면 재연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이 있고 흔적이 남지 않아 운전자 입장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수년 전 미국에서 자동차 급발진의 원인이 일부 자동차 전자제어장치의 에러 코드에 의한 부작용이란 사례가 일부 확인됐을 뿐이다.

2009년 이후 출고된 자동차는 OBD2(차량정보 수집장치)로 운전자와 자동차의 행태가 모두 실시간 데이터로 나온다. 운전자가 기속페달을 밟는 정도까지 상세한 데이터 확보가 가능할 정도다. 따라서 이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기록장치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최근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를 활용해 자동차 급발진 문제에 접근하고 있지만 이 장치는 자동차 업체가 에어백이 터지는 전개과정을 보기 위한 것으로, 목적 자체가 다르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기록도 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의 행태를 볼 수가 없는 아쉬움이 있다.

미국처럼 소비자 중심의 법적·제도적 체계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관점에서 업체가 자동차의 현상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법의 기준이 옮겨져야 한다. 징벌적 보상제 도입 등 균형 잡힌 제도적 개선 움직임도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체제로는 자동차 급발진 현상의 책임 유무는 물론 극히 불리한 자동차 소비자 제도의 문제점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급발진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급발진 사고는 브레이크를 꽉 밟아도 브레이크가 딱딱해지면서 전혀 들어가지 않는 현상이다. 이때 브레이크 등은 브레이크가 약 1~2㎝ 들어가지 않으면 켜지지 않는데, 이를 이유로 업체들은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반대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서 브레이크 등이 켜져도 업체 측에서 브레이크를 덜 밟았다고 하거나 가속페달과 함께 밟았다고 주장하면 운전자 입장에서 이를 반박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크다. 이래저래 소비자가 불리하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무력화 현상으로 브레이크 등이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하루속히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전자는 급발진 사고와 관련해 매우 불리하고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위험에 처해 있다. 유일하게 하소연할 수 있는 대상인 정부는 중립적인 균형을 유지한 채 절대적으로 불리한 소비자 측면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자동차 소비자가 항상 ‘봉’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 우리는 자동차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소비자 관점에서는 여전히 자동차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