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로 몰려드는 돈 … 벼랑 끝 몰리는 기업

2018-06-19 19:00
기업대출 문턱 높이더니 … 은행들 '가계빚 폭탄' 떠안았다
조선업 부실 증가로 기준 강화 … 기업들, 자금난에 벼랑끝 몰려
기업대출 비중 54.2%까지 감소 … 신용·전세 대출은 가파른 증가세

[그래픽=김효곤 기자]

시중은행의 자금이 가계로 몰리면서 기업들의 경영난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로 인해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은 증가세로 전환됐다. 하지만 구조조정 등 리스크가 높은 대기업에는 은행 문턱이 더 높아지면서 경영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취약업종 부실 증가, 업황 부진 지속에 따른 기업 재무건전성 악화는 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 태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은행 문턱 못 넘는 기업···자금난 봉착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액 구조는 대기업 대출 161.8조원(19.8%), 중소기업 대출 655.5조원(80.2%)으로 구성됐다.

금융위기 이후부터 2014년 말까지 기업대출에서 차지하는 대기업 비중은 증가했으나 중소기업 비중은 감소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따른 손실 만회를 위해 개인사업자 대출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 비중은 소폭 증가세로 전환되는 듯했다. 그러나 조선‧해운업 등 구조조정으로 인해 2014년 이후 대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 태도가 강화되면서 기업대출은 전체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은행의 전체 대출에서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55.7%에서 2013년 56.3%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54.2%까지 낮아졌다. 문제는 올해 더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를 보면 대기업은 -7(1분기)에서 -3(2분기)으로 전분기보다 소폭 나아졌으나 여전히 마이너스다. 중소기업은 -3에서 -10으로 유일하게 대출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분석됐다.

은행들은 조선업 부실대출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 대출에 대한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준 18개 은행의 조선업 기업대출(조선업 관련 중소기업 대출 포함)은 28조1000억원, 조선업 부실채권비율은 8.54%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GM사태,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 등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 증가로 대·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은행들의 이 같은 움직임으로 자금난에 내몰리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자금난에 시달린 이랜드는 42건의 이사회 안건 가운데 71.4%인 30건이 자금조달‧대출 대환, 이랜드파크·이랜드크루즈의 단기운전자금 대여 등이었다.

한국투자금융(55.4%, 31건)과 동국제강(52.1%, 38건)도 이사회 안건의 50% 이상이 자금관련 건이었고 대우조선(49.2%, 32건), 금호석유화학(48.5%, 16건), 금호아시아나(47.5%, 28건), 한라(44.0%, 51건), 현대산업개발(43.4%, 23건), 한솔(41.0%, 89건), SM(40.4%, 40건) 등의 상황도 그와 비슷했다.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 중 대출과 채권의 비중이 7:3(2017년말 기준 대출금 1049조원, 채권 520조원)을 보이고 있어, 이들 기업 상당수가 은행에서 제대로 자금 조달을 못하면서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리스크 피하려다 가계부채 뇌관 떠안은 은행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기업대출 비중을 줄인 은행들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국제결제은행(BIS)비율 관리가 용이한 가계대출에 손을 댔지만 더 큰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의 가계대출 660조4000억원을 비롯해 국내 금융권의 전체 가계대출액은 150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올해 3월 말 가계신용은 1468조원으로 지난해 12월 말(1450조8000억원)보다 17조2000억원 늘어났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강조한 것도 '가계부채 관리'였다. 윤 원장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신용대출과 전세대출이 급증하고 있어 개인사업자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신용대출이나 개인사업자 대출의 무분별한 확대가 지속되면 향후 우리경제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만큼 취약차주의 부실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기업에게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은 시장 자율적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며 "하지만 가계로 몰리는 은행의 돈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은행경영실태 평가시 중소기업 신용대출 지원 실적 항목 신설 등 기업금융 유인체계가 새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