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민주당 개헌 논의…국민 공감대 얻어야

2024-05-17 06:00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헌법학)]

1948년 헌법이 제정되고 1987년 현행 헌법까지 9차례 개헌이 있었다. 그런데 39년 동안 9차례 개헌이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1987년 이후 현재까지 37년이 지났음에도 개헌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개헌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미 40년이 가까워지도록 시대에 맞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 개정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개헌을 주장하는 내용들을 보면 시대정신에 맞는 국가 비전을 전제로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에 대한 정치공세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민들이나 정치권에서도 헌법 개정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헌법이 개정되지 못한 것은 국가 전체, 국민 전체를 위한 헌법 개정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입장에서 헌법 개정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으며, 발의된 개헌안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국회를 통과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요건이다.

헌법상 이러한 가중다수결이 요구되는 취지는 여야 합의로 헌법 개정을 하라는 것이다. 법률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국가의 기본틀을 바꾸는 헌법 개정은 법률 개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효과를 가지므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을 가진 정치세력이 이를 저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른바 저지소수)이다.

이러한 저지소수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합의의 정치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헌법 개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되므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다수가 합리적이라고 인정된다. 비록 현재 야권 의석수가 재적의원 3분의 2에 근접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당 측 협조 없이는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개헌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일방적인 개헌 주장이 아니라 여야 합의를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욱이 민주당이 개헌을 통해 바꾸겠다는 주장들이 모두 합리적인 것, 국민들이 공감하는 내용은 아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을 빚고 있다. 그 자체로 크게 반대할 것은 아닐 수 있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산시위, 유신에 대해 저항했던 부마항쟁 등을 빼고 5·18만을 명시한다는 것은 형평성 문제가 있으며, 그렇다고 이를 모두 다 헌법 전문에 싣는다는 것은 헌법 전문의 위상에 맞지 않으며, 선진 외국 헌법에서도 그런 예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한다는 것도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면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을 제한한다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유지한다면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을 통제하는 헌법상의 제도로는 법률안거부권 이외의 것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법률안거부권의 무력화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상호 견제와 균형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가족, 친·인척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친·인척의 사생활 문제를 조사하는 등 합리성 없는 내용의 특검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이미 윤 대통령이 그로 인해 정치적 타격을 입고 있는 것 아닌가?

감사원을 국회 산하로 이관하겠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미 김대중 정부 당시부터 감사원의 국회 이관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간 개헌 논의 과정에서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는 것보다는 독립기관화 하는 편이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국회로 이관하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로 인해 2018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서도 감사원은 독립기관화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감사원의 국회 이관을 주장하는 것은 현재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감사원을 좌지우지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렇듯 민주당의 개헌 주장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쟁점들, 정치적으로 다툼이 큰 쟁점들을 부각시키고 있을 뿐 국민 전체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국가 발전의 비전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국가 개혁의 전략은 보이지 않고 있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헌법의 필요성에는 수많은 국민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2017년 국회 개헌특위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개헌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매우 날카로운 갈등이 산재해 있다. 그로 인해 1년간 지속되었던 국회 개헌특위가 아무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만일 민주당 측 주장에 따라 개헌안이 발의된다면 더욱 날카로운 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며 결국 개헌에 대한 합의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현재 민주당의 위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던 당시와는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에 국회 개헌특위에서 개헌을 약속한 바 있었고, 2017년 국회 개헌특위가 실패한 뒤 2018년 개헌안 발의로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당시에도 개헌안 내용에 대해 야당과 일절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의함에 따라 개헌에 대한 진정성이 논란을 빚은 바 있었고 결국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할 생각이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략적 개헌 주장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진정성 있는 여야 협의가 진행되면 국민은 민주당의 개헌에 대한 진정성을 신뢰하고 힘을 실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의 개헌 주장은 오히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비판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